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God does not show favouritism -”

로마서 2장 11-12절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Romans 2:11-12(New International Version)
“For God does not show favouritism. All who sin apart from the law will also perish apart from the law, and all who sin under the law will be judged by the law.”

의역: NIV 성경을 기반으로 필자가 재 번역하다
“하나님께서는 편애를 보이시지 않습니다. 율법을 모르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과 상관없이 소멸될 것이고, 율법(아래서)을 알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을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단어공부
Favouritism: 편애, 편파 Apart from: ~외에는, ~을 제외하고, ~외에도
Perish: 죽다, 비명횡사하다, 소멸되다, 닳다.

말씀의 나눔

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원리이다. 헬라어 원어로 외모란 얼굴을 의미한다. 우리가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어느 민족에 속해 있는지 알게 되는 것처럼 원래 성경의 의미대로라면 이 또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이란 뜻이다. 로마교회 안에서 유대인 형제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란 특권 의식속에 살았다. 하지만 심판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결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유대인들만을 가려내어 그들을 심판하지 않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NIV 영역 성경은 이것을‘favouritism’이라 표현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특혜를 주거나 편파적으로 그를 대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이다. 그래서 12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 All who sin apart from the law will also perish apart from the law, and all who sin under the law will be judged by the law.”

율법 없이란 말은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을, 율법이 있는 이란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유대인을 의미한다. 이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서 율법을 알고 있었느냐 혹은 알지 못했느냐에 따라 심판을 받고 안 받고가 결정되지 않고 율법이 없어도 혹은 율법을 가지고 있어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란 말씀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 For it is not those who hear the law who are righteous in God’s sight, but it is those who obey the law who will be declared righteous (롬2:13)” 그렇다!! 누가 율법을 들었냐, 가졌냐, 혹은 받았느냐에 따라 의인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함을 입을 것이다.

이곳에서 말하는 율법을 듣는 자란 그저 율법의 존재를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배워서 곧 학습을 통해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식이란 아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지식이 중요하고 효용 가치가 있는 것은 그 지식이 적재적소에 사용될 때이다.

따라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율법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율법을 잘 아는 데 있지 않고 그 율법을 행하는 데에 있다. 교회와 성도는 말씀을 잘 아는 데 그치지 말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교회로서 그리고 성도로서 그 가치가 증명된다.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율법이 이방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방인들은 어떤 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될까? 이어지는 말씀에 그것은 그들 곧 이방인들의 마음에 새겨진 율법에 의해서라 표현하고 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 – (Indeed, when Gentiles, who do not have the law, do by nature things required by the law, they are a law for themselves, even though they do not have the law, since they show that the requirements of the law are written on their hearts, their consciences also bearing witness, and their thoughts now accusing, now even defending them) (롬 2:14-15).”

원문에는 괄호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괄호가 삽입된 이유는 유대인뿐 아니라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이 율법의 일을 행하는 일이 있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인간의 범죄함으로 인해 변하였을지라도 인간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양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양심은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는 일반계시의 한 통로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이 양심은 늘 선과 악 사이에서 우리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양심이란 ‘선한 마음’이란 뜻인데 영문으로 표기되는 ‘conscience’는 ‘con – together’라는 말과 ‘science – 학문, 기술 과학’이란 말을 함께 가지고 있는 단어로 이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함께 보는 것’ 또는 ‘공동으로 인식하는 것’이란 뜻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양심도 우리를 죄로부터 구속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율법도 사람을 구속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양심 또한 그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능력이 없다.

양심의 문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한다.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그 사람의 양심에 복종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선과 악의 기로에서 양심에 따라 언제나 선한 것만을 선택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인간은 혼자 힘으로 자신의 양심에 의해 언제나 선을 선택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에 복음이 필요한 것이다. 왜? 양심이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복음을 말하고 있다.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 This will take place on the day when God will judge men’s secrets through Jesus Christ, as my gospel declares (롬 2:16).”

하나님의 심판의 원리는 바로 복음이다. 양심이 아무리 위대해도 하나님은 그 양심을 따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God will judge men’s secrets through Jesus Christ – 하나님은 인간의 은밀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심판하실 것이다’라고 천명한다.

그렇다! 양심에 따라 선하게 살고 행동했을지라도 결국 모든 인간은 그 양심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심판받을 것이다. 그것은 양심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닌 행하는 자가 의인이다. 양심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새겨 놓으신 또 하나의 율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은 그 양심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통로는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교회와 성도를 향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 곧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핏값으로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영어 한마디!

It is a sort of favouritism.
그건 일종의 편애입니다.

It is not favoritisms, it is compassion.
그것은 편애가 아니라 동정심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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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뉴질랜드 바이블칼리지 졸업, 알바니 한인교회담임,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관한 예언과 성취에 이어서 영혼 구원에 이르는 생명의 말씀에 이어서 초대 7교회에 관한 말씀을 영어성경(NIV)을 바탕으로 본문과 단어를 풀어 보았다. 이번에는 로마교회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이 시대의 교회관을 바로 알수 있도록 연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