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베이지의 노래와 정읍사(井邑詞)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로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대랄 드대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대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을 때면 까마득한 옛날 학창 시절에 배웠던 정읍사(井邑詞)가 생각납니다. 시대와 장소는 달라도 두 노래가 모두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옛 여인들의 간절하고도 슬픈 마음을 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읍사는 백제 시대에 한 여인이 행상을 나간 남편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산 위 바위에 올라 달이 높이 솟아 멀리까지 비치어 남편이 무사하기를 노래로 불러 기원하며 하염없이 기다리다 끝내는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는 애달픈 설화입니다.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Song)
솔베이지의 노래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작곡가 에드바르드 그리그(Edward Grieg, 1843~1907)가 쓴 곡입니다.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에게 여섯 살부터 피아노를 배워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12살부터 작곡도 시작한 그는 ‘북구의 쇼팽’이라고 불렸습니다. 청년기를 지나며 국민주의 음악의 영향을 받은 그의 음악은 자유로우면서도 노르웨이의 국민성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그가 작곡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을 때 우리에게 ‘’인형의 집’’의 작가로 잘 알려진 입센 (Henrik Ibsen 1828~1906)이 그의 희곡 ‘페르 귄트(Peer Gynt)’의 부수음악을 작곡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요청을 수락하고 그리그는 모두 23곡을 작곡했습니다.

부잣집 망나니 아들의 허랑방탕한 일대기를 그린 이 희곡의 공연은 성공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노르웨이인의 안 좋은 점만 가득 모아 놓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그리그는 이 부수음악 중 마음에 드는 곡들을 추려서 두 편의 모음곡으로 발표했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네 개의 곡을 뽑아 제1 모음곡으로 하였고 후에 다시 네 곡을 선택해서 제2 모음곡으로 하였습니다. ‘솔베이지의 노래’는 제2 모음곡에 있는 네 번째 곡으로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슬픈 선율의 곡입니다. 이 모음곡의 내용은 원작 희곡과는 많이 다릅니다.

솔베이지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돈을 벌기 위해 그녀를 떠나 평생 방황하던 페르 귄트가 늙고 병들어 모든 것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을 믿고 백발의 노파가 되기까지 끝까지 그를 기다렸던 솔베이지가 그를 맞아들입니다. 기운이 진하여 그녀의 무릎 위에 쓰러진 남편을 위해 그녀가 부른 마지막 노래가 다음과 같은 솔베이지의 노래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가고 여름 또한 가면
세월도 함께 흐르겠지요
하지만 난 당신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걸 믿습니다
약속했던 대로 기다리는 나를 당신은 찾아오실 거예요
당신이 헤매는 외로운 길은 하나님이 지켜 주실 거예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때에 그는 당신의 청을 들어주고 힘을 줄 거예요
당신이 하늘나라에 계신다면 그곳에서 나를 기다려 주세요
난 거기까지 가서 다시 만나고 사랑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

삶의 방황을 마치고 드디어 돌아와 자기 무릎 위에서 죽어가는 남편을 위해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부르며 솔베이지도 페르 귄트를 따라갑니다.

희곡 ‘페르 귄트’를 쓴 입센은 그의 대표작 ‘인형의 집’을 통해 여성해방운동의 불을 지폈고 21세기는 어느덧 ‘여성 상위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연 오늘의 여성들에게 정읍사의 망부석이 된 여인이나 솔베이지 같은 여인이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자못 궁금합니다. 하지만 솔베이지의 노래는 예나 지금이나 슬프도록 아름답게 우리의 가슴을 울려줍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모처럼 You tube로 영상과 가사를 보며 소프라노 Anna Netrebko의 노래로 들었습니다. 노래도 좋았고 영상에 비치는 노르웨이의 풍경도 좋았고 소리도 예상보다 좋았습니다. 여러분도 다음 링크를 클릭해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LLXXdVlGRjk

이어서 그리그의 대표작인 피아노 협주곡을 들었습니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A 단조 작품 16
노르웨이는 스칸디나비아 북서부에 위치한 숲과 빙하의 나라입니다. 노르웨이 하면 신동엽 시인의 ‘산문시’가 생각납니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을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중략—농민들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하략’이라고 시인이 노래한 나라는 아마도 노르웨이일 것입니다. 왜냐고요? 저마저도 노르웨이 하면 ‘인형의 집’의 작가 입센, ‘솔베이지의 노래’를 작곡한 그리그, ‘절규’를 그린 뭉크와 같은 인물을 기억하지 대통령 이름은커녕 노르웨이가 어떤 나라인지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인 베르겐(Bergen: 12세기에서 13세기까지 노르웨이의 수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리그는 21살이 되었을 때 베르겐 출신의 명 바이올리니스트 울레 불(Ole Bull)과 국내를 여행하며 민요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후에 민족주의 작곡가 노들라크(Rchard Nordlark)를 만나 감화를 받아 국민음악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노르웨이 국민음악의 확립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과 또한 천부적으로 타고난 노르웨이 특유의 정서로 말미암아 그의 모든 작품에는 노르웨이의 향토색이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불과 25살의 젊은 나이에 썼지만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대표작이자 국민음악가로서의 그의 성향을 잘 나타내는 곡입니다. 리스트(Franz Liszt)가 ‘이 곡이야말로 스칸디나비아 혼이다,’라고 격찬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 곡에서는 노르웨이 민요풍의 풋풋한 선율과 북구적인 색채, 그리고 그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내 니나(Nina Hagerup)에 대한 사랑이 뭉클뭉클 배어 나옵니다.

모두 3악장의 전통적 구성입니다. 1악장의 도입부에서 팀파니가 포효하듯 울리면 오케스트라 모두가 하나의 코드를 제시하면 피아노가 구슬을 쏟아내듯 아르페지오(arpeggio)로 풀어냅니다. 북구의 웅장한 풍경과 아름다운 서정이 함께 느껴지는 악장입니다.

아다지오의 2악장은 가슴을 쓸어낼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 자체입니다. 낭만주의 모든 피아노 협주곡의 아다지오 악장 중 가장 절창으로 꼽히는 악장입니다. 풍부한 멜로디와 우아한 음색이 조화를 이루며 오케스트라와 독주 피아노가 속삭이듯 전개되는 이 악장은 사랑하는 아내 니나와 주고받는 대화처럼 부드럽고 감미롭습니다.

쉼 없이 이어지는 마지막 3악장은 변화무쌍하고 흥겹습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휘몰아치듯 빠른 춤곡으로 빠져들고 금관악기들이 힘을 다해 일종의 위기감을 불어냅니다. 다음 순간 서정적이며 우울한 선율로 바뀌다가 다시 활기를 되찾으며 힘차고 쾌활한 분위기로 돌아갑니다. 마지막에 피아노가 분주하게 튀어나오고 모든 오케스트라가 당당하게 연주하며 곡을 끝냅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Rubinstein의 피아노와 Alfred Wallenstein이 지휘하는 Orchestra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오래된 연주지만 Dinu Lipati의 전설적인 연주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날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창세기 2장 18절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남자와 여자가 어울려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즈음 살기가 어렵고 자녀 키우기가 힘들다고 젊은 남녀가 결혼을 회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돕는 배필을 찾아 같이 사는 삶이 은혜로운 삶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읍사의 여인이나 솔베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한 여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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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