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한 벤치

“그 할머니 이사 가셨겠지요?”

어제 오후 모처럼 햇살이 포근하였다. 점심을 먹은 뒤 정원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내가 문득 내게 물었다. 그렇게 묻는 아내의 표정에서 가을바람 같은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다.

나는 아내가 말하는 그 할머니가 누군지 알았다. 그래서 “아, 그 할머니,”하고 맞받으며 잠시 뜸을 들였다. “글쎄, 그때 이사 준비를 하고 계셨으니 벌써 가셨겠지. 정이 많은 할머니시니 어디 가시든 잘 사실 거요,”라고 내가 답하자 아내도, “글쎄, 그러셨으면 좋겠어요,”하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내의 크고 맑은 눈 안으로 봄 하늘의 푸르름이 내려앉았다.

‘그 할머니’는 약 한 달 전에 우리에게 지금 앉아있는 벤치를 파신 분이다. 아내가 정원에 벤치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가구점을 돌아다녔지만 값만 비싸고 마땅한 것이 없었다. 중고도 괜찮다는 생각에 트레이드 미(Trade me: 뉴질랜드 최대의 인터넷 판매 사이트)를 뒤적거리다 괜찮은 것이 눈에 띄어 샀다.

좀 헐어 보였지만 집에 가져와서 칠만 새로 하면 정원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다행히 벤치를 파신 분의 집이 멀지 않은 곳이었다. 전화로 약속을 정하고 아내와 같이 벤치를 가지러 갔다. 집 앞에 차를 대고 초인종을 누르니 꽤 나이 드신 할머니가 나오셔서 우리를 안내했다.

할머니와 벤치
잘 가꾸어 놓은 정원 한가운데에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오랜 세월 그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는 느낌이 풍기는 커다란 나무였다. 그리고 그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듯 흰 나무 벤치가 하나 앉아 있었다. 할머니께서 손짓으로 이 벤치라고 확인해 주셨다. 상태가 괜찮기에 나는 할머니께 벤치 값을 드리고 아내와 같이 벤치를 들을 준비를 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더니 “I’m sorry,”하고 말문을 여시더니 더 이상 말씀을 못 하셨다.

나는 할머니께서 너무 연로하셔서 말씀을 더듬으시나 하고 잠깐 기다렸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다시 “I’m sorry,”하시더니 또 말을 잇지 못하셨다. 나는 그 순간 할머니께서 우리가 벤치를 운반하는 것을 도와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벤치가 생각보다 무겁지 않고 우리 둘이 충분히 들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이번엔 할머니께서 고개를 저으며 그게 아니고 자기는 벤치와 헤어지는 것이 너무 속이 상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이 벤치가 이 나무 아래 사십 년 이상 있었고 남편이 살아 계실 때 둘이 같이 앉아 차를 마시던 것이라고 하셨다. 이제는 도저히 이 집을 혼자 관리할 수 없어 팔았고 다음 달에 양로원으로 들어가시는데 아무리 정든 벤치지만 갖고 갈 수 없어 정리하지만 너무도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 부부도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참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조금 있다가 할머니께서 빨개진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다시, “I’m sorry,”라고 하시며 빨리 갖고 가라고 하셨다. 이번의 “I’m sorry,”는 분명 괜한 소리를 해서 미안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할머니께 우리가 가져가서 할머니 생각을 하며 잘 아끼며 사용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제야 할머니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가 벤치를 차에 싣는 것을 지켜보시다 손을 흔들어 배웅하셨다.

그렇게 가져온 벤치이기에 우리는 그 벤치를 가져다 정성껏 손을 보고 흰색으로 페인트칠을 잘해서 정원 한구석에 잘 모셨다. 사십 년이 넘은 벤치지만 나무가 워낙 좋은 것인지 뼈대가 튼튼하고 상한 곳도 없고 앉으면 편안해서 우리 부부가 즐겨 애용하는 벤치이다. 게다가 이 벤치에 담겨있을 할머니와 또 얼굴도 못 뵈었지만 할머니만큼 다정하셨을 할아버지와의 삶과 사랑을 생각할 때엔 더욱 이 벤치가 정겨워지고 귀하게 느껴진다. 오늘 아내가 할머니 이야기를 꺼낸 것도 바로 그런 연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원에 벤치가 필요하다고 가구점에 가서 새것을 사 왔으면 아마도 이것보다 한결 모양은 더 좋았을지 모르지만 그 벤치는 그저 하나의 벤치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약간의 수고를 마다하고 쓰던 것을 찾다가 주인에게 사랑받던 벤치를 사 왔기에 이 벤치는 우리 부부에게도 특별한 벤치가 되었다.

