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와 피아노 협주곡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v 1873-1943)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며 또한 작곡가였습니다. 그의 음악은 흔히 비르투오소의 작곡가가 범하기 쉬운 기교 중심의 작풍에만 머물지 않고 독창적이면서 사색적인 데다 조국 러시아 색채가 담긴 서정까지 깃들어 있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작품을 남겼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발군입니다. 화려하고 풍부한 선율과 더불어 그만의 독자적인 음악성이 들어 있는 그의 피아노 협주곡 안에서는 피아노가 그 역량을 최대로 발휘합니다. 그는 모두 4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는데 그중에 2번과 3번이 아주 유명합니다.

1번과 4번도 훌륭하지만 2번과 3번의 명성에 가려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지난주에 2번을 들었기에 화요음악회에서는 3번 협주곡을 들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D 단조 작품 30번
라흐마니노프의 네 개의 피아노 협주곡 중 이 3번 협주곡은 “세상에서 라흐마니노프만 연주할 수 있다”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엄청난 기교를 요구하는 곡입니다. 피아노협주곡 2번이 대성공을 거두며 자신감을 회복한 라흐마니노프는 그 후 1906년부터 2년간 독일 드레스덴에서 작곡에 몰두하였습니다.

충분한 정신적 안정 속에서 독자적인 음악적 특성을 확립한 그는 이 시기에 좋은 곡을 많이 써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작곡도 이때에 시작되었습니다.

1908년에 러시아로 돌아온 라흐마니노프는 가족 별장인 이바노프카(Ivanovka)에서 머물며 1909년에 이 곡의 작곡을 완성했습니다. 그 해에 미국에서 이 새 작품을 연주할 계획이 잡혀 있었기에 그는 이 곡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쏟아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곡을 마무리했고 이 곡은 그가 원하는 대로 피아노 협주곡 역사상 무서우리 만큼 가공할 만한 테크닉과 초인적인 지구력, 상상을 뛰어넘는 예술적 감수성과 시적 통찰력을 요구하는 매머드급 작품으로 탄생했습니다.

미치지 않고는 칠 수 없는 난곡(難曲)
이 피아노협주곡 제3번은 “세상에서 라흐마니노프만 연주할 수 있다”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엄청난 기교를 요구하는 피아노곡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역사상 가장 큰 손을 가진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크고도 긴 손가락을 가졌기에 13도까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그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한 곡을 썼으니 얼마나 연주하기 어려운 곡일지 짐작이 갑니다. 오늘날에도 이 곡은 피아니스트들에게 넘어야 할 산이며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오죽하면 이 곡을 헌정 받았던 호프만이 연주를 사양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요제프 호프만(Josef Hofmann 1876-1957)은 라흐마니노프의 예술적 동료이며 깊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로 라흐마니노프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던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호프만은 “이 곡은 나를 위한 곡이 아니다”라고 하며 연주를 사양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의 손은 이 작품을 연주할 만큼 크지 않았나 합니다.

‘샤인(Shine)’은 호주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David Helfgott 1947 ~)의 실화를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이 곡은 ‘미치지 않고는 칠 수 없는’ 곡으로 묘사되어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데이비드였지만 아버지와의 불화로 가족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좋은 스승을 만나 훌륭한 피아니스트로서 성장했지만 어렸을 때 입은 마음의 상처로 극심한 신경쇠약에 걸렸습니다.

졸업 연주 때 이 곡을 선택한 데이비드를 아끼는 스승이 ‘미치지 않고는 칠 수 없는’ 너무 어려운 곡이라며 말립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난 충분히 미쳤어요. 그렇지 않아요?’라고 답하고 성공적으로 이 곡의 연주를 마칩니다. 하지만 연주가 끝나는 순간 그는 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병원으로 실려 갑니다.

미치지 않고도 이 곡을 쳐내는 한국의 피아니스트
델타 변이 코로나의 확산으로 록다운(Lockdown) 레벨 4가 계속되며 우울하고 답답하던 지난 9월 6일 아침이었습니다. 카톡이 왔기에 열어보았더니 화요음악회 단톡 방에 반가운 소식이 와 있었습니다.

