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로부터 날아든 낭보(朗報)

Sibelius Violin

화요음악회에서 ‘시벨리우스’를 들은 지가 꽤 오래되었기에 언젠가 다시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얼마 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2022년)의 끝 날을 이틀 남겨놓고 멀리 핀란드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5월 29일(현지 시각) 핀란드 헬싱키에서 폐막한 제12회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의 우승이 처음이기에 귀한 소식이기도 하지만 27살의 양인모가 십 대의 어린 경쟁자들과 겨루어 우승했기에 더욱 값진 소식이었습니다. 결선 곡은 물론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습니다. 양인모는 이 곡을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과 협연하면서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핀란드계의 군의관이셨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지만 2살 때 돌아가셔서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역경을 딛고 일어선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가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00여 년 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고국 핀란드를 음악으로 위로하고 힘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핀란드에서 태어나 핀란드의 흙을 밟고 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작곡할 수 없는 음악을 시벨리우스는 써냈고 핀란드 사람들은 속에서 핀란드가 생생히 살아 숨쉬는 그의 음악을 사랑했습니다.

1900년 파리 대박람회에서 시벨리우스가 선보인 교향시 ‘핀란디아’가 바로 그런 음악이었습니다. 이 교향시 속에서 사람들은 핀란드의 넓고 울창한 산림을 보았고 그 산림 안의 나무 하나하나가 한 목소리로 함성을 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고 ‘핀란디아’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그는 서서히 국민 작곡가의 자리에 오릅니다.

시벨리우스의 단 하나의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D 단조 작품 47
시벨리우스는 관현악에 강한 작곡가였습니다. 그가 남긴 많은 교향곡과 교향시가 그의 뛰어난 관현악 능력을 증명합니다. 일곱 개의 훌륭한 교향곡은 모두가 걸작이어서 베토벤 이후 최고의 교향곡 작곡가라는 칭송을 듣기도 합니다.

또한 ‘핀란디아’를 비롯한 ‘타피올라’, ‘슬픈 왈츠’, 투오넬라의 백조’ 등 많은 걸작 교향시를 썼습니다. 하지만 이 많은 관현악의 숲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우뚝 서 있는 그의 또 하나의 걸작이 있습니다. 바로 그의 단 하나뿐인 협주곡인 ‘바이올린 협주곡 D 단조’입니다.

단 하나의 협주곡이지만 이 곡은 흔히 호사가들이 세계 5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하나로 꼽는 곡입니다.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차이콥스키에 이어 많은 이가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을 넣어 5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부릅니다. 이 곡이 이렇게 명곡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낭만적으로 감성적이면서도 그 속에 무언가 깊음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관현악의 대가이면서도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시벨리우스였기에 탄탄한 관현악의 받침 위에서 바이올린이 현란할 만큼 화려하게 기교를 발휘할 수 있는 곡을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5월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양인모는 이 곡을 이렇게 연주했다고 말합니다
“시벨리우스의 나라 핀란드에는 이번에 처음 왔다. 이 나라의 대자연을 느껴보려 혼자 숲 속과 호숫가를 걸어보곤 했다. 시벨리우스가 자신을 ‘산속의 유령’이라고 말했듯이 그의 음악은 대자연을 표현한 음악이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들었을 때는 사람이 잘 안 느껴진다. 예를 들자면 말러의 음악도 자연을 다루지만 말러의 음악에서는 자연 속에서도 인간이 중심에 있다. 그러나 시벨리우스는 자연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의 악보에는 매우 섬세하고 미묘한 강약 지시가 있는데 그것들이 바람과 같은 자연을 묘사한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또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은 비르투오소(명인기)적 음악이 아니다. 기교적으로 어렵지만 기교적인 효과만을 위한 음악이 아니다. 오늘 연주를 하면서 나 자신이 없어진 느낌이었다.”(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들었을 때는 사람이 잘 안 느껴진다……연주를 하면서는 나 자신이 없어진 느낌이었다’는 양인모의 말은 이 협주곡을 가장 잘 설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들을 때도 사람이 안 느껴지고 연주할 때는 나라는 사람(내 자신)까지 없어지고 자연만 남는 음악이 바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강은교의 시(詩) 숲과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둘의 꿈은 나무 셋의 꿈. (강은교의 숲 첫 부분)

이 곡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 곡 특유의 매력, 즉 핀란드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음울하면서도 독특한 선율과 몽환적인 관현악의 울림에 있다고 합니다.

핀란드가 속한 북구의 날씨는 남유럽과 달리 항시 우중충합니다. 특히 삼림이 많은 핀란드의 자연은 축축한 안개에 싸여 있습니다. 시벨리우스는 삼십 대 후반에 수도 헬싱키를 떠나 투술라(Tuusula) 호수 근처의 예르벤페(Järvenpää)라는 곳에 집을 마련하고 이름을 아이놀라(Ainola)라고 지었습니다. ‘아이노의 집’이라는 뜻이었는데 아이노(Aino)는 그의 아내 이름이었습니다.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이 집에 정착한 뒤 그는 작곡에 전념하기 시작했고 바이올린 협주곡도 이때 나왔습니다. 도시의 번잡을 떠나 사랑하는 아내 ‘아이노의 집’에서 오직 자연에만 귀 기울이며 작곡했기에 이 곡에서는 그가 그렇게 사랑하는 고국 핀란드의 자연, 그 중에서도 울창한 숲이 들어있습니다. 웅장한 관현악이 안개에 싸인 자연경관을 그리면 어느 사이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선율이 그 안개를 헤치고 나와 듣는 사람을 핀란드의 숲속으로 안내합니다.

강은교의 숲이라는 시(詩)가 떠오르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 셋이 흔들리듯 바이올린 선율 따라 우리는 어느 사이 핀란드의 숲 속에 들어가 하나 둘 나무를 헤아리다 관현악이 음표로 그려주는 꿈을 따라 숲 속을 방황합니다.

모두 3악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악장 Allegro moderato 어두운 호수 위에 떠 있는 안개와 같은 약음의 바이올린이 새기는 으뜸 화음 위로 독주 바이올린이 백조처럼 애수 띤 주제를 노래하며 시작하는 1악장은 전곡 중의 백미이며 가장 긴 악장입니다.

2악장 Adagio di molto 아다지오 템포의 북유럽 특유의 서정이 느껴지는 자유로운 3부 형식입니다. 끝에서는 독주 바이올린이 악장 전체를 회상하며 조용하게 꺼져갑니다.

3악장 Allegro ma non troppo 1악장과 대조적으로 활기가 넘치고 밝습니다. 비르투오소 적인 바이올린의 활약이 두드러지며 마지막도 격렬하고 눈부신 독주 바이올린으로 막이 내립니다.

하이페츠(Jascha Heifetz)가 연주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어느 연주보다도 먼저 하이페츠의 연주를 권합니다. 월터 헨들(Walter Hendl)이 이끄는 시카고 심포니와의 협연은 하이페츠의 냉철하고 정확한 활이 시벨리우스의 깊은 우수를 가장 잘 표현한 연주입니다.

화요음악회에서도 이 연주로 들었습니다. 이 연주 외에도 정경화/앙드레 프레빈이나 오이스트라흐/로제스트벤스키의 연주고 명연입니다. 들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이날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로마서 10장 14~15절입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핀란드에서 날아온 양인모의 우승 소식은 좋은 소식입니다. 바이올린을 켜는 그의 팔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훨씬 좋은 소식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말씀이고 가장 아름다운 발은 그 말씀을 전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발입니다.

과연 나의 발은 오늘 무엇을 전하기 위해 돌아다녔나 한번쯤 생각해 봐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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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