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마음, 거미에게 배우다

기다리는 마음
설악산
흘림골 산길을 걸었다
오색약수까지 길은 멀기만 한데
비는 부슬부슬
안개는 자옥

큰비 만나기 전
빨리 가야 할 터인데
땅만 보고 걷다
문득 고개를 드니
허공을 가로지른 거미집
그 한가운데 거미 한 마리

왜 그리도 급하세요
귓가에 들려오는
거미의 속삭임
비가 와도 안개가 껴도
전 기다리고 있지요
언젠가는 절 찾아올
그 누군가를

행여 거미줄 다칠까
조심스레
작은 걸음으로 지나며
거미에게 배운
기다리는 마음

오색약수 남은 길이
한결 가벼웠다.

흘림골 계곡 길
몇 해 전 중국에서 발발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간 코로나(코비드 19)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인 뉴질랜드마저도 코로나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정부와 국민이 힘을 합해 예방과 치료에 힘써 좀 좋아지나 하다가도 돌연 사태가 다시 나빠져 봉쇄령 수위가 올라가는 상황이 반복되는 가운데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습니다.

국민들의 궁금증도 해소해 주고 또 경각심도 일깨워 주기 위해 매일 오후 1시가 되면 티브이와 라디오에서 코로나에 관한 특별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발표되는 확진자 수의 증감에 일희일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일은 좋아질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붙들고 서로를 다독거리며 또 내일을 기다렸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그날도 티브이 앞에서 1시 뉴스를 기다리다가 저는 문득 몇 년 전에 한국에 갔다 들렸던 설악산 흘림골 산길이 생각났습니다.

아내와 같이 흘림골에서 오색약수까지 걸었는데 중간쯤 왔을 때 별안간 하늘에 구름이 모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곧 바람이 불고 안개가 끼고 드디어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에 대한 준비가 없었기에 우리는 마음이 급해져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큰비는 아니었지만 불안한 마음이 들자 경치도 눈에 안 들어왔고 땅만 보고 급히 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큰 나무 밑을 지나며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을 때 제 눈을 꽉 채우고 들어온 것은 허공에 걸려있는 거미줄이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거미줄 한가운데 거미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는 거미는 바람도 안개도 비도 개의치 않는 태연한 모습이었습니다. 오히려 허겁지겁 걷는 우리 부부를 안쓰러운 눈으로 내려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옆에 있는 아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여보 우리 천천히 갑시다. 큰비는 안 올 것 같으니까.” 거미줄과 저를 번갈아 보던 아내가 미소로 답했습니다. 우리는 행여 거미줄 다칠까 조심스레 작은 걸음으로 지나왔습니다.

위의 시(詩)는 흘림골 산길을 무사히 걷고 났던 그 저녁 오색약수 숙소에서 쓴 것입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거미도 날씨와 상관없이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그날 우리 부부가 거미에게 배운 것은 기다리는 마음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힘든 날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모두 기다리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조심하며 서로 돕고 지혜롭게 행동하며 기다리면 그 옛날 솔로몬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말했듯이 힘든 날은 물러가고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이전 기사하나님의 인치심(Seal of God)
다음 기사리어카 목마
김 동찬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사업 하다가 1985년 거듭남. 20년 간 Auckland Christian Assembly를 장로로 섬김.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는 성현의 말씀에 힘입어 감히 지나온 삶 속에서 느꼈던 감회를 시(詩)와 산문(散文)으로 자유롭게 풀어 연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