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를 뒤흔든 음악가 리스트

1811년 19세기 초에 태어나 1886년 죽기까지 리스트가 19세기 유럽의 음악계에 끼친 영향력은 커다란 파도와 같습니다. 그가 남긴 귀한 피아노 음악 작품과 화려하고 경이로운 기교의 피아니스트로 피아노 비르투오조의 시대를 연 것만 해도 대단하지만 ‘교향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공로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음악과 문학을 하나로 아우르려는 시도는 낭만주의 시대를 흐르던 경향입니다. 리스트의 교향시는 바로 그런 경향에 물꼬를 터준 음악입니다. 교향시(Symphonic Poem)란 ‘관현악으로 시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단악장으로 되어있으며 시적인 묘사를 하는 표제 음악입니다.

리스트가 교향시에 관심을 두게 된 배경은 파리에 있을 때 알게 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컸습니다. 무엇보다도 베를리오즈의 화려한 관현악의 취급법과 교향곡과 표제를 결합하는 방법이 젊은 리스트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교향시(Symphonic Poem)의 탄생
하지만 베를리오즈의 표제 취급에는 결함이 있었습니다. 표제에 어울리는 새로운 형식을 고안하지 않고 자유롭고 환상적인 표제를 전통적인 교향곡 형식에 무리하게 접합시켰기 때문입니다. 리스트는 베를리오즈의 교향곡에 감동하면서도 그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식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표제와 음악이 조화롭게 어울리기 위해서는 교향곡같이 다악장이 아니라 자유롭게 넘나드는 단악장으로 된 장르의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낭만주의자였던 리스트는 표제를 묘사적으로 취급하기보다는 시적(詩的)으로 다루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교향시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입니다.

여인 편력으로 유명한 리스트이지만 그 많은 여인 중에서 그가 러시아에서 만난 카롤리네 자인 비트겐슈타인(Carolyne Zu Sayn Wittgenstein) 공작부인은 리스트에게 마지막 연인이며 특별한 여인입니다. 이제껏 리스트 주변을 맴돌았던 여인들과는 달리 공작부인은 깊은 종교적 감성과 문학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고 부인은 리스트에게 순회 연주생활을 그만하고 작곡에 전념하라고 충고했습니다. 부인의 충고를 받아들인 리스트는 피아니스트의 활동을 접고 독일의 소도시 바이마르로 가서 궁정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이곳에서 공작부인의 도움을 받으며 작곡에 전념한 1848년부터 1861년까지 리스트는 초인적이라 할 만큼 능력을 발휘하여 작품들을 썼습니다.

12곡의 ‘교향시’가 탄생한 때도 이때입니다. 그리고 훗날 리스트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인 1882년에 또 한 곡이 추가돼 모두 13곡의 교향시를 남깁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바로 교향시 3번 ‘전주곡(Les Preludes)’과 교향시 6번 ‘마제파(Mazeppa)’입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이 두 곡을 감상했습니다. 첫 번째로 감상한 곡은 리스트의 교향시 중 가장 유명한 ‘전주곡’인데 Georg Solti가 지휘하는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감상한 ‘마제파’도 ‘전주곡’ 못지않게 인기 있는 곡인데 Karajan이 지휘하는 Berliner Philharmoniker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교향시 3번 전주곡(Les Preludes)
교향시 중에서도 ‘철학적 교향시’로 분류되는 이 곡의 주제는 철학적이며 상징적입니다. 리스트가 이 곡을 구상할 때부터 ‘전주곡’이라는 제목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 작곡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이 제목이 붙여졌는데 특히 완성된 악보에 ‘라마르틴느 에 의한(D’apres Lamartine)’이라는 주가 달린 리스트 자신의 서명한 다음의 서문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생은 그 엄숙한 제1음이 죽음에 의하여 연주되는 미지에 대한 노래에의 일련의 전주곡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랑은 온갖 존재의 눈부신 아침 햇살이다. 그러나 그 거친 숨결이 사랑스런 환상을 흩어버리고 격렬한 전광이 제단을 파괴해버리는 폭풍에 의해서 그 최초의 행복의 환희가 중단되지 않을 운명이 어디 있겠는가? 처참하게 상처 입은 영혼은 그 격랑이 지나간 뒤 전원생활의 평안한 고요 속에서 그 추억을 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인가…….’

