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있으면서 구글의 지도 서비스 기능을 이용해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생활하며 목회하는 동안 방문하였던 남섬 추억의 장소들을 소환해 보곤 한다.
주말이면 가족들과 피크닉 삼아 종종 찾아갔던 케시미어 언덕과 썸너 비치, 환상적인 시골 풍경을 뒤로하며 도착하는 프랑스풍의 항구도시 아카로아, 별이 쏟아지는 금빛 해변의 휴양도시 넬슨과 타스만 국립공원, 거친 파도와 암벽을 따라가며 고래를 구경할 수 있는 카이코라, 그리고 평생에 꼭 한번은 방문해야 할 밀포드 사운드와 여왕의 도시 퀸즈타운…. 한결같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 명소들이다. 베트남에서 뉴질랜드가 생각날 때마다 우리 부부가 찾는 곳이 가까이 있는 산과 바다이다.
현재 우리 부부가 2개월여 단기로 머물고 있는 하노이 숙소는 서호라는 호수로 둘러싸인 곳이다. 서호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꽝안이라는 동네가 있어서 주로 서양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 하노이에서 6개월 정도 베트남어 수업을 듣는 동안 처음 4개월은 학교와 가까우면서 한인 밀집 지역과도 멀지 않은 미딩이라는 지역에서 지냈다. 이유는 대중교통 이용이 비교적 용이하고 학교와 교회를 오가는데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숙소에 만족하였지만 머무는 동안 내부 공사를 시작하면서 처음 몇 달간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이제는 좀 지낼만 하다 싶으니 이번에는 바로 옆집에서 다시 공사를 시작하여 벽에서 드릴로 뚫는 소리가 들려서 견디기 힘들었다. 베트남 대도시 주택 구조는 옆집과 벽체가 거의 붙어있는 구조이다 보니 소음을 피해 갈 수가 없다. 더운 낮에는 일하기가 힘드니 아침 시간,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공사하는 경우가 많아 이른 아침과 주말에도 예외가 없다.
하루 이틀에 끝날 공사가 아니어서 조용한 지역을 찾아 숙소를 알아보았다. 가까운 곳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난감해하던 차에 서호지역에 있는 숙소에서 한 달 프로모션으로 평상시 가격의 절반 이하로 나온 B&B 숙소가 있어 답사 후 지금 이곳에 머물고 있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물과 같은 곳이었다.
한국인 부부가 주인인 이곳의 남편분은 삼성맨으로 젊은 시절 대한민국 성장의 디딤돌 역활을 하다 14년 전 하노이에 와서 현지 중소기업 사장으로 지내는 70을 바라보는 집사님이시다. 부인은 영국에서 두 자녀와 유학하는 동안 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한국과 하노이 건축 대학교에서 현재 교수로 근무하는 분이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두 분의 배려로 우리 부부는 소음과 교통체증 그리고 탁한 공기로 부정적인 이미지만 남았을 하노이에서의 남은 시간을 정말 감사히 지내고 있다. 하노이 방문 시 소음과 교통체증으로 불편한 경험을 하였던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이곳 서호에서 머물러 볼 것을 추천한다.
서호에서도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꽝안 끝자락에는 호수와 인접해 있는 푸타이호라는 아담한 사원이 있어 하노이 사람들이 자주 찾는 명소 중 한 곳이다. 평소 주말에만 북적이던 이곳이 지난 수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유난히 북적이는 것을 보고 이상하여 물어보니 그날은 8월 16일, 음력으로 7월 1일이었다.
베트남은 불교, 도교, 천주교와 같은 비교적 인구 비중이 많은 종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조상을 모시는 제단이 가정과 사무실 곳곳에 놓여있다. 심지어 버스와 같은 차량 운전석 옆에도 놓여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기복적인 경향이 강한 베트남 사람들은 음력으로 매달 1일과 15일에는 반드시 조상을 모시는 제단에 음식을 드리고 기도하는 것은 기본이고 사원이나 절에 들러 기원을 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음력 7월 1일은 더 중요하게 기념하는 날이라서 많은 사람이 한낮에 사원을 찾아 조상신에게 가짜 돈을 태우고 음식을 바치고 있었다.
