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좋다고 해외에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희준이가 그랬으니까. 단순히 커피 맛이 좋아서 카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커피 농장과 농장주들을 만나고 새로운 곳을 찾아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웰링턴으로 내려간 희준이가 2년 반 동안 조용히 지내다 문자를 보내왔다. 가끔 소셜미디어를 통해 안부 전하는 정도로 지냈다. 그렇게 잘 지내는 듯하다가 갑자기 연락이 온 것이다. 보고 싶다고 오클랜드로 훌쩍 올라온단다. 그러고는 말 그대로 진짜 훌쩍 올라왔다.
당일 스케줄도 그렇고 너무 갑작스러워 말리려다 녀석의 말이 진심인 것 같다. 못 이기는 듯이 올라오라 했는데 다음날 비행기로 왔다. 바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은 성격이니 모든 것을 미리 마치거나 다음 새벽으로 미뤄야 했다.
이런 나의 개인적인 사정은 알지도 못하는지 지낼 곳이 없다고 해서 우리 집 작은 방 한 칸을 내어주었다. 근데 참 이상했다. 마음 한 켠이 기대하지 않았던 따스함으로 미소가 가득 번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목사님 너무 좋아요! 하루만 묵을 거니까 저랑 꼭 시간 가져주세요.”
뭐 이렇게 대책 없는 사명감으로만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 희준이와 같은 친구들은 더없이 반갑고 귀한 존재이다.
하나님 눈에는 주를 찾고 의지하며 기대어 서는 모든 믿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가 생각한다. 하지만 어이없는 희준이도, 대책 없는 나도, 그러려니 바라보는 아내가 정말 대단하다 싶다. 다섯 살 아이는 삼촌이 온다고 마냥 신나 있으니 염려와 수고는 아내의 몫이 된다.
이런 나는 이상한 딜레마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버려진 마음들과 잃어버린 영혼들, 가난한 마음을 한 이들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또 중보기도는 사역의 꽃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성령께서 중보 하라고 하시는 것 같아서 언제나 생각나면 자의이든 타의이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런 이들과 함께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있다.
특별한 기도회 때에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운전하다가, 새벽 바다에 나가 묵상하며 산책하다가, 서핑 버디들과 파도를 기다리며 물에 들어가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나 그들이 떠오르면 어김없이 그들을 위해 중보한다.
그러니 나에게 이 모든 것이 은혜가 아닐 수 없지. 그들 한명이 나의 간구이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유가 된다. 그들이 잘되어 소식이 없더라도, 또 그들이 즐거이 반가운 소식을 들고 찾아오더라도 그러하다. 감사와 기쁨의 노래를 부를 이유가 된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되고 이유가 되고 삶이 된다.
이번에 희준이가 온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뉴질랜드 커피, 플렛 화이트가 시작된 도시인 웰링턴으로 내려가 정착하고는 부지런히 바리스타로 지내온 지난 2년간의 이야기를 덤덤히 이어갔다.
“목사님 제 인스타에 응원도 해주셨지만, 지난달에 에어로프레스 챔피언십에 사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했는데, 우승을 했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참가와 도전에 의미를 둔 대회에서 그냥 우승을 해버리니, 좀 놀랐어요. 쉬운 것은 아니었거든요.”
고개를 끄덕이며 옅게 웃어 보였다. “근데 마음을 비우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한 것이 그런 결과를 가지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꿈 같은 그런 대회가 되었어요.”
희준이가 주변 한인들 사이에선 나름 에어로 프레스 달인일 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에 일상이 올라오고 있어서 소식을 알고 있었다.
“이어. 멋져. 한방에 골든 체임버까지 받아오고 말이지.”
이제 골든 에어로프레스를 수상한지도 시간이 흘러 조금 식었을 법한 그런 이야기이다. 그래서인가 희준이의 얼굴이 의외로 답답해 보였다. 그다지 기뻐 보이거나 신이나 있지 않았다. 자신이 훌륭한 바리스타거나 커피로 세상을 얻는 거품 같은 것이 조금 빠진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말이다.
“근데 생각이 많아 보이는데? 평소 같지 않게 얼굴이 어둡고 그러네. 괜히 기분 탓인가? 좀 그렇게 보이는데 난?”
같이 마실 커피를 거실 커피코너 위 하나하나 살펴보고 고르면서 이야기 듣고 또 말했다.
희준이는 꽃향기가 좋은 커피를 좋아한다. 네추럴 프로세스의 과테말라 오리진을 12그램 싱글샷으로 내려 달달 상큼하게 리스트레토로 마셔야겠다 정하고 물어봤다. 여전했고 정확했다.
사실 복숭아과에 트로피컬 한 꽃 내음과 상당히 복합적인 노트를 가진 커피였다. 커피를 그라인더에 갈 때 이미 향긋함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