회원 중 음악회 소식에 밝은 청준(별명)님이 보내 주신 유튜브 동영상이었는데 제목이 ‘또 일냈다. 부조니 우승 박재홍’이었습니다. 부조니(Busoni) 콩쿠르라면 세계적으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콩쿠르입니다. 거기서 일을 냈다니 너무 반가워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잠시 뒤 유튜브에서 박재홍이 연주하는 곡은 그렇게 치기 어렵다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이었습니다. 우승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까다로운 콩쿠르로 유명한 부조니 콩쿠르에서 결선 곡으로 이 어려운 곡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박재홍을 보면서 저는 영화 샤인에서 이 곡을 두고 ‘미치지 않고는 칠 수 없다’고 한 말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이제 겨우 22살의 박재홍은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생으로 국내파 피아니스트입니다. 이 어린 학생이 그 옛날 이 곡을 헌정 받고도 자신이 없어 연주를 포기한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호프만이 “난 충분히 미쳤어요,”라고 말하고 혼신을 다해 연주를 끝낸 뒤 혼절할 수밖에 없었던 샤인의 데이비드를 뛰어넘어 미치지 않고도 맨정신으로 이 곡을 연주해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입니다.

한국인이란 사실이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고 멀리 이탈리아에서 전해온 낭보가 코로나로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는 아침이었습니다.

모두 3악장으로 된 곡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악장 – 알레그로 마 논 탄토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서주부에 뒤이어 D 단조의 장엄한 테마가 피아노로 연주됩니다. 러시아 내음이 물씬 나는 첫 주제는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입니다. “만약 작곡하는 데에 어떤 계획이 있었다면, 나는 오직 소리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가수가 멜로디를 노래하듯 피아노로 멜로디를 노래하고 싶었다.”라고 말한 작곡가의 심정에 동감하고 싶은 악장입니다.

제2악장 – 인터메초, 아다지오
오보에의 독주로 멜로디가 연주되다 강렬한 총주로 이어질 때 불협화음으로 등장하는 피아노 독주가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맑은 악상과 우수 어린 선율은 몽환적입니다. 바로 눈앞으로 러시아의 목가적인 풍경을 펼쳐내듯 피아노가 우아하게 관현악과 더불어 곡을 이끌어가다가 쉼 없이 3악장으로 연결됩니다.

제3악장 – 피날레. 알라 브레브
비르투오소를 위한 악장입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뜨겁게 경합을 펼칩니다. 흑백의 건반 위를 광란하듯 질주하는 비르투오소의 두 손이 야성적 힘과 정교한 테크닉으로 빚어내는 진한 서정성이 낭만주의 상상력의 극치를 펼칩니다. 피아노가 클라이맥스를 주도하며 폭풍우가 몰아치듯 듣는 이의 심장을 계속해서 들었다 놓다가 웅장하고 화려하게 끝을 맺습니다.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와 라흐마니노프의 ‘역사적인 만남’
1928년 1월 12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연주로 전설적인 데뷔 무대를 가진 호로비츠가 라흐마니노프의 3번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하고 리허설을 위해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이날 이후 라흐마니노프는 젊은 호로비츠에게 이 곡의 연주에 관한 모든 것을 맡겼기에 이날의 만남을 ‘역사적인 만남’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라흐마니노프는 호로비츠의 연주를 들으면서 너무 감탄해 “호로비츠가 이 작품을 통째로 삼켜버렸다,”라고 언급했고 호로비츠는 이 곡을 너무 좋아해 연주 녹음만도 6종 이상을 남겼습니다.

그의 많은 연주 중에서도 1978년 그의 미국 데뷔 50주년 기념음악회 실황 연주가 가장 좋습니다. 유진 오먼디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연입니다. 물론 화요음악회에서도 이 판으로 감상했습니다.

이날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빌립보서 4장 6~7절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코로나로 이상 기후로 전 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감당해 나가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을 믿을 때 놀라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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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