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얼마 전에 작은 수술을 받았다. 그 몇 달 전 어느 날 칫솔질을 하다 우연히 거울을 보니 오른쪽 턱 아래가 조금 부은 것같이 느껴졌다. 잇몸이 부었나 하고 며칠 간은 그대로 놓아두었다. 그러다 가라앉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두세 주일이 지나도 턱밑의 부기가 빠지지 않자 의사를 찾았고 이런저런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침샘과 관련된 부분에 이상이 있어 작은 혹이 생겼으니 더 크기 전에 제거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는 전문의의 의견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볼거리 수술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 뒤론 몸에 칼을 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었다. 큰 수술이냐는 나의 질문에 의사는 큰 수술은 아니지만 얼굴의 예민한 부분이라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기에 서너 시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수술 자체에 대해서 걱정은 안 했지만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수술받기 전에 유언장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신마취를 한다는데 혹시라도 깨어나지 못하면 세상 물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아내가 무척 당황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 평소 가깝게 지내는 변호사를 통해 유언장을 작성해 놓았다.

수술 날이 다가와 아내와 같이 병원에 갔다. 수속을 마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마취 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더 이상 나를 따라 들어올 수 없었고 애잔하게 손만 흔들었다.

사방이 흰 마취 실에는 의사를 비롯한 몇 명의 간호사들이 있었지만 난 세상에서 동떨어진 혼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의사가 무엇인가를 내 코에 가까이 갖다 대었고 무언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 난 의식을 잃었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엔 이미 수술이 끝난 때였다. 옆에서 지키고 있었던 간호사가 깨어나는 나를 보고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말하며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말했다.

“괜찮으세요? 걱정했어요. 너무 늦게 깨나셨네요.” 전화기를 통해서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를 끊자 간호사가 이제 병실로 갈 거라고 이야기했다. 거기 가면 아내를 만날 거라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수술실에 있었고 수술은 3시간 이상 걸렸고 나는 5시간 넘게 의식을 잃고 있었다고 간호사가 말해 주었다.

조금 있다가 간호사가 내 침대를 밀고 병실로 갔다. 아내가 복도에서 나를 맞았고 병실로 내 침대를 밀고 들어간 간호사는 창가에 내 자리를 잡아 주었다. 내가 편안하게 누웠는지를 몇 번이나 꼼꼼히 확인한 뒤 간호사가 자리를 뜨자 아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괜찮으세요?” 하고 내게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하며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진통제를 먹어서인지 통증은 거의 없었고 수술을 마쳤다는 안도감에 오히려 평안함을 느꼈다.
“오늘은 여기서 주무셔야 한대요. 저도 있고 싶은데 가족들이라도 8시에는 모두 나가야 한다고 하네요.” 하고 아내가 다시 걱정스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당신도 집에 가서 쉬어요. 간호사들이 모두 잘해 주니까 아무 걱정 말고요.” 하고 나는 아내를 안심시켰다.

병실이라는 다른 세상
아내가 집으로 간 뒤에 나는 비로소 병실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나까지 모두 4명의 환자가 병실에 있었다. 내 앞에 있는 두 명의 환자는 둘 다 키위(뉴질랜드 유럽계 사람)였는데 나보다 조금 더 나이 드신 노인들 같았고 내 옆의 환자는 마오리(뉴질랜드 원주민)였는데 육십 대 초반쯤 되어 보였다.

주사를 꽂아 고정해 놓은 왼손이 불편해서 책을 볼 수도 없었기에 나는 조용히 병상에 기대앉아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또 세분의 병실 동료들을 바라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쩌다가 바로 맞은편의 환자와 눈이 마주쳐서 눈인사를 했다. 그가 나보고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손으로 오른쪽 턱 밑의 수술 부위를 보여주며 “오늘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얼마나 입원해 있을 거냐?”고 물어 아마도 내일 나갈 거라고 하자 그는 부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기는 내일 복부 수술을 받는 데 얼마나 오래 있을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그가 왜 복부 수술을 받는지는 묻지 않았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내 대각선 방향 맞은편의 환자가 자기는 심장에 통증을 느껴 들어왔는데 아직도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집에 가고 싶지만 심장은 다른 부위와 달라 위급할 경우가 있기에 확실한 결과가 나와야만 퇴원할 수가 있다.”고 조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의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서 나는 “나도 심장 부위가 아파서 3년쯤 전에 병원에 왔다가 협심증 진단을 받고 스텐트(stent)를 심었는데 그 뒤로 전혀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말을 주의 깊게 듣더니 “그때 증상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기억나는 한도에서 증상을 말해 주자 자기도 그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큰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라고 말해 주자 그는 좀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병원 밖에서 마음껏 활동하던 내가 오늘 병원에 들어와 수술받고 병실에 들어와 다른 환자들과 섞여 지내며 나는 다른 세상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나는 아는 병이라서 내일이면 퇴원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회복의 가능성도 없이 계속 입원해야만 할 수도 있겠고, 또 어떤 사람들은 병의 원인을 몰라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건강할 때는 생각할 수 없었던 다른 세계를 생각하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밤이 깊어 지자 간호사가 들어와 병실의 전등을 하나씩 껐다. 불 꺼진 병실의 침대 위에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나는 머릿속으로 시(詩)를 써 나갔다.

병실에서
환자들은 모두 아픔이 있다
환부가 어디 건
그 아픔을 통해 환자들은 세상을 본다
아픔을 통해 보는 세상은 유리창 밖의 풍경처럼
소리는 없고 움직임만이 있다
볼 수는 있어도 끼어들 수 없는 풍경
환자들의 가슴은 안타깝기만 하다

환자들은 모두 바람이 있다
나음이라는 바람
그 바람을 통해 환자들은 세상을 본다
바람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봄날 아지랑이 같아
실체는 없고 아른거림만이 있다
느낄 수는 있어도 잡을 수 없는 아지랑이
환자들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아프기 전의 아픔은 추상명사였다
아픈 뒤의 아픔은 고유명사가 되어 내게 들어왔고
주변의 많은 아픔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환자라는 보통명사가 되어 있었다

환자들에게는 모두 간절함이 있다
아프지만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
낫기만 했으면 하는 간절함
그때의 간절함은 순수하여 다른 욕심이 없다

병실 너머 세상에 나갈 때도 그 순수한 간절함을 갖고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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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동찬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사업 하다가 1985년 거듭남. 20년 간 Auckland Christian Assembly를 장로로 섬김.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는 성현의 말씀에 힘입어 감히 지나온 삶 속에서 느꼈던 감회를 시(詩)와 산문(散文)으로 자유롭게 풀어 연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