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것이 아니었다. 내 그림은 코끼리를 삼키고서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왕뱀을 그린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어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보아 왕뱀의 속이 보이도록 다시 그림을 그렸다. 어른들에게는 언제나 설명이 필요하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 공나리 역에 보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이야기가 나온다. 생텍쥐페리는 6살 때‘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렸다. 그 그림을 보고 어른들은 모자라고만 했다. 앙투안은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렸다.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라고 한 그의 그림을 통해 틀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을 보게 된다. 반대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지 않고 들은 대로만 말하게 길들여졌다는 것을 모른다. 어쩌면, 단 한 번도 왜?라고 질문하거나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누구든 자신이 길들인 것만 알게 되는 거야. 사람들에겐 이제 무언가를 알기 위한 시간이 없어.”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 공나리 역.
어른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남이 말하면 귀 기우려 듣지 않는다. 남이 들으라고 잘 꾸민 말을 한다. 사람에게 가장 발달하지 못한 것은 경청이다. 반대로 살아남기 위해 지나치게 발달한 것은 입담이다.
상상이라는 말속에 코끼리가 등장하리라고 생각해 보았는가. 상상이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코끼리 뼈를 보고 머릿속으로 코끼리를 그린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코끼리는 보지 못하니 남아 있는 코끼리의 뼈와 상아를 보고 코끼리의 모습을 머릿속으로만 그려본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상상하면 체험이나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자기가 경험한 대로만 말하는 것을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오직 자기 경험이나 체험으로 길들여진 사람들의 판단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말하는 거짓이나 가짜가 있다.
만약 코끼리 뼈와 상아가 없었다면 과연 코끼리를 그려보는 상상이라는 의미가 존재했을까. 길들여진 사회나 사람은 상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더 나아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남이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된다. 사람은 상상과 생각만큼 이루어진다.
우리말 속담에‘자다가 나는 새가 더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이는 갑자기 찾아온 위기를 맞나 본능적인 대응으로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낸다는 것이다. 급하게 찾아온 위기라도 기회라는 생각으로 나아가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성경에도 직접적으로 코끼리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상아에 관한 기록이 있다. 또한 괴물 베헤못이 나온다. 아마도 이것은 코끼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상상으로“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것을 기대하라”는 영국 월리엄 캐리 선교사의 말을 기대하고 기도하며 그대로 시도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