라마르틴느(Alphonse de Lamartine)는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입니다. 이 시인(詩人)의 ‘신(新) 시적 명상록(Nouvelles Meditations Poetiques)’에서 이 서문은 유래되었습니다. 이 서문이 의도하려는 목적을 생각하며 이 곡을 감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곡의 구성
곡 전체는 단악장의 자유로운 일련의 변주곡이지만 4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1부 죽음을 암시하는듯한 엄숙한 현악 연주 뒤에 감미로운 사랑의 멜로디가 나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묘사합니다.

제2부 폭풍우입니다. 첼로가 처절하게 생명의 폭풍우를 예고합니다.

제3부 사랑의 위안과 평화로운 목가입니다. 호른의 목가적인 울림이 아름답습니다.

제4부 싸움과 승리입니다. 금관의 웅장한 울림이 전투의 대행진처럼 계속되다 화려한 클라이맥스가 승리를 알리며 끝이 납니다.

교향시 6번‘마제파(Mazeppa)’
리스트의 13편의 교향시 중 전주곡 다음으로 자주 연주되는 곡입니다. 이 곡에서도 리스트의 교향시에서 줄곧 나타나는 ‘암흑에서 광명’ 또는 ‘고난에서 승리’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이 곡은 빅토르 위고의 시(詩) ‘마제파’를 표제로 한 교향시입니다.

마제파는 우크라이나의 국민적인 영웅입니다. 젊은 때에 폴란드 왕 요한 카지밀의 궁정에 하인으로 있다가 귀족의 부인과 사랑에 빠집니다. 발각되어 벌거벗겨진 몸으로 말에 매여 황야로 추방되어 빈사(瀕死) 상태로 헤매다가 우크라이나에서 어느 병사의 손에 구조되어 입대하게 됩니다. 거기서 공을 세워 사령관의 지위에 오르며 영웅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이런 마제파의 일대기는 낭만주의 시대의 시(詩)와 그림의 좋은 소재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 경(卿)이 ‘마제파’라는 시를 썼고 프랑스의 문화 빅토르 위고는 바이런 경의 시에 영감을 받아 동명의 시를 썼습니다. 들라크루아와 같은 화가는 마제파가 말에 묶여 있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리스트도 젊은 시절부터 마제파의 삶과 영웅적인 성격에 흥미를 느껴 마제파와 관련된 피아노곡들을 썼는데 그 곡들을 더욱 발전 시켜 작곡한 곡이 교향시 ‘마제파’입니다.

곡의 구성
흔히 리스트의 내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악마적인 성품이 잘 드러난 곡이 마제파라고 이야기합니다. 단악장이지만 내용은 3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제1부 알레그로 모데라토로 시작되는 힘찬 화음에 이어 나오는 거친 세 잇단음표의 연주는 말에 묶여 황야로 추방되는 마제파의 모습을 방불합니다. 격렬함이 끝나면 목관의 부드러운 선율이 나오다가 다시 격렬해지다 선율이 변형되면 티파니의 음으로 조용히 사라집니다.

제2부 아주 짧은데 추방되어 빈사의 지경이 된 마제파의 모습을 안단테의 느림으로 묘사합니다.

제3부 알레그로인데 마제파의 기적과 같은 구원과 승리를 묘사합니다. 트럼펫이 팡파르 풍으로 행진곡 리듬을 연주합니다. 명랑하고 경쾌한 트라이앵글이 마제파의 재기의 기분을 높여주며 곡은 계속 행진곡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다가 마제파의 영웅적 성격을 묘사하듯 새로운 동기가 덧붙여지다 승리를 노래하듯 화려하게 클라이맥스를 이루며 곡이 끝납니다.

하나님 말씀
음악 감상 뒤에 하나님 말씀 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58절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시인도 음악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이김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믿음을 갖고 살아갈 때 결코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전 기사부활(復活)의 아이콘
다음 기사심플하게 세 글자!
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