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 모래톱에 죽은 고래나 상어를 보면 살을 파먹은 둥근 상처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짓을 한 바다생물은 5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생선으로 보이려고 자체 발광을 하여 먹잇감으로 알고 다가온 바다 생물에 들러붙어 동그란 틀로 찍어낸 것같이 살을 파먹는 검목상어이다.
영어로 이를 Cookiecutter Shark라고 한다. 검목상어는 살 파먹을 생물에 흡착하여 톱니 모양의 이빨로 물어뜯는다. 검목상어가 먹잇감을 찾아 맴도는 것같이 사람에게도 다가가 친절한 척하면서 약점을 찾아낸 다음에 들러붙어 살 같은 돈을 파먹는 자가 주변에 있다.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는 한 번 약점을 찾아내면 지속해서 여기저기 달라붙어 여러 차례 상처를 주면서 파먹는다. 자신의 존재가 들키지 않으려고 파먹은 생물의 사각지대에 숨는다. 기회를 보다가 다시 다가가 살을 파먹는다.
아주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는 온갖 좋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결코 상대의 처지와 형편을 살피지 않는다. 하는 일마다 언제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어야 하고 자신의 이름값을 내야하고 자신이 조정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상대의 그림자에 숨어 상처 난 흉터를 긁어 더 심하게 덧나게 한다. 더 약한 틈을 파고든다. 절대로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항상 상대방에게 떠넘긴다. 잘못을 어떻게 하든지 변명과 책임회피와 남에게 전가하려는 것이다.
이는 자신보다 나으면 공격하고 비슷하면 다투고 낮으면 무시하는 자의 전형적인 지적질이다. 언어폭력을 일삼고 사람의 관계를 이간질하면서 살다가 결국 가는 곳마다 사람 관계가 깨어져 다른 곳으로 회피하더라도 다시 관계를 깨는 자로 떠돌아다닌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남은 피해를 보거나 상처를 받거나 상관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자는 자기의 무릎이 꺾인 것과 이타적인 자가 무릎을 꿇는 것과의 차이를 진정으로 모른다.
반대로 한 두 번 당하는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생기는 상처로 인해 피 흘리는 시간이 길수록 생존까지 위협을 받는다. 이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을 수도 있다. 살이 파이는 아픔을 느끼고 알더라도 상처를 치료하는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자신을 살펴야만 한다.
성경에도 “예 할 때 예하고 아니오 할 때 아니오를 하라”(마태복음 5:37)고 하지만 정작 못한다. 물론 감사와 죄송도 구분하지 못한다. 결국 이런 자는 도망가더라도 잊혀진 존재일 뿐이다. 잘 살아야 한다, 모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