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부를 담당하면서 그리고 많은 젊은이와 소통하면서 크게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우리가 급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미래를 빨리 알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마치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아멘’하고 누르고 기다리는 컵에 기대한 만큼 빨리 꽉꽉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조바심을 가지고 빨리 급히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 내 비전은 뭐에요? 내가 공부해야 할 전공은요? 직업은? 내가 만나야 할 자매와 형제는 어디에 있나요? 그 다음은요? 그리고 그 다음은요?” 이렇게 미래에 대한 걱정과 조급한 마음은 연약한 인간이기에 당연한 것 같다. 알고 싶다고, 기도 했는데 왜 빨리 응답하시지 않을까? 왜 시원시원하게 그냥 나의 모든 미래에 스케줄을 빨리빨리 알려 주지 않으실까?
누가 이렇게 질문한다면, 그 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하신걸 보면 조금씩 조금씩, 한 걸음 한 걸음,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딱 9개월만, 딱 1년, 딱 2년, 이렇게 말이다.
그때는 참 답답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음을 나는 알게 되어 감사하고 있다. 그것은 나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나를 위한 세밀한 인도 방법이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만약 미리 모든 것을 알아 버렸다면 난 시작도 안 하고 미리 도망쳐 버렸거나, 거절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의 인도하심이, 그 고난이, 때로는 문이 닫혀지고, 뜻하지 않았던 문이 열리는 상황들을 통하여 나의 영적 성장을 향상 시키는 축복의 과정이었음을 지금도 알아가고 있기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그때는 앞을 잘 모르기에 아무것도 없어도 오직 살아계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고 순종하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용감하게 나아가면서 잠깐만 인내하면 될 꺼야, 배고픔도 조금만 참으면 될 꺼야, 억울함도 조금만 인내하면 될 꺼야 하는 마음으로 걸어오니, 어느새 10년이 넘어 버린 것이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러한 방식으로 인도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그러했다. 어렸을 때 난 목사, 선교사 자녀로서 재정에 대한 어려움이 나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래서 난 나의 비전의 하나로 대학에서 비즈니스를 공부하기로 결정했었다. 왜냐하면 비즈니스로 성공해서 나의 부모님과 같은 사역자들을 후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이스쿨도 비즈니스 시범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나는 이 계획도 주님으로부터 온 소원이라 믿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분의 뜻이라 생각하며 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달려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제 오클랜드 대학을 입학할 몇 개월 전에 하나님께서 YWAM DTS 훈련을 받으라고 인도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딱 1년만 선교훈련과 선교사역으로 헌신하고 와서 다시 대학에서 비즈니스를 공부할 계획을 세우고 졸업과 동시에 뉴질랜드를 떠났다.
호주에서 선교와 성경 훈련 과정을 마칠 쯤에, 또다시 인도함 받은 것은 미국 YWAM에서 진행하는 2개월 과정의 순회 전도자 훈련 학교(Circuit Riders) 소식이었고. 참석하여야겠다는 마음을 받았다. 미국에 도착하여 몇 개의 도시들을 다니며 훈련하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 2개월의 과정이 끝나갈 무렵 나는 나의 앞날에 대하여 또 질문하며 어쩔 줄 몰라 답답해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마음을 알려달라고 구했다.
그때에 감동을 주신 것은 2년 동안 제자훈련학교에서 간사로 섬기라는 인도하심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자비량 선교 단체인 하와이 YWAM에서 선교사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2년간의 제자훈련 학교의 섬김을 마쳐갈 무렵 하나님께서는 내게 영국의 YWAM SBS 성경 연구 과정을 해야 하는 간절한 마음을 주셨다. 재정과 체력과 모든 상황이 내게는 쉽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주님의 은혜로 9개월 과정을 다 마치게 해 주셨다.
그리고 다시 YWAM 하와이에 돌아와 제자훈련 학교(DTS)를 섬길 때 그 제자훈련 학교의 학교장으로 책임을 맡으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비록 나이가 어렸을지라도 나는 지금까지 인도하고 계신 신실하신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학교장의 책임을 감당하게 되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큰 책임이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도우심과 성령님의 간섭 하심과 개입하심으로 전적으로 그분의 인도함을 받는 놀라운 은혜의 시간이었음을 나는 지금도 고백하고 싶다.
그렇게 예수 제자 훈련학교를 책임자로 담당하고 있을 무렵, 나는 또 새롭게 내게 도전을 주시는 주님의 마음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대만에 있는 YWAM Titus Project 훈련학교에 가는 것이다. 그 훈련학교는 Bible teaching을 배우고 그리고 대만에 있는 교회들, 학교들, 직장, 또는 원주민들이 있는 시골 마을로 직접 가서 성경을 가르치는 선교 사역이었다.