음력 7월은 조상신들이 집으로 돌아온다고 믿으며 이때는 귀신들이 돌아다녀 사고가 많이 난다고 생각해 평소보다 조심하며 사고팔거나 공사를 하는 것도 피하고 차량이나 집을 구매하는 것도 가급적 기피한다. 대신 사원을 찾아 가짜 돈과 종이로 만든 집, 자동차 심지어는 종이 스마트폰도 만들어서 조상신을 위로하고자 불로 태우곤 한다.
조상신에게 드리는 제단에는 한국의 오리온에서 제조한 초코파이는 제사 필수 제품이다. 제물에 드리는 음식이나 과자는 대개 부를 상징하는 붉은색을 선호하는데 초코파이가 베트남 사람들 제단에 오르는 것을 보며 묘한 생각이 든다. 때때로 길가에서 빨간 글씨가 있는 부적 종이들을 태우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또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귀신들로부터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 행위라 한다.
베트남에서는 종종 오래된 건물이나 돌기둥 등에 한자가 여전히 쓰여진 것을 볼 수 있다. 한자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한자의 뜻을 알 수 있지만 베트남의 젊은 세대는 한자를 배우지 않아 이정표로 세운 돌기둥에 쓰인 한문을 읽지 못한 채 돌기둥에 제단을 쌓고 귀신을 위로한답시고 제사를 지내는 일들도 종종 있다 한다.
베트남의 종교
베트남은 외래문화를 받아들일 때 기존의 문화와 결합하여 그것이 종교이든 민간 신앙이든지 서로 융화하는 문화이다. 이유는 베트남의 지리적인 특성에 있다. 북쪽으로는 중국, 남쪽으로는 태국만에서 인도양으로, 동쪽으로는 동해(남중국해)를 통해 태평양으로, 서쪽으로는 라오스 캄보디아를 통해 미얀마와 인도로까지 연결하는 동서남북의 교차 지점에 위치해 있어 문화를 수용하는 데 용이하다.
베트남 중부 지역에 가면 호이안이라는 유명 관광지가 있다. 다낭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호이안은 16~17세기경 동남아 최고의 무역항으로 손꼽혔던 곳이다. 육로 교통이 발달하기 전 강을 이용하여 내륙으로 들어오는 길목이어서 중국과 일본 등 여러나라 무역상들이 방문하여 무역의 중심을 이루었던 지역이다. 베트남 최초의 개신교회도 중부 지역 다낭에 맨 먼저 세워졌다.
베트남은 공산화가 되었을 때 북한이나 중국과 달리 민간 신앙을 말살시키지 않아서 지금도 민간신앙 가운데서 가장 성행하는 것이 조상숭배이다. 전 국민의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베트남인들은 조상 숭배를 생활의 일부로 생각한다. 베트남 속담에 “무덤을 위해 살지 밥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조상과 함께하는 것을 중요시하여 자신의 생활 반경 가까이에 두기 위해 논이나 밭 위에 무덤을 만들었다. 우기에 강이 범람하여 침수가 되는 환경적 조건을 가지고 있기에 무덤이 물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직사각형의 시멘트 무덤을 만들어 놓을 정도이다.
베트남에서 오랜 기간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공통적으로 기독교 복음전파에 가장 강력하게 부딪히는 세력이 조상숭배 관습이라고 한다. 베트남은 유독 조상숭배와 귀신 숭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조상들은 돌아올 수 없는 저세상으로 떠났지만 남은 자식과 손자들을 위해 함께하며 어려운 일 가운데 지켜주는 신령한 존재라고 믿어 왔다.
더 나아가 조상들은 자식과 손자들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을 했거나 잘못했을 때에는 충고하기도 하고 심지어 노하며 꾸짖을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 조상에 대한 숭배사상은 베트남 사람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요즈음 아직 한낮의 기온이 여전히 뜨겁지만 가끔 가을볕 같은 햇살이 느껴지곤 한다. 얼마 전 줌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후에 여대생 깜투는 집안의 벼 수확으로 바빠 일손을 도와야 한다며 수업을 부득불 참여치 못해 죄송해 하며 연락을 주었다. 그동안 지도해 오던 후에 외국어대 한국어과 학생 카잉번이 이번 9월 전북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선발되어 학기를 준비하고 있어 격려하며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꼭 교회에 가볼 것을 권면하였다.
씨를 뿌리며 한여름 무더위를 견디어 온 농부에게 수확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삶도 많이 뿌렸든 적게 뿌렸든 그 결실을 볼 날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우리의 하루하루가 추수 때를 사모하며 씨를 뿌리는 날들이길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