언젠가 우리 부부도 누군가에게 이 벤치를 넘겨줄 때가 되면 벤치만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이 벤치에 담긴 우리 부부의 사랑과 또 가능하면 아름다운 사연을 같이 넘겨주었으면 하는 생각까지도 해본다.

어제 오후 햇살이 좋던 오후 벤치에 앉아 할머니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나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詩)의 일부가 떠올랐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하략)

두어 달 전에 나는 이 시(詩)를 가지고 노인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강의를 들으시던 분들이 모두 오십 명이 넘으셨는데 평균 연세가 팔십이 넘는 분들이셨다. 나는 그때 어르신들께 “이 자리에 오십 분이 넘는 어르신들이 오셨는데 이는 참으로 어마어마한 일입니다.”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여기 오시면서 그냥 오시지 않고 팔십 년이 넘는 삶과 같이 오셨으니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연세를 합치면 사천 년이 넘는데 이는 우리 한국의 역사와 거의 같으니 이 또한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입니까?”라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며 또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날 강의를 끝내면서 나는 어르신들께,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어마어마한 사람입니다. 이제까지는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었겠지만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 모두는 이제껏 살아온 삶의 사연과 앞으로 살아갈 꿈까지 품고 계신 참으로 놀라운 존재입니다. 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입니까? 이제부터는 어르신들 모두 결코 ‘노인네’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마시고 서로서로를 ‘어마어마한 분’이라고 부르시면 앞으로의 삶이 훨씬 어마어마해질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모두 좋아하시면서 밝게 웃으셨다.

어제 오후 별안간 이 시(詩)가 생각난 것은 어마어마한 것은 사람뿐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사물도 마찬가지라는 깨달음이 왔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에게서 사 와서 우리 것이 된 벤치는 그 사연을 알았을 때 단순한 벤치가 아니라 우리 부부에게 어마어마한 것이 되었다.

그렇다. 애정을 가지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보면 그중 많은 것들에 우리 또는 타인의 삶과 사연이 배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느끼는 순간 그 사물은 단순한 물건에서 우리에게 무언가 어마어마한 것이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우리 주변, 아니 우선은 내게 속한 소유물부터 다른 눈으로 살펴보자. 내가 지금도 즐겨 입고 있는 옷 중에는 뉴질랜드 오기 전 한국에서 입었던 옷이 꽤 있다. 삼십 년도 넘는 옷들이다. 유행은 지났지만 아직도 그 옷들을 아끼는 이유는 옷 하나하나에 묻어 있는 추억 때문이다. 그 옷을 입을 때 나는 추억도 같이 입는다. 그리고 그 옛날 그 옷을 입고 만났던 사람도 어느덧 내 곁에 다가와 다정히 말을 건다. 남이 보기엔 헌 옷이지만 내겐 어마어마한 옷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만년필은 오십 년이 넘었다. 대학교 2학년 때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은 것인데 아직도 잘 쓰고 있다. 지금은 잉크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애써 구한 잉크병을 열고 만년필촉을 담아 잉크를 넣은 뒤 흰 백지 위에 글을 쓰는 그 감촉은 써본 사람만이 안다. 머릿속에 담긴 생각을 금빛 촉이 백지 위에 글로 풀어내는 그때 가슴속에선 오십 년의 오랜 세월 동안 만년필에 담겨 온 추억과 사연이 출렁인다. 어느덧 손때 묻은 내 만년필이 나의 어마어마한 친구가 되는 순간이다.

일회용 물품이 판을 치고 옷이고 가구고 전자제품이고 새것만을 찾는 것이 요즈음의 세상 인심이지만 내 주변의 사람과 사물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오래된 것의 귀함을 깨달을 수가 있다.

트레이드 미에서 사십 년이 넘은 벤치를 사면서 그 벤치를 떠나보내며 눈시울이 붉어지시던 할머니에게서 우리 부부는 참으로 귀한 교훈을 배웠다. 그리고 사십 년이 넘은 그 헌 벤치는 할머니의 사랑과 더불어 우리 부부에게 와서 어마어마한 벤치로 새롭게 태어나 우리 정원 한구석에 고즈넉이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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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동찬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사업 하다가 1985년 거듭남. 20년 간 Auckland Christian Assembly를 장로로 섬김.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는 성현의 말씀에 힘입어 감히 지나온 삶 속에서 느꼈던 감회를 시(詩)와 산문(散文)으로 자유롭게 풀어 연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