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야, 안녕!

손녀와 같이 자전거를
“할아버지 똑바로 가세요!” 뒤에서 따라오던 손녀가 소리쳤다. “어, 할아버지 똑바로 가고 있는데,”하고 내가 답하자 “아녜요, 할아버지! 자꾸 왼쪽으로 쏠려요,”하고 손녀는 좀 더 다급하게 말했다.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한국에 갔을 때 딸네 가족과 같이 캠핑을 간 적이 있다. 캠핑장에 도착하자 사위가 차에서 자전거 두 대를 내리며 내게 말했다. “제가 텐트를 칠 테니까 아버님은 지안이 데리고 자전거로 한 바퀴 도시고 오세요. 자전거 길이 잘 나 있으니까 좋으실 거예요.” 지안이는 10살 난 손녀 이름이었다.

“할아버지, 저랑 같이 타요. 저 자전거 잘 타요,”하면서 지안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어, 그러자,”하며 사위의 자전거를 끌고 길로 나가면서 내심 나는 자신이 없었다.

자전거를 타본 지가 얼마 만인가? 거의 60년 전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업무용으로 타시던 자전거를 몇 번 얻어 타본 것이 내 자전거 경력의 전부였다. 지금 아이들은 기어다닐 때는 유모차를 타고 걷기 시작하면 세발자전거를 타고 뛰기 시작하면 어린이용 자전거를 타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엔 엄마 등허리가 유모차였고 세발자전거건 두발자전거건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대부분의 아이에게 꿈 같은 일이었다. 어쩌다가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를 만나면 누구나 부러워서 한참씩 쳐다보곤 하였다.

나도 자전거가 타고 싶어 아버지를 졸라 몇 번을 타보았고 한번은 아버지 몰래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가 넘어져서 자전거 핸들이 망가지고 무릎과 팔꿈치가 까져 돌아왔다가 눈물이 나도록 혼이 난 뒤엔 다시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아버지께 혼이 나면서 맘속으로 크면 반드시 내 자전거를 갖고 맘껏 타리라고 생각했지만 자라면서 자전거보다 내 마음을 끄는 것들이 많아서였는지 결국 내 자전거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런 기억이 있기에 손녀와 같이 자전거를 끌고 나가면서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사위의 자전거가 웬만큼 몸에 맞았고 60년 전 아버지께 혼나며 배웠던 자전거 타기를 몸이 기억해 주었기에 그런대로 손녀와 같이 자전거를 탈 수는 있었다. 하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손녀가 보기에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위태로웠나 보다.

겨우 한 바퀴를 돌고 가족들에게 돌아오자 “지안아, 할아버지랑 자전거 타니 재밌지?”라고 사위가 손녀에게 물었다. “어, 그냥. 근데 할아버지가 자꾸 왼쪽으로 쏠려서 좀 겁났어.”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거 이상하다. 난 똑바로 가는데 이 녀석이 눈이 삐었는지 자꾸 날 보고 왼쪽으로 간다고 하네.”하고 내가 엉거주춤 변명을 하자 아내가 “아이구, 이제 나이 드셔서 감각이 무뎌지셨나보다”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내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내 나이를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속으론 ‘이젠 다시 자전거도 못 타겠고 내 자전거의 꿈도 포기해야 하겠구나’하고 생각했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이었다.

꽃 대신 자전거
올해 따라 유난히 길게만 느껴졌던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자 아내가 정원을 손보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사다가 심기도 하고 화분 갈이도 하는 아내의 손길 따라 작은 정원이지만 화사한 봄기운이 돌았다.

11월이 되자 정원 입구의 화단에서 하얗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장미를 선두로 하여 구석구석에서 꽃들이 고개를 들고 피어났다. 마치 어린 시절 학교에서 선생님이 질문을 하시면서 “아는 사람 손들어요,”하면 “저요, 저요, 저요,”하면서 고사리 같은 손을 번쩍 들고 흔들던 아이들같이 그렇게 꽃들이 사방에서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저 구석엔 무엇을 심으면 좋을까요? 조금 허전해 보여서요,”하고 어느 날 아침 같이 정원에 나왔다가 아내가 내게 말했다. 아내의 눈길이 향한 곳은 벤치 옆 정원의 한구석이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구석이라 무엇을 심어도 잘될 것 같지 않았는데 아내의 말대로 좀 허전해 보였다. 순간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자전거를 사다 놓으면 어떨까?”하고 대답했다. “자전거요? 갑자기 무슨!” 하면서 아내가 눈을 크게 떴다.

“아, 언젠가 영화에선가 잡지에선가 본 기억이 있는데…. 아주 고풍스런 정원 한구석에 자전거가 서 있었고…. 그리고 그 자전거 위에 꽃바구니 같은 것이 걸려 있었는데 그렇게 멋져 보였어,”라고 내가 떠듬떠듬 설명을 하자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것 같은데요. 당신 어떻게 그런 그림을 다 그릴 줄 아세요?” 하면서 아내가 방글방글 웃었다.

