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리스트는 1811년 헝가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담 리스트는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과 기타를 연주하는 음악가였습니다. 여섯 살 때 리스트에게 처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던 아버지는 그의 천재적 재능을 알아보고 아들을 카를 체르니(Carl Czerny)에게 데려갔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피아노 교본으로 잘 알려진 체르니는 3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고 7살에 작곡을 한 신동이었습니다.

베토벤이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을 연주하는 체르니를 보고 감동하여 제자로 받아들인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런 체르니 역시 아버지 손을 잡고 온 리스트의 재능을 알아보고 교육비도 받지 않고 성심껏 피아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체르니가 리스트를 데리고 스승 베토벤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바흐의 평균율을 조를 바꾸어 연주하는 어린 리스트를 보고 베토벤은 “너는 참 대단한 아이구나”라는 칭찬을 했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리스트는 베토벤에게 “선생님의 곡을 연주해보고 싶어요”라고 하며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습니다.

베토벤은 연주를 마친 리스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너는 행운아로구나.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게 될 테니까!” 이 말은 어린 리스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으며 그 이후 리스트는 언제나 베토벤을 닮고 싶었고, 그처럼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완벽한 교향곡과 협주곡을 남긴 베토벤을 생각하면서 리스트는 연주와 작곡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봅니다. 베토벤과 체르니가 리스트의 천재성을 알아본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천재를 알아보고 또 키워주는 스승들이 있었기에 ‘피아노의 왕’이라는 별명이 결코 무색하지 않은 불세출의 피아니스트인 리스트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노 협주곡
작곡자가 곧 피아니스트였던 낭만주의 초기의 피아노 협주곡은 무엇보다도 독주자의 기량을 뽐내기 위한 화려함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다가 세 사람의 젊은 피아노 거장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피아노 협주곡이 나옵니다. 이 세 거장은 쇼팽과 슈만, 그리고 리스트입니다. 쇼팽과 슈만은 동갑내기로 1810년생이고 리스트는 한 살 아래인 1811년생입니다.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쓴 쇼팽은 피아노의 새로운 서정을 뽑아내면서 피아노의 시인이란 이름을 듣습니다. 슈만은 단 한 곡의 피아노 협주곡 A 단조를 썼지만 이는 전통을 뛰어넘어 피아노와 관현악의 새로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음색을 추구한 걸작이었습니다.

이들보다 늦었지만 리스트가 각고 끝에 내놓은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은 19세기를 넘어서 20세기를 넘보는 듯 형식을 초월하며 간결하면서도 균형이 잡힌 곡이었습니다. 거기에 비르투오소 적인 화려한 기교까지 더해졌기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원하던 청중들을 단번에 매혹시킬 수 있었습니다.

