두 얼굴의 베트남 사람들
베트남에서 30여 년 살면서 현재 베트남 비엣박대학교 부총장으로 있는 심상준 박사(목사, 한베문화교류센터 이사장)의 책 “갈대와 강철같은 두 얼굴의 베트남”이라는 책에서 베트남 사람들의 특징을 정(情)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행동 양식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행동 양식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급자족의 소농과 소상으로 인하여 농부와 상인의 임의성, 자의성에 따라 시간을 편리한 대로 사용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 중에 “끈을 너무 심하게 잡아당겨 묶으면 오히려 끈이 끊어진다” 즉, 너무 원칙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한국도 정(情) 문화가 있지만 베트남이 훨씬 더 그 면에서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정을 중요시하는 베트남 문화를 표현하는 단어가 ‘띵깜’이다. 베트남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핵심 원리로 항상 정을 표현하고 정을 주고받고 살아간다.
띵깜은 깊은 의리를 동반한 우정이 아닌, 그냥 같이 있는 동안에 서로 사랑하면서 정을 주고받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자급자족의 소농은 그날 벌어들인 소득으로 그날 먹으면 된다. 이런 소농적 생계 방식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따라 일하는 무계획성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변통성을 생산해 냈다.
실제로 월남전에서 미국은 베트남이라는 한 국가와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수천의 작은 마을 국가와 전쟁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베트남은 전시에 모든 국민이 군인의 역할을 하기에 전선이 따로 없다. 베트남 사람들은 국가적인 사태가 발생할 때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고 싸우지만 전쟁이 끝난 후 도망가는 적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
전쟁보다는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을 즐겨하는 민족인 것이다. 베트남은 근,현대사에 다섯 나라(프랑스, 일본, 미국, 캄보디아, 중국)와 전쟁을 치루었고 강대국을 상대로 전쟁에 패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스 사이공
일본과 관련된 스토리로 유명한 오페라 ‘나비부인’이 있다면 뮤지컬에서는 베트남을 배경으로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오랫동안 인기리에 상영되어 온 ‘미스 사이공’이 있다. 두 작품 모두 미군 주둔과 관련된 전쟁 후 민초들이 살아가는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 ‘미스 사이공’ 뮤지컬의 내용은 이렇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 해병대 소속 크리스는 사이공의 한 클럽에서 전쟁 와중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바걸로 일하고 있는 베트남 소녀 킴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킴은 부모가 정해준 약혼자인 투이를 뒤로 한 채 미군 크리스와 결혼하려 하지만 전쟁이 막바지에 치달으며 미군은 다급히 철수를 결정하게 된다. 크리스는 헬기로 끌려가서 미국으로 떠나고, 킴은 크리스의 아이를 임신한 채로 혼자 남게 되며 베트남은 공산 국가로 통일된다.
킴은 미군에게 협조했다는 죄목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며 홀로 크리스의 아이 탬을 키우던 어느 날 베트콩에 협력해 출세한 옛 약혼자 투이가 킴을 찾아와 탬을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킴은 투이를 살해하고 방콕으로 탈출하게 된다.
한편 킴이 죽은 줄로 알고 있던 크리스는 친구의 도움으로 아내와 함께 방콕으로 오게 되고, 킴과 극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킴은 크리스를 만나 아들 탬을 미국으로 데려가달라 하지만 크리스의 아내 엘렌은 탬의 나이가 걱정되어 거절하고 양육비만을 지원하려 한다. 마지막까지 아들의 미래를 막기 싫었던 킴은 아이를 미국으로 보내기 위해서 권총으로 자살하며 극이 마무리되는 슬픈 내용이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만든 클로드미셸 쇤베르그와 알랭 부브릴의 1989년 작품으로 1989년 영국 런던 웨스트 엔드의 드루리 레인 극장에서 초연한 이후 10년 동안 공연되었고, 1991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바 있다.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캣츠와 더불어 세계 4대 뮤지컬로 알려져 있다.
1994년 필자가 미국 뉴욕을 생애 처음 방문했을 때 지인의 권유로 함께 관람하였던 뮤지컬이 바로 ‘미스 사이공’이다. 주옥같은 멤버들과 화려한 볼거리 덕분에 호평을 받았는데 특히 사이공 함락 장면에서 무대를 압도하는 굉음과 함께 등장하는 헬리콥터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유명한 뮤지컬이면서도 그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왠지 모를 서글픈 생각이 떠오르는 건 어찌할 수 없다. 남쪽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보트피플이 되어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던 베트남 민초들의 고통 소리가 가슴 절절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가는 광폭외교
그런데 최근 한없는 연민으로만 바라보던 베트남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에 베트남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하였다는 소식을 지난 글에 전한 바 있다.
베트남의 팜민찐 총리가 최근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 주도권을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이런 외교를 하는 나라는 베트남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에 가서 한껏 환대를 받더니 바로 비행기를 돌려 미국에 도착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팜민찐 총리의 중국 방문은 바이든의 방문 직후 이루어졌으며 제20회 중국-아세안 엑스포 및 중국-아세안 비즈니스·투자서밋 참석차 중국 난닝에 가서 리창 중국 총리와 회담하고 양국 간 협력방안 등을 논의하였다.
회담에서 판민찐 총리는 베트남산 농수산물 시장 개방 가속화와 베트남 무역진흥사무소 조기 설립을 위한 방안, 통관 효율 향상에 대한 공동 노력, 또 관광 산업 발전을 위한 양국간 협력, 베트남에 대한 무상원조 가속화에 대한 방안을 리창 총리에게 제안하였다.
이에 대해 리창 총리는 양국 간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중국 정부 차원에서 베트남 관광을 위한 양국 간 항공 운항편 노선을 확대하고, 교육 지원 프로젝트를 비롯해 베트남에 대한 지원을 늘릴 것이라 전하였다. 팜민찐 총리는 “베트남은 중국과의 우호적이고 안정적이며 건전한 협력관계 발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는 베트남의 외교 정책에 있어 우선순위”라는 립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중국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낸 팜민찐 총리는 곧바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다음날 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23일까지 미국에서의 공식 일정을 가졌다. 6일 동안 미국에 머물며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엔비디아 관계자 만남, 워싱턴에서는 조지타운 대학에서 연설, 뉴욕에서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미팅하는 강행군을 하였다.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마이크로소프트, 보잉 등 대기업과의 미팅도 가졌다. 미국과 중국 양대 세계 최강국은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고 첨예한 갈등 구조를 만들면서 서로 자기 편에 붙으라며 전 세계를 신 냉전 상태로 만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양국을 오가며 실리만 쏙쏙 챙기는 베트남의 외교 비결에 감탄하게 된다. 중국과 미국을 연속해서 방문하는 팜민찐 총리의 행보는 일면 의도적인 측면이 있어 보인다. 팜민찐 총리는 베트남의 전략적 중요성을 미,중 양국을 오가며 전 세계에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이는 결국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는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 꼬셔도 끝까지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지금까지도 그랬으며 앞으로도 미국과 중국을 왔다 갔다 하며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할 것이다. 둘째는 베트남에 대한 위상이 이 정도로 올라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입장에서 베트남은 중국 압박의 화룡점정을 찍을 결정적인 한 방, 중국 입장에서 베트남은 그걸 막기 위한 마지노선이다. 아마도 미국과 중국이 더 격렬하게 대립할수록 반대급부로 베트남의 전략적 가치는 더 올라가게 될 것이다.
베트남은 절묘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이 외형적인 면에서만 성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면으로도 성숙하며 세계에 대한 개방성과 복음에 대해 열린 국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사방에 확장되길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