그날 오후에 우린 자전거를 사러 나섰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새 자전거는 물론 아니고 중고 자전거도 아니고 폐(廢)자전거였기에 고물상을 뒤져보기로 했다.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물상이 있어서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과연 괜찮은 자전거가 있을까요?” 고물상이 가까워지자 아내가 물었다. “글쎄, 없으면 몇 군데 다녀봐야 하고 그래도 없으면 좀 기다려 봐야지. 급한 건 아니니까,”라고 답은 하면서도 나도 내심으론 궁금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곤 안으로 몇 발짝 걸어 들어가자 “저기 보세요,”하고 아내가 손을 들어 가리켰다. 자전거 한 대가 한쪽 벽에 기대 서 있었다. 하늘색 프레임에 흰색 바퀴 덮개가 있는 자전거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탈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장식용으로 갖다 놓기에는 아주 훌륭했다. 가격도 30불(우리 돈 25,000원 정도)로 생각보다 싸기에 돈을 내고 자전거를 차에 실었다.

헌 자전거와 동화의 나라
나온 김에 우리는 화원에 들러서 꽃바구니 두 개와 바구니에 심을 꽃을 샀다. 집으로 돌아와서 자전거를 미리 생각했던 장소에 놓자 마치 그 자리가 오래전부터 그 자전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이 잘 맞았다. 새 자전거라면 결코 풍겨낼 수 없는 친숙하고 다소곳한 자세로 자전거가 그 자리에 섰다.

조금 뒤 아내가 꽃을 심은 바구니를 들고 와서 하나는 짐받이 위에 올리고 하나는 뒷바퀴 앞에 내려놓자 정원 한구석에 머릿속에 그렸던 풍경이 들어섰다. 그 풍경은 결코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낯익은 정겨운 풍경이었다. 자전거의 하늘색 프레임은 맑고 푸른 봄 하늘의 하늘거리는 푸르름이었고 바퀴를 덮은 흰색은 지난 세월의 앙금을 덮어주는 봄 안개의 색깔이었다.

녹이 슬어 안장과 손잡이에 짙게 내려앉은 황동색에서는 언어로 나타낼 수 없는 어떤 깊은 사연이 묻어 나왔다. 그리고 자전거의 위아래에 얌전히 앉은 꽃바구니는 숨기고 감추려 해도 밖으로 그 자태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시골 색시의 모습이었다.

“별안간 우리가 무슨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아요. 꽃바구니를 실은 채 세워 놓은 걸 보면 요정들이 자전거를 타고 왔다가 잠깐 어디 간 것 같아요,”하고 흡족한 눈길로 자전거를 보고 있던 아내가 내게 말했다. 아내의 소녀 같은 말에 나도 잠깐 소년이 되기로 했다. 그래서 “그러게 말이요, 요정들이 어디 숨었나 우리 같이 찾아봅시다,”하고 답하며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둘이 쳐다보며 한 차례 허리를 잡고 웃었다.

드디어 이루어진 내 자전거의 꿈
한참을 웃던 아내가 돌연 나를 보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축하드려요. 드디어 평생의 꿈을 이루셨네요!” 뜬금없는 아내의 축하에 내가 “아니 무슨 꿈?”하고 반문하자 “아이참! 드디어 내 자전거의 꿈을 이루셨잖아요, 어려서부터 갖고 싶었던 내 자전거의 꿈이요,”하고 아내가 말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내 자전거의 꿈이 이루어졌기에 지금 정원에 서 있는 자전거가 그렇게 낯이 익어 보였고 무언가를 호소하는 것 같이 보였던 것이었다. 30불짜리 헌 자전거가 우리 정원에 들어온 그날은 바로 60년이 넘게 품어온 내 자전거의 꿈이 이루어진 날이었다.

타지는 못하고 보기만 하는 자전거지만 어릴 적 ‘내 자전거의 꿈’을 이루어 준 그 자전거는 때때로 나를 상상의 나라 속으로 인도한다. 그곳 상상의 나라에서 나는 마음껏 페달을 밟는다. 들판을 가로지르고 산을 넘고 하늘을 날아 그리운 옛날로 돌아가기도 하고 보고 싶은 옛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곳 상상의 나라에선 자전거도 나도 그 옛날의 젊음을 되찾는다.

자전거가 우리 정원에 들어온 뒤로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 부부는 창문 밖으로 자전거를 내다보며 아침 인사를 한다.

“자전거야, 안녕!”

우리의 아침 인사에 밤새 잠들었던 정원의 모든 것들이 기지개를 켠다. 담장 위 나팔꽃이 고개를 들고 포도나무 잎사귀가 큰 얼굴을 살래살래 흔들면 나뭇잎 사이 잠들었던 작은 새들이 짹짹거리며 몸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의 아침 인사에 답하듯 자전거는 의젓하고 다정한 자세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바라본다. 요즈음 우리 부부의 하루는 이렇게 자전거와의 아침 인사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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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동찬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사업 하다가 1985년 거듭남. 20년 간 Auckland Christian Assembly를 장로로 섬김.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는 성현의 말씀에 힘입어 감히 지나온 삶 속에서 느꼈던 감회를 시(詩)와 산문(散文)으로 자유롭게 풀어 연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