작곡자 스스로가 피아니스트인 사람이 스스로를 가장 멋지게 드러낼 수 있는 장르가 피아노 협주곡일 것입니다. 19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이었던 리스트에게 피아노 협주곡은 아주 매력적인 장르였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여러 편의 피아노 협주곡을 쓰려고 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남아있는 그의 곡은 1번과 2번 두 곡뿐입니다. 비록 두 곡뿐이지만 둘 다 낭만주의 음악사에 빛나는 특이한 걸작입니다.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 Eb 장조
평생을 아름다운 여인들에 휩싸여 끊임없는 염문을 뿌리며 살았던 리스트이지만 마지막 연인 ‘카롤리네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은 그에게 긴 방황을 끝내고 돌아온 정착지와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카롤리네는 매우 지적이고 사려 깊은 여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녀는 리스트에게 화려한 연주 생활을 그만두고 작곡에 전념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녀의 권고에 따라 연주 생활을 그만두고 바이마르 궁정악단의 지휘자 겸 작곡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때가 1848년인데 이 곡이 완성된 해가 1849년입니다. 리스트가 일에서 안정되고 인간적으로도 성숙하였던 시기의 작품입니다. 그러니 이 곡은 완성된 뒤 6년 동안 공개석상에서 연주되지 않았고 리스트는 계속해서 수정하고 가필 했습니다. 리스트가 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신중을 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음악 평론가 박용구 선생께서는 이 곡을 ‘피아노의 거장으로 피아노 음악의 표현력을 비약적으로 확대시킨 리스트의 굵은 터치(筆力)와 영웅적 기백을 구비한 현란한 기교의 협주곡’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이전의 고전적 협주곡 스타일의 형식을 완전히 깨뜨리는 획기적이면서도 독특한 이 곡은 모두 4개의 악장으로 되어있지만 각 장은 중단 없이 연주됩니다. 마치 교향시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또한 3악장에서는 협주곡에서는 잘 사용 안 하는 스케르초를 두고 있으며 경쾌한 트라이앵글이 튀어나와 어느 비평가는 ‘트라이앵글 협주곡’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웅대한 악상과 화려한 기교의 1악장, 어딘지 슬픈 분위기의 2악장,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트라이앵글이 효과적으로 활약하는 3악장, 피아노 연주가 더욱 발랄하게 빛나게 느껴지는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2번 A 장조
이 작품은 1839년 처음 작곡되었지만 그 뒤로 1861년까지 계속해서 개정되다가 거의 20년이 지난 1857년에야 제자 한스 폰 브론자르트의 피아노와 리스트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고 또 6년이 지난 1863년이 되어서야 출판되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을 대하는 리스트의 애정과 신중함을 다시 보여줍니다. 어떤 면에서 제1번보다 훨씬 더 성숙하였고 주제도 더욱 흥미롭고 보다 새로운 피아노 기법이 나오지만 많은 사람이 1번을 더 선호하는 것도 하나의 아이러니입니다.

이 협주곡은 표제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교향시적인 성격을 지녔기에 흔히 ‘교향적 협주곡’이라 불립니다. 전통적인 3악장 형식이 아닌 긴 단 악장의 곡입니다. 쉬지 말고 한 번에 끝내기를 원하는 리스트의 지시대로 연주자는 연주해야 하지만 듣는 우리는 잘 들어보면 다음과 같이 6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부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아사이: 목관이 부드럽게 주제를 불어내다 피아노가 합세한다
2부 알레그로 아지타토 아사이: 힘찬 현의 반주 위에 피아노가 정열적으로 주제를 두드린다.
3부 알레그로 모데라토: 부드럽고 풍부한 표정의 새로운 주제를 현이 뜯어낸다.
4부 알레그로 데치조: 피아노가 격렬해지다 정점에서 관현악의 움직임도 강렬해진다.
5부 마르치알레 운 포코 메노 알레그로: 행진곡으로 금관과 피아노가 활약한다.
6부 알레그로 아니마토: 목관과 피아노가 어울려 시작하다 강렬한 클라이맥스를 이루며 끝난다.

화요음악회에서는 이 두 협주곡을 모두 리히터(Sviatoslav Richter)의 피아노 독주와 Kirill Kondrashin이 지휘하는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취향인지 몰라도 이 삼자(三者)의 조합이 이루어내는 최상의 연주를 듣기 전에는 저는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삼십여 년 전 어느 날 음우(音友) 한 분이 손에 쥐여 준 이 CD를 듣고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연주자에 따라 곡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피아노도 오케스트라도 모두 최대한의 음을 뿜어내지만 서로는 서로를 존중하며 조화롭게 연결됩니다.

때로는 폭풍이 휩쓰는 바다와 같은 관현악 위를 피아노라는 조각배가 저어나가지만 그 흔들림 없는 소리의 노 저음에 그만 리히터에게 반할 수밖에 없는 연주입니다. 여러분 모두께 추천합니다.

이날 같이 본 하나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5장 8~10절입니다

  1.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2. 리스트도 오랜 방황 끝에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혹시라도 삶의 어둠 속에 빠지는 일이 생긴다면 가능한 한 빨리 돌아와 빛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나를 기쁘게 할 것이 아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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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