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봄
1972년 봄, 그때 난 대학을 막 졸업했고 입대 날짜를 받아 놓은 상태였다. 군대에 가기 전 약 한 달 동안을 난 학교 앞 다방에서 살았다.
학교 앞에는 다방이 두 군데 있었는데 졸업식이 끝나고 친구들 모두가 제 갈 곳으로 뿔뿔이 흩어진 그때, 내 발길이 절로 향했던 곳은 고전음악을 잘 들려주기로 유명한 학림(學林)다방이었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라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 음악이 큰소리로 나를 반겨주던 그 다방은 대학 시절 내내 나의 은신처이기도 했었다.
그때, 대학 생활을 너무도 좋아했기에 중간에 일 년 휴학을 하면서까지 연구실과 교정을 껴안고 있다가 밀려나듯 졸업을 했던 그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군복무를 위한 입대 날짜를 불과 한 달 앞으로 통보받고 있었던 그때, 나는 아직도 사회에 나갈 마음의 준비를 못 갖추고 학교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나의 모습이었다. 남들은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하며 취직 걱정도 하고 유학을 꿈꾸기도 하고 아니면 군대 가기 전에 실컷 연애해야 한다고 여자친구와 쏘다니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책과 노트를 옆구리에 끼고 출근하듯 다방 문을 열고 들어와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커피 한 잔 시키고 담배 피워 물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그때가 내 삶에서 진공상태에 비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오직 입대할 시간이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그때, 미래의 일은 군대 가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군대에 가 있는 동안 형편이 허락된다면 제대 후 공부를 더 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여의치 못한 경우는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몇 년 후의 일을 미리 생각하기보다는 ‘카르페 디엠’, 현재의 주어진 시간을 그냥 꼭 붙잡고 싶었다.
아직도 이십 대 초반에 머물러있던 그때, 나는 왜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과거를 돌아보기를 그렇게 즐겼는지 모르겠다. 삶이 무엇인가의 문제를 풀기 전에는 무엇이 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평생 갖고 있었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고개를 뒤로 돌리고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찾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때로는 모르면서.
그때, 입대를 기다리던 한 달 남짓 1972년 봄, 학교 앞 다방 한구석에 칩거하며 나는 참 많은 음악을 들었다.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며 그러면서 시시때때로 대학노트에다 글도 많이 썼다. 그때 대학노트들을 나는 아직도 지니고 있다. 그 노트들을 가끔 열어보면서 나는 내 젊은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아, 안타깝도록 아름답던 시절들!
봄의 한구석에서, 이 시(詩)도 그때 썼던 글 중의 하나이다. 내 젊은 날의 흔적이다.
봄의 한구석에서
가슴이 써늘하도록 따끈한
다갈색 커피 한잔을
흰 담배 연기와 섞어
피부 속으로 곱게 접어 넣고
다실 한구석
파란 유리창 밖엔
봄
나뭇가지 사이를 밀고 들어오는
봄 봄 봄
-그리고 그
봄과 더불어 나타나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속삭임-
나무 너머로
옛 거리, 그 위로
날아오르는 작은 먼지와
따사한 햇볕의
반짝이는 속삭임,
그 빛남 속에 어우러지는 어린 나날들, 그
부드러운 세월의 틈바귀 사이로
비죽비죽 머리 내미는
과거 속으로 상실되었던
아름다운 것들
-엄마와 같이 불었던
비눗방울
어린 동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언젠가
잃어버렸던 하얀 도화지 한 장
다시 한잔의 커피,
그 따스한 감촉에
내 손이 떨리고
피어오르는 내음 속에
추억이 흩날리는 봄,
그 다실의 한구석
그리고 2023년 봄
그로부터 반세기도 더 지난 2023년 봄, 난 길고 먼 이국에서의 방황을 접고 아내의 손을 잡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길 내내 젊은 날 뜻도 모르고 흥얼거렸던 옛 시인의 귀거래사(歸去來辭)가 가슴 한구석에서 울어 댔다. 풋풋하던 젊음은 가고 오랜 세월의 풍상(風霜)에 시달린 노년의 몸으로 돌아왔지만 고국은 예나 다름없는 따뜻한 품으로 우리 부부를 맞아주었다.
귀국한 지 며칠 안 된 어느 아침, 집 안으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에 이끌려 베란다로 나갔다. 우리가 이사 온 아파트 가까이 있는 작은 산자락 위로 봄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햇살 따라 무심코 눈길을 돌리다 산자락 가장 낮은 곳에 막 피어나기 시작한 한 무리의 철쭉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산자락을 따라 도열하듯 철쭉의 무리가 심겨 있었다. 봄이 무르익을수록 산자락을 가득 메우며 피어오를 철쭉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다가 나도 모르게 ‘아’하는 신음을 토해냈다.
긴긴 겨울을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도 철쭉은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꽃을 피워 낸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런 철쭉에게 봄은 따사로운 햇볕과 부드러운 바람으로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국에서의 긴 방황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온 나에게 필요한 것이 철쭉의 자세라고 느꼈기에 ‘아’하고 신음이 나온 것이었다.
너무 늦게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서두르지 말자. 엎드려 있다가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꽃을 피우는 철쭉처럼 가장 겸허하고 기다리는 자세로 고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아주 작은 노년의 꽃이라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2023년의 어느 봄날 아침, 피어나는 철쭉을 보며 느꼈던 작은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