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새벽 공기를 맡으며 기도회를 향할 때는 어디선가 꽃향기가 난다. 풀 내음 같으면서 참 달콤한 향기 말이다. 그렇게 일찍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엔 집 근처에 위치한 커피 볶는 로스터리 카페를 찾아간다.
새벽부터 로스터리 옆, 빵집의 고소한 향을 지나서 커피를 볶는 카페를 찾아가려니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먼저, 방금 화덕에서 나온 블랙엔화이트 베이글을 하나 사서 조금이라도 식기 전에 한입 물고 다른 한 손에는 베이글 한 봉지를 들고나온다. 마마이트와 크림치즈를 올린 블랙엔화이트 베이글, 몇 번 씹기도 전에 이미 달곰하다.
처음 이곳의 막 구운 베이글을 먹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참 이상했다. 잘 익은 반죽의 베이글은 설탕을 뿌리지도 않았는데 달달했다. 가공한 당으로 억지로 꾸며낸 듯하거나 과하게 가향한 것이 아닌 뭔가 담백하고 고소한, 진짜 달콤함 같은 것이다.
그러고는 마마이트의 강한 짠맛이 따라온다. 뭐 어려서부터 마마이트를 먹어왔기 때문에 아침에 식빵에다 마마이트를 발라 먹는 것은 매우 익숙하다. 그러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땐 다른 메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주 담백하고 소박한 행복이 입안에 퍼진다. 입안이 따뜻하다. 이 진솔한 달콤함과 함께 씹히는 고소함, 그리고 자극적인 짠맛이 부드러운 크림치즈와 섞여서 가득 채워질 때, 한가지가 강하게 생각났다. 커피, 커피가 생각났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사실 생각나기도 전에 기억에 이끌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카페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걸음은 신이나 있었고 달달한 커피 로스팅 향이 코끝부터 머릿속 전두엽을 지나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 미소가 지어지게 했다.
일찍이 커피 볶는 것을 시작한 로스터리 카페의 로스팅 기계가 연신 돌아가며 베이글보다 달콤한 향을 온 마을에 가득 나르고 있었으니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리암, 나 왔어요.” 머리를 위로 묶은 맨 번을 하고 막 로스팅을 마치고 쏟아져 나온 커피콩의 열을 식히는 작업 중에 들어갔다. 며칠 전 로스팅에 참여하여 함께 볶은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었단다. 함께한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옆에서 부탁하는 심부름을 하며 어깨너머로 배워가는 중이다.
“아, 목사님! 캬, 오늘 커피 맛있어요! 어서 오세요.” 바쁜 듯이 인사하면서도 마실 커피를 정성스럽게 따라준다. 커피잔을 건네며 진한 눈썹을 위로 쓱쓱 올리고 기분 좋아지는 그의 밝은 눈웃음을 보낸다. 그러고는 온도계를 확인하고 다음 로스팅할 커피 빈 한 배치를 로스팅 기계에 부어 넣는다.
리암은 깊이가 있는 멋진 친구이다. 로스팅하는 자세에서 멋이 흘러나오는, 아니 그냥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서 있는데 그 모습이 그저 멋지다. 그 모습을 이렇게 보고 있으면 흥미로움을 넘어 재미있기도 하다.
“뭐여, 벌써 몇 통을 볶은 거야? 하나, 둘, 셋, 넷.. 이 새벽에 아홉 통을 볶았네. 대단해요.” 새벽같이 나와서 볶은 커피가 이제 곧 열 통째라면 납품해야 할 커피가 오늘 많았던 것이다. 한가하게 커피 마시며 사치를 부릴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예, 타카푸나와 CBD에 있는 카페에 빈을 보내야 해서 좀 부지런히 나와봤어요. 덕분에 새벽기도는 온전히, 혼자서, 오롯이, 조용히 말씀 묵상으로 보내주신 본문과 함께 했습니다. 목사님, 근데 커피 맛 어때요? 나흘 지났는데 말이죠.”
질문도 이야기도 매우 진지하다. “응, 베리 향이 참 좋아서 향에 푹 빠지겠는데. 주일 아침부터 정말 좋습니다.” 마음마저 행복해졌다. 커피를 받아서 마실 때 이런 좋은 향이 나니 다시 원두를 그라인더에 갈 때 나는 커피 향을 드라이 커핑Dry Coffeeing으로 시향하고 싶어 졌다.
사실 난 리암을 좋은 형이고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한 살 차이임에도 늘 나에게 존대한다. 목사이기 때문이란다. 심지어 나보다 한살이 많은데 말이다.
‘뭐, 한 살 차이면 친구지’ 하며 우정을 쌓아가는 그런 느낌이라기보다는 성직을 감당하는 이에게 향한 진심 어린 마음 같은 것이다.
