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팅 중이다. 200도에 맞춰서 개폐구를 열고 생두를 드럼 안으로 투여한다. 미디엄다크 로스팅 Full city Roasting 원두를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미소를 띤 플린의 얼굴에 연하게 땀이 맺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열기가 대단하다. 공간도 그의 움직임에도 말이다. 에스프레소 연구에서도 그렇지만 그의 커피 로스팅은 멈추지 않는 듯하다. 늘 그의 집중력도 로스팅의 향도 모두 강하고 찐하다. 따뜻한 온도는 마음에까지 전달된다.
“정말 그렇지. MZ세대 청년들과 대화하면 에니어그램이나 MBTI를 그렇게 많이 이야기해. 그러니 자신의 성향과 정서적 기질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관심을 보이는 것을 시작해서 지나치게 의존적이라는 생각도 들어. 조금만 깊이 얘기하면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증후군들까지 술술 얘기하는 청년들을 볼 수 있어. 약간 덕후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으니까. 뭐 지금 유행하는 것에 지나치게 끌려다닌다는 느낌이야.”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단정 지을 수가 없고 꾸준히 연관하여서 대화를 끌어가지 않으면 대화가 이어질 수 없다. “그러니까 네가 X세대인 거야.” 플린이 무심하게 툭 던진 말은 뼈가 있다. 의지적으로 혹은 억지로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야기를 들으며 로스팅 향에 어느 정도 넋이 나가 있었고 플린은 최근 경험을 넘어서 대화의 정서적 차원을 이야기하는 것에 푹 빠져 있다. 의식과 함께 무의식도 끌려가야만 한다나. 이해하기 어려운 차원의 이야기였다.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해학적이어서 그만해야 했다. 우리는 웃으며 주거니 받거니, ‘티키타카’ 했지만, 생각은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플린과의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자. 학부에서 영성 신학 Spiritual Formation을 전공한 까닭에 단순하고 일차적 본질에 관심이 많다. 하나님을 아는 것 말이다. 한 사람, 혹은 한 공동체의 변화와 발전뿐 아니라 깊이 있는 균형과 성장에 늘 마음이 간다. 그러니 단순한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서 시작하여 사회 모든 영역에 이른다.
영적 성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시작된 삶의 여정이다. 그렇게 균형 잡힌 삶이 중심에 있으니 이를 위해 상담은 필수적이다. 젊은 목사로 살면서 다양한 이슈들을 만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행복하다.
또 굳이 상담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많은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원하든 아니든 꼰대 같은 조언이 튀어나오게 된다. 이때 다 집어치우더라도 마음을 여는 놀라운 말은 늘 그렇지만 “커피는 언제나 옳은 것 같아. 커피 하러 갈까?”라고 마음을 전하면 누구든 선뜻 다가온다.
“아, 좋죠! 어디 계셔요?” 마치 우리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아듣지도 못하는 여러 말로 설명하시고 억지로 높은 하늘로 올라오라 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우리에게 내려오신 것처럼 그렇게 그들에게 다가간다.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성육신 incarnate 하신 하나님께서 성큼 다가오셔서 부드럽게 우리를 부르신다.
그 아름다우심과 거룩하심을 닮아 오늘 주신 삶을 풍성하게 살게 하신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하며 살도록 초청하시는 것 말이다. 커피 하며 그렇게 왕 같은 제사장과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으로 부르신 그 놀라운 부르심에 따라 꽉 찬 매일매일을 사는 것, 그렇게 영적인 여정의 걸음들을 하루하루 걷는다.
커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꽉 찬 삶을 사는 많은 방식 중 하나이다. 매사 한 사람과 그 한 사람의 영성이 최대 관심사이니 무엇을 하든지 이러고 살지 싶다. 다양한 것을 한 것 같아도 일관되게 한가지, 하나님만 위해서 사는 그런 삶이다. 음악을 해도 서핑을 해도 커피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 수많은 중요한 미팅들도 여전히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다가간다.
처음 만나는 이들은 그러한 나의 의도를 알아가면서 더욱 친해지기도 한다. 물론 부지런해야 하는 도시의 삶과 결이 맞지 않아서 어색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삶이 불편하지는 않다. 도시에서 선교하지만, 산속에서 수도원을 차리고 사는 것 같은 삶 말이다. 이는 심리적 불안정으로 정서의 균형이 깨어져 있더라도 개인 영성 Spirituality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플린이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변화하는 것을 민감하게 들여다보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 보면 주객이 전도된다는 이야기였다. 억지로 주장하고 고집부려 의지적으로 하려는 것의 결과는 늘 한계가 있다.
자연스러워야 한다. 끌려다니며 중심을 잡지 못하면 혼란스럽거나 대화가 매끄럽지 못하다. 무의식까지 변화되어 하나님의 기뻐하시며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찾는다면 그 사람은 전 존재가 온전히 하나님과 일치한 삶의 예배를 사는 이가 된다. 온전히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얘기이다.
글을 쓰는 동안 음악 하는 친구가 도착했다. 플린이 하리오 V60를 꺼내어 이틀 전 볶은 미디엄로스트 원두를 갈아서 천천히 내린다. 환대의 향긋한 커피 테이블로 초대하고 120ml의 따뜻한 드립커피로 새로운 대화의 문을 열어본다. 하나님과 온전한 사귐이 시작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까지 이야기를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