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말해 봐요

벌써 2022년의 끝자락입니다. 이번 호가 마지막 글이라니 제 글을 읽어 주셨던 독자들께 아쉬움과 마지막 액기스를 담아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12월이 되는 걸 보니 어른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 “아이들 크는 것 금방이야!”가 생각납니다. 저는 이 말을 몸소 현장에서 느끼며 일하는 것 같습니다. 쬐끔하던 아이가 키가 훌쩍 크고, 행동도 어른스러워지며 곧 5살이 돼서 졸업을 하는 것을 보면 저 또한 “아이들 크는 것 금방이네요!”라고 부모님들께 이야기하곤 합니다.

종종 한국에 있는 친척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뉴질랜드에 보내고 싶다. 아이들은 뉴질랜드 같은 나라에서 키워야 돼!” 또 한국 텔레비전에서 뉴질랜드의 자연, ‘아빠, 어디가’ 키위 홈스테이하는 장면을 지금까지도 방영한다니 한국에서는 꾸준히 뉴질랜드 붐이 열성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뉴질랜드가 이렇게까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을까? 자연스레 생각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자연이라고 꼽을 수 있습니다. 넓은 잔디밭과 멋있는 구름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자유분방하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이 주는 선물을 어려서부터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뉴질랜드는 다문화 나라라고도 많이 불립니다. 여러 나라 인종들의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자연스레 사교성이 길러지고 또한 포용력도 기르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다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통해 다양성이 발달하게 되는 셈이죠.

세 번째로는 경쟁의식이 없습니다. 또한 기회의 나라라고도 합니다. 제가 공부할 때는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많이 있었고, 또 일터에서도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을 보며 자연스레 직업의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한국에서는 못하는 과목을 어떻게 해서든 과외나 학원을 통해 발전할 수 있게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잘하는 과목에 더 집중하고 격려를 통해 자신감과 자존감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생활 형편이 조금 어려운 지역의 고등학교에서는 아예 직업 전문학교로 이어지게끔 기술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과목들 또한 학생들 위주로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학생이 학교에 맞는 것이 아닌 학교가 학생들에게 기회와 다양한 서포트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아교육에서도 흔히 사람들이 말하길 “저 아이는 말 진짜 안 듣는다. 왜 이렇게 정서가 불안하지?”라기 보다는 “저 아이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서 몸으로 표현하고 배우려고 하는구나”라고 바라보며 아이가 더 배울 수 있게끔 환경과 놀이문화를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선생님들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첫 유치원에서 일했을 당시 12월 끝자락 즈음에 prize giving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말을 안 듣는다고 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상을 주었는데 ‘energizer’ ‘booster’라는 말들을 넣으며 긍정적인 환경, 에너지를 주어 고맙다고 전해주었을 때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너무 기쁘고 행복했었습니다. 이렇게 바르게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각과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매번 생각이 듭니다.

네 번째로는 상대방과 대화하는 법에 대해 배우는 것 같습니다. 뉴질랜드 사람들을 보면 재치가 넘칩니다.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한국에서는 예절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보통 ‘예, 아니오’ 로 어른들이 물으시면 이렇게만 대화가 진행됨을 볼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 유아교육에서는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무조건적으로 ‘open-ended question’의 중요성과 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의 창의성과 본인의 이야기의 중요성과 생각을 존중 받음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라온 아이들은 본인 이야기의 자신감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의 존중성을 톡톡히 보게 됩니다.

이러기에 저 또한 사람과의 이야기 속에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라고 계속 묻다가 “왜 자꾸 왜긴 왜야 그냥 그렇다고.”라고 대답을 듣고서 속으로 빵 터졌습니다. 습관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싶었습니다.

자식 키우느라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할 때가 많다고 저의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저 또한 유치원에 있는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키운다고 생각하며 온탕과 냉탕을 많이 왔다 갔다 했었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찾을 수 있는 건 이 아이들의 먼저 부모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많이 부를 때가 많습니다.

이 아이들을 지식적 교과서대로만 키우는 것이 아닌 삶으로 어떻게 지도해 나가야 할 것인지 하나님을 붙잡으며 지금까지의 인생 중에서 제일 많이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내 자녀도 나의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임을 기억하며 내가 분별하고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많이 드렸고, 그때마다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아이들이 잘 커갈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한국말 중에 “자식은 제 맘대로 안 된다”라는 이 말의 표현을 참 많이 들었고 또 몸소 체험했습니다. 주인의식을 제대로 기억해야 합니다. 내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임을. 그렇기에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키우시는 것입니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느냐”고 했을 때 느헤미야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하늘의 하나님께 먼저 묵도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찰나의 순간에 바로 내 생각과 판단으로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자신의 주인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함으로 이 짧은 찰나의 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아이들을 돌볼 때에 이 찰나의 순간이 참 많이 나오게 됩니다. “주여, 도와주세요.” 이 간절함의 기도를 주님은 단 한 번도 무시하신 적이 없고 그 배의 은혜로 채워 주셨습니다. 자녀를 두고 계신 분들이라면,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이라면 시시때때로 보여야 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관심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서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다.”(고전 13:13)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 관심, 격려로 자란 아이는 나중에 커서 자신감이 넘칩니다. 자녀가 아무리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해도 자신을 믿어줄 부모님의 백이 있기 때문에 오뚝이같이 벌떡 일어섭니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를 넘은 하나님 아버지의 대단한 백이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 주신 넘치는 사랑을 받은 그 조건 없는 사랑.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말합니다. “God loves you so much.”

받아들이는 아이들에 따라서 반응이 다양하지만 나는 꼭 아이들이 이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습관적으로 사랑한다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얼마나 축복받은 존재인지. 이보다 더한 선물이 있을까요?

세상은 성공을 쫓아 살아갑니다. 앞으로도 세상은 성공을 쫓으라고 계속해서 말할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대로 성공하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실 것인지, 아니면 더 많이 사랑하고 나누어 주라고 하나님의 기준대로 자녀들을 양육하실 것인지 부모님들께 도전의 메시지를 던지고 싶습니다.

교사는 쏟아붓는 열정에 비해 그만큼 대가가 적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한 생명의 사랑이 열매 맺는 모습을 보면 더 많은 대가를 바라는 건 욕심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한 아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 몸이 피곤해 부서질지라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