리암은 물론 가끔 반말 존댓말을 섞어가며 친근함을 표현한다. 요즘 유행하는 ‘반존대’인가? 그의 친근하고 따뜻한 듯 성숙한 언어, 인성과 성품은 커피를 대할 때 더욱 진심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사람들을 대할 때면 목사인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진지하고 정성스레 다가가니, 보고 배울 수 있는 모습이 참 많다. 이런 모습이 그를 형으로 알고 지내고 더 가까이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리암과 청년 상담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시대의 정서와 그 배경에서 오는 아픔들과 청년 현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자니 깊은 한숨과 함께 기도가 절로 나왔다.
“아니 목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라포르Raport가 깊으세요? 사람을 잘 이해할 뿐 아니라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을 품고 사는 사람 같아요. 그렇게 오래 쌓인 쓴 뿌리와 들쑥날쑥한 가시까지 끌어안으시면 어떡합니까? 늪에 빠져요. 사람 늪에!”
맞는 말이다. 그 말에 주거니 받거니 하고 싶어 그의 생각을 따라서 복기하며 되물어보듯 이야기했다. “커피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계속 마시다 로스팅하며 보니 로스팅한 커피도 엄청난 열을 끌어안고 있잖아요. 좋은 향을 내기 위해서 커피도 그 어마어마한 열을 견딜 뿐 아니라 끌어안는데 사람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싶어요.”
실제로 순차적 열을 입히며 1차 팝핑으로 크랙이 시작되고 2차 크랙으로 생두는 고온을 견딘 후 고소하거나 상큼하거나 뒷맛이 달달하고 향긋한 커피의 원두가 된다. 이어서 이야기했다.
“오늘, 이 커피 진짜 향기로워요. 여기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커피가 주인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저 이렇게 매일 마시는 여기 커피처럼 따뜻한 향기를 품고 향긋한 아침을 만나게 하는 사람이고 싶네요. 리암이 만들어 주는 커피를 닮고 싶었어요.” 말은 느끼하지만 진심이었다.
분위기도 바꿀 겸 나의 외향성을 극대화해서 느낌을 살려 이야기했지만 내 말은 진심이었고 사실이었다. 예수를 닮는 것은 내가 하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고 그의 향기를 내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은총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 그것이 전부이다. 전적인 은혜로 목자의 부르심을 받아 이 향기를 내는 길에 서는 것 말이다. 모든 부르심과 사명, 향기 내는 인생을 사는 것은 본인의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않으니 전적인 은혜라. 은총을 입지 않으면 어찌 향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신중하게 핸드픽 된 커피의 생두는 볕이 좋은 곳에 말려지든, 작은 수로를 따라 씻겨지든, 산소 접근이 없이 배럴에 들어가 발효되든, 주인의 선택에 따라 쓰임에 맞게, 각 커피나무 종류에 맞게 수확 후 공정을 거친다.
그리고 적절히 로스팅 되어 고압으로 추출되거나 부드럽게 내려진다. 그 향기는 어느 고단한 마음을 쉬게 할 수도 있으니 모든 과정 속에 선택받는다는 은총의 수단이 녹아 스며 들어있다.
리암은 그리스도를 닮고자 했고 커피는 주인을 닮으려 했는지는 몰라도 리암의 그러한 마음은 원두 안에 늘 아주 잘 담겨있다. 항상 성실하게 정확한 비율과 기준으로 로스팅되고 내려지는 커피는 로스팅 마스터와 바리스타의 정성이 담기면서 그 깊은 맛을 더해간다. 그러한 커피가 맛이 없을 수 있을까 싶다.
정말 매일이 바쁘지만, 그 매일매일 진심으로 사는 그의 모습에서 그를 닮은 커피를 느낄 수 있었고 우리 주님을 느낄 수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름다운 매일의 연속이었다. 마치 아프리카 고산지대의 커피가 선택되어 200ml의 커피음료로 우리 손에 들려 지기까지 모든 순간이 우리의 삶으로 비추어지듯 말이다.
그렇게 주인과 커피는 우리의 선교적 삶이 되어본다. 병충을 이기고 태양과 바람과 물과 계절을 지나, 한 그루의 나무에서 약 1kg의 커피가 나오고 그렇게 나를 곱게 갈아 나누어 고단한 마음도 쉼을 얻을 수 있다면 천국의 조각을 메마른 땅에 소개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감도 큰 은혜이고 깊은 의미의 진한 행복이다. 아주 짙은 행복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짙게 묻어난 하나뿐인 고급 향수와 같이 말이다. 여운이 오래 남는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한인 청년의 이야기를 한참 나눈 후, OCD(강박장애)를 겪고 있는 중국인 데밍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가벼운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를 겪고 있다는 스페인 청년 단트의 이야기까지 들려주니 이러저러한 질환과 씨름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리암은 이들에게 정상적으로 복음이 전달될 수 있는 지와 또한 구원을 경험하고 제자 양육은 가능한가를 궁금해했다.
“이렇게 이야기 듣다 보니 요즘 청년들은 자신의 정신질환에 상당한 관심이 있어 보이네요. 아침부터 깊은 대화에 진지해지네. 이런 나눔 너무 좋아요.” 리암이 로스팅 기계 앞에서 고개를 돌려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