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테이블이 예배라면

주일 예배가 삶으로 나타나려면 실험해 봐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말씀을 삶에 적용하라고 하지만 조금은 먼 느낌이 든다. 어떤 말씀은 나의 상황과 전혀 맞지 않기도 하다. 언젠가 기억나는 순간도 있어서 많은 말씀을 꾸준히 들어두는 것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신앙은 미래의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하나님 나라이니 이를 어떻게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예배가 삶이 되면 된다.

커피를 나누며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는지, 그것이 정말 가능한지 실험해 본다. 신앙과 나를 돌아보기엔 커피가 참으로 훌륭하다. 삶에 가까이 있는 커피로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한 임재 연습이 필요하다. 하나님과 친밀한 예배 되게, 삶의 예배 되게 하자.

하나님의 동행 또는 임재로 시작되는 공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사랑하고 온전히 드려지는 모든 찬양과 경배 및 말씀 봉사 헌신 섬김의 순서 안에는 극도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그 극도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가 내 삶에 예술의 경지로 나타나기 위해 살아야 한다. 말씀을 살아내는 것으로 예배가 연속된다. 그러니 삶이 예배가 되게 하기 위해 커피 테이블은 매우 가깝다.

찬양을 드릴 뿐 아니라 이웃을 용납하고 용서하는 나를 발견할 때 내가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알 수 있다.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은 곱셈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수를 세는 것도 잊어버리라는 말씀이리라. 적어도 용서에서는 말이다.

결국 우리의 예배는 그렇게 삶으로 옮겨지고 나타나야 한다. 커피 테이블은 하나하나 시도해 보고 잘 안되는 것은 바꿔보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삶이 곧 예배 현장이 된다. 매우 적합하다.

‘찬양이 예배 되게, 예배가 예배 되게!!’

위와 같은 구호는 청년예배 갱신과 개혁에 있어서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되어서 사용된 문구이다. 바른 예배의 가르침으로 청년들을 예배에 목숨 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많은 곳에서 훌륭하게 적용되었다. 이것이 커피에도 적용될 수 있다. 실은 커피뿐 아니라 모든 것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삶의 예배가 드려지는 것 아니겠는가.

예배학적인 흐름에서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송영Doxology이 우리 공예배에 적용된다. 단순히 예배에서 들은 말씀을 적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우리 삶이 온통 예배가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관점인 이 둘, ‘제사와 송영’을 삶에 뺀다면 근본적으로 ‘삶의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구호만 남는다.

커피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당연히 커피를 내려야 한다. 잘 내려야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맛있게 내리는 것을 얘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커피 테이블에 임재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리는 것을 이야기한다. 

맛있는 커피의 정의가 뭘까 생각해 볼 때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좋아하는 커피’이다. 그 커피를 대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대접한다고 이것이 예배일까? 커피가 예배 되게 하려면 우린 하나님이 이 커피 테이블에 함께 하시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환영과 반가움을 넘어 대접하는 이 자리에 주의 임재가 가득하기를 바라야 한다. 특별한 경우에는 중보기도도 요청할 수 있다.

상한 심령에 위로가, 지친 영혼에 따뜻한 격려가, 힘을 잃고 방향을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생기와 비장함을 줄 수 있는 마음과 지혜가 임하도록 기도한다. 

집례자가 “묵도하심으로”라며 종을 치는 행위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교단적인 차이가 있으니 하나하나 다 설명할 수 없으나 본인이 몸담은 교회 예배의 순서를 생각하며 의미를 돌아보며 삶에 작은 예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커피를 갈고, 천천히 내리며 함께 앉는다.

대화 중 마음에 떠오르는 설교나 말씀 구절이 있을 것이다. 마음에 두어 대화할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다면 나눠도 좋다. 회개할 자리가 있다면 돌아보고 돌이켜 나가게 할 수 있다면 더 훌륭한 예배가 어디 있겠는가. 억지로 훈계한다고 뉘우친다면 이미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졌을 것이다.

해어질 땐 서로의 하루를 축복하고 사랑과 뜨거운 격려를 보낸다. 삶에서의 수고와 노력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축복하며 보내는 것이, 그리고 곧 다시 보자고 하는 것이 축도Benediction가 된다.

그렇게 예배를 연습하고 실행해 보고 시도해 보는 것 그것이 말씀대로 사는 삶의 예배가 되며 주일 예배의 연속으로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된다. 그렇게 커피 테이블은 예배가 된다.

모든 것을 대할 때 하나님을 대하는 것처럼 산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살게 될 것 아닌가. 예배는 고요하고 엄숙하게 드려지지만 어둡고 우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감사와 환희, 깨달음과 설렘 용기와 기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만날 때 가능하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니 삶의 예배를 드릴 때 온전한 믿지 않던 이에게 전도가 시작되는 것이다.

봄날이 좋으니 오래 전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러 작은 커피 테이블 찾아가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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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성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기를 너무 행복해하는 커피 노마드이자 문화선교로 영혼을 만나는 선교사. 커피, 서핑과 음악을 통해 젊은 이와 하나님 이야기를 나누며 밤낮이 없는 커피 테이블 호스트를 자청하여 청년 선교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