래서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다, 그 과정을 마치기 위해서는 재정이 상상할 수 없이 컸었고, 그때 그 재정을 계산해 보면, 올라갈 수 없는 높은 산 같았었다. 결정해야 할 날짜 며칠을 남겨두고 생각지도 못한 분을 통해 연락이 왔다. 그분은 나의 상황을 전혀 아는 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분의 꿈에 나의 상황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셨고 그 필요에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받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대만에 가서 훈련 받고 선교할 재정과 왕복 비행기 비용까지 모든 필요들을 채움 받는 놀라운 체험을 했던 그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정말 주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과 상황을 알고 계시며 또한 우리의 간구를 듣고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때 대만에서 나는 좋은 훈련과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또한, 한류의 영향으로 대만의 어느 곳을 가든지 현지 사람들은 한국인인 내게 집중하고, 열심히 내가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반응하여 나도 열심히 신나게 사역을 하였었다.
대만에서의 Titus project 과정을 마치고, 다시 하와이에서 제자훈련 학교의 책임자로 섬기는 선교 사역을 계속하기 위해 돌아왔다. 하와이에서 나는 하나님께서 그 다음을 말씀하실 때까지 허락하신 현재의 사역에 순종하며 열심히 섬기며, 선교팀들을 이끌고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열심히 사역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는 하와이 YWAM을 떠나 신학 공부에 대한 마음을 갖게 되는 예상치 못 했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8년 반 동안 YWAM에서 선교사의 삶을 사는 동안, 세계의 많은 젊은이와 26개 이상의 나라들을 다니며 체험한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과 놀라운 감동적인 사건들이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YWAM에서의 삶을 떠나고 싶지 않았었다.
그 소식은 미국의 Fuller 신학대학원에서 YWAM의 장기 선교사로서 SBS(성경연구학교)를 공부한 사람들에게 Master of Divinity(M.Div) 과정에 입학 할 수 있는 자격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놀라운 소식으로 인하여 나는 아직 대학 졸업장이 없었던 나에게 M.Div 과정을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서 당연히 바로 신학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거라고 믿고 그 동안의 YWAM사역들을 마무리하며 정리하였다.
그리고 누나의 결혼식으로 인하여 시카고에 머물게 되었고, 내가 오랫동안 가고 싶어 했던 학교인 Trinity 신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학교를 구경도 하고 기도도 할 겸 방문하게 되었다. 그 캠퍼스를 거닐다가 마침 학교 교무 행정실 직원을 만나 대화를 주고받게 되어 Fuller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그러자 그 직원은 대학원 부총장과의 미팅을 주선하였고, 부총장은 나에게도 Fuller에서 제안한 M.Div 입학 조건을 똑같이 주고, 학비의 70%까지도 장학금을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때 그 제안을 들었을 때 나는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여정 하나하나 가운데, 내가 가진 것과 내 힘으로는 한 발짝 조차 앞으로 갈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전적인 은혜와 자상하시고, 자비로운 아버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인하여 나는 여전히 감동과 감격밖에 없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었다.
Fuller에서 Trinity로의 새로운 문이 열린 기쁨과 기대감 가운데 있던 어느 날, 미국 워싱턴의 친한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 꼭 오라고 하여 갔더니 소개할 분이 있다며 어느 장로님의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초대하신 장로님의 집이 어마어마했다. ‘혹시 나를 후원해 줄 수 있는 분이 아닐까?’라는 인간적인 기대감이 들만큼 그 분은 스팩이 어마어마한 한국 교포이며 교회 장로, 박사, 사장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나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질문하셨다.
그 다음 날 장로님 댁으로부터 전화가 와 지인은 장로님의 아내 되는 분과 오랫동안 통화를 했다. 통화의 내용은 장로님 부부는 또 누군가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고, 난 긍정적으로 누구냐고 물어보았더니 그 사장님의 첫째 딸을 나와 사귀도록 소개해 주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헐, 이건 뭐지?’라는 생각에 한참 멍하게 있었다. 내가 기대 했었던 응답이 아니어서였을까? 한참 정리가 안 되고 있을 때 내게 자기 딸을 만나보고 사귀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며 그 이후에 후원에 대해서 나눠보자는 내용이었다.
‘아, 부자들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 제안을 바로 거절했다. 그때 나는 오직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전에만 집중하며 순종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자매를 사귀는 것에는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때 사람들이 사귀는 자매가 있냐고 물어보면 오직 Jesus라고 웃으며 대답하곤 했었다.
지금도 싱글로서, 그 장로님의 제안에 나의 반응 중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왜 나는 그때 그 첫째 딸의 사진을 보여달라고 한마디 말도 안 했을까? 지금 생각하니 그 자매의 얼굴이 너무 궁금하다. 혹시 미인이었을지도?
Trinity의 놀라운 제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시카고 Trinity의 학비 30% 재정 후원을 마련하지 못하여 난 그 모든 기회를 기한 없이 내려놓고, 주님은 내가 뉴질랜드에서 무언가를 하기를 원하신다는 기대감으로 뉴질랜드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2018년 7월……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