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를 사랑한 피아니스트

20세기 최고의 피아노의 거장이었던 라흐마니노프 하면 13도의 음정까지도 연주해 낼 수 있을 만큼 엄청나게 컸던 그의 손과 너무나도 유명한 그의 피아노 협주곡들이 떠오릅니다. 따라서 그를 피아노 음악의 작곡가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는 교향곡도 남겼고 실내악도 남겼습니다. 그 실내악 중에 걸작이 오늘 들을 ‘첼로 소나타’입니다.

아마추어 첼리스트였던 할아버지 아르카디 라흐마니노프의 영향이 컸는지 그는 첼로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바이올린의 거장 나탄 밀스타인(Nathan Milstein)이 “왜 바이올린 곡은 쓰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첼로가 있는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요?”라고 답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첼로라는 악기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그의 첼로 사랑의 결과가 탄생시킨 곡이 그의 첼로 소나타입니다. 오직 한 곡뿐인 그의 첼로 소나타지만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서정성과 러시아의 향기가 그윽이 풍겨 나오는 후기 낭만파의 걸작입니다.

이 곡에 아름답게 흐르는 첼로 소리를 듣다 보면 같은 러시아 출신 금세기 최고의 첼리스트인 로스트로포비치가 ‘내가 천국에 간다면 모차르트 시대에 첼로를 연주했던 사람들에게 화를 낼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악기의 진가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정말 이해 가지 않는다,’라고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흐르고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뀝니다. 새해에는 제발 세상 모든 곳에서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랐지만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를 듣는 오늘 지구촌 멀리에서는 드디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폭격을 시작했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윽하고도 여리기만 한 첼로 소리로 시작되는 첼로 소나타를 들으면서 나는 문득 러시아라는 나라를 생각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졌을 뿐이 아니라 톨스토이와 토스트에프스키 같은 대문호를 낳고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 같은 음악가를 낳은 나라가 어떻게 우크라이나와 같은 작은 나라를 침공하는 만행을 저지를 수가 있을까 하는 아주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훌륭한 문화와 역사 속에 잘 나가던 러시아가 왜 오늘과 같은 나라로 바뀌었는지를 여기서 논할 자리가 아니지만 아마도 러시아의 이런 변화가 싫어서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조국을 떠나 망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1873년에 러시아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유년기를 보낸 라흐마니노프는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고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이 호평을 받으면서 순탄한 성공의 가도를 걸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1917년에 혁명이 일어나고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자 그는 고국을 떠나 망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르웨이를 거쳐 미국으로 간 뒤 그는 평생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첼로 소나타는 그가 아직 러시아에 있을 때 작곡한 곡입니다.

첼로 소나타가 아닌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라흐마니노프는 한때 우울증으로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음악을 이해하는 훌륭한 정신과 의사를 만나 그의 대표작이자 후기 낭만주의 최고의 걸작인 피아노협주곡 제2번을 쓸 수 있었고 이 곡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뒤에 쓴 곡이 그의 단 하나뿐인 G 단조의 첼로 소나타 작품 19번입니다.

첼로를 그렇게 사랑해서 작곡한 곡이지만 라흐마니노프는 본래 피아니스트입니다. 따라서 그의 첼로 소나타는 첼로가 주인공 노릇을 하고 피아노는 뒤에서 반주 역할만 하는 보통의 첼로 소나타와는 달랐습니다.

첼로와 피아노가 대등한 위치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하며 때로는 서로를 받쳐 주고 때로는 경쟁하듯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스케일이 큰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피아노가 첼로에 종속되는 느낌을 주는 첼로 소나타라는 이름 대신에 곡의 성격을 정확히 나타내는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라고 부르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과연 피아니스트다운 생각입니다.

이 곡을 듣다 보면 피아노의 역할이 상당할 뿐 아니라 그 역할을 제대로 담당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기교가 요구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첼로가 반주를 맡고 있는 피아노곡을 듣고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엔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라고 부르기를 원했다는 작곡가의 의도가 한결 더 수긍이 갑니다.

정열적인 피아노와 사랑스러운 첼로가 융합되어 탄생한 러시아 낭만파의 걸작
우울의 슬럼프에서 벗어나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성공한 여세를 몰아 작곡한 곡이라 이 곡에서는 피아노 협주곡에서 보여 주었던 창의적 정열이 넘쳐납니다. 20세기에 살았으면서도 20세기의 음악 추세를 따르기보다는 러시아 낭만주의의 큰 강물 속에 살려 했던 라흐마니노프입니다.

이 곡에서도 러시아다운 크고 풍부한 선율과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서정성이 피아노와 첼로를 통해 유감없이 흘러나옵니다. 화려하고 정열적이며 현란한 기교로 연주되는 피아노와 때로는 거칠다가 때로는 잔잔한 물결같이 흐르는 첼로가 라흐마니노프만이 낼 수 있는 강렬하면서도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 곡이 완성되자 라흐마니노프는 절친한 친구 첼리스트인 브란두코프(Anatoliy BranduKov)에게 헌정하였고 초연은 1901년 12월 2일 모스크바에서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연주와 브란두코프의 첼로로 이루어졌습니다.

모두 4악장으로 이루어진 꽤 큰 곡으로 연주 시간이 35분 정도입니다
제1악장 Lento-Allegro moderato 지극히 여린 첼로 소리로 시작하지만 곧이어 피아노가 흐느끼듯 따라 나옵니다. 잘 짜인 소나타 형식으로 서로 참고 기다리면서 대화를 하듯 어우러지다가 마지막엔 대륙을 휩쓰는 바람처럼 격정적인 분위기로 치달으며 끝납니다.

제2악장 Allegro scherzando 낮은 음의 피아노와 피치카토의 첼로가 스케르초 풍으로 연주되면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다가 서로를 감싸듯 격려하며 따뜻하고 평안한 첼로의 노래가 흐릅니다.

제3악장 Andante 피아노의 분산 화음 속에 첼로가 정겨운 주제를 대화하듯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하면 첼로가 이를 숙연하게 받습니다.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이 이 악장을 들으면 향수에 젖어 그만 일어나 짐을 쌀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리운 심정의 악장입니다.

제4악장 Allegro mosso 확고하고 당당한 4마디의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며 이어서 첼로가 나와 웅대한 주제를 제시합니다. 3악장의 슬픔을 결연하게 떨치는 악장입니다. 이후 피아노의 현란한 아르페지오와 저음의 첼로 선율이 어우러져 화려하게 막을 내립니다.

추천할 만한 연주
Yoyoma(첼로)/Emanuel Ax (피아노), Heinrich Schiff(첼로)/Elisabeth Leonskaja(피아노), Daniil Shafran(첼로)/Yakov Flyer(피아노)의 연주가 모두 좋습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Daniil Shafran/Yakov Flyer의 연주로 감상했습니다.

음악 감상 뒤에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이사야서 54장 10절입니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the covenant of my peace)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전쟁의 참화 속에 고통받는 작은 나라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친구도 변함없는 평화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화평의 언약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의지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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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