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수록 독립적인 아이로 키워라

청담동 J 양 어머니의 지나친 자식 걱정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나는 영어 과외로 만만찮은 서울 생활비를 충당했다. 낮에는 학생으로, 밤에는 강사로서 학원에서도 많은 아이를 가르쳤다. 1등급 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학생 등 다양한 학생만큼이나 다양한 엄마를 만났다.

그중 청담동 중학생 J 양의 엄마가 기억에 남는다. 첫 만남, 내가 앉기도 전에 엄마의 하소연이 시작되었다. “김해 중학교에서는 영어성적이 전교권이었거든요. 근데 서울 와서는 성적이 바닥이에요.”

시험이 코앞이라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며칠 후 그 어머니는 영어 작문 숙제가 있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주제는 ‘엄마’였다. 나는 일단 한국어로 J에게 엄마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해 보자고 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 같은 쉬운 소재거리를 찾아보자는 이야기였는데 당황스럽게도 J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지하철 2호선. 또 J 양의 엄마 전화였다. “아니, 선생님! 왜 우리 아이 스트레스를 주세요? 여기 아이들은 원어민 선생님이 숙제를 다 해준단 말이에요!” 지하철의 굉음을 뚫고도 쩌렁쩌렁 울리는 엄마 목소리에 나는 그만 질리고 말았다. 나는 그 학생을 더 이상 지도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 엄마를 지도하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 맞는 표현일 것이다.

J 양 엄마 같은 부모들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맞지만 그분들 덕에 나는 육아에 관한 철칙을 세울 수 있었다. 내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리라. 독립심이 강한 아이들은 공부도 잘한다. 야무지다. 이것은 13년간 나의 임상경험으로 증명된 바다.

뉴질랜드 가족상담학교의 학생은 총 17명으로 독일, 싱가포르, 호주, 미국, 그리고 스위스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여덟 쌍의 부부였다. 나만 싱글이었다. 그중 드보라네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드보라 가족의 아이들을 무척 귀여워했다. 드보라 부부는 나에게 아이를 맡기고 외출할 정도로 나와 친하게 지냈다. 세 살 여자아이 타미라와 여섯 살 남자아이 티몬. 이야기의 꼬마 주인공들이다. 난 싱글이라 주로 드보라 가족과 함께했다.

한 번은 집에 놀러 갔더니 티몬이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뭘 하나 궁금해 들어가 보니 바닥에 옷을 잔뜩 꺼내두고 혼자서 이 옷 저 옷을 걸쳐 입고 있느라 바빴다.

마침내 본인의 코디에 만족한 듯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 아이를 보며 드보라와 나는 국경을 넘어 미소 짓고 말았다.

티몬은 후줄근한 셔츠 차림이었다. “쟤는 항상 저 낡은 옷을 입어. 멀쩡한 옷도 많은데… 나는 저 옷 입는 게 싫거든. 모자도 그렇고.”라며 드보라는 속삭였다. 그러나 아이에게 옷에 대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내키지 않더라도 아이의 선택과 개성을 존중하는 드보라의 양육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내 기억 속 두 아이는 참 당당하고 밝았다. 부모의 양육 태도가 아이의 독립심과 책임감에 좋은 영향을 주었음이 틀림없다. 11살, 14살의 남매가 어떻게 자랐을지 궁금하다.

아이의 감정에는‘낄끼’, 행동에는‘빠빠’하자
아이를 키우면서 깨우친 것이 있다. 독립적인 아이로 자라게 하려면 소위 ‘낄끼빠빠’를 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낄끼빠빠’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는 신조어이다.

나의 원칙은 ‘행동적인 면에서는 ‘빠빠’, 감정적인 면에서는 ‘낄끼’하는 것이다. 한 번은 19개월 은율이가 울면서 방에서 나온 적이 있다. 다리 하나는 한쪽 바지 다리에 들어가 있고 다른 하나는 삐져나와 있었다. 울며불며 엉덩이를 씰룩이며 끝까지 바지를 입는 딸이 대견해 꼭 안아주었다.

유모차 버클을 혼자 꽂겠다며 내 손을 홱! 뿌리치던 날의 기억. 카 시트에 앉힌 후 버클을 채워주려고 다가가니 이미 단단히 버클이 채워져 있어 깜짝 놀랐던 순간, 풀기만 할 줄 알던 단추를 정확히 채우던 36개월, 손을 벌벌 떨면서도 혼자 물감을 짜던 23개월, 엄마가 밀어주는 그네는 시시하다며 혼자 그네에 풀쩍 뛰어올라 스릴 만점의 그네 타기를 좋아하게 된 4살의 은율이. 아이를 키우며 가장 기뻤던 순간을 꼽으라면 위와 같은 순간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낄끼’ 해야 하는 순간들은 많다. 바로 아이의 감정을 살피는 일이다. 나는 딸의 감정들을 세심히 살피는데 부지런한 엄마이다. 엄마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며, 시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옷이 진창이 되어도, 배수관 고드름이 신기하다며 입에 가져다 대어보아도, 아주 어려서부터 혼자서 가위질을 해도 편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감정에 대해서만큼은 그렇지 않다. 아이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것은 자존감과 직결되고 자존감은 자신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양육의 최종 목표, 엄마로부터의 독립을 이룬다.

엄마가 먼저 소신 있게, 독립적으로
감정을 세심하게 살피되 행동 발달 면에서는 독립적으로 키운 나의 방법이 맞다는 확신이 서서히 들어가던 즈음의 일이었다.

기관에 가지 않고 가정 보육으로 크던 4살 은율이는 토요일 오전에 아빠와 문화센터를 다녔다. 거기서 남편이 영상을 하나 찍어왔다. 고만고만한 꼬마들이 미술 놀이에 앞서 퀴즈를 푸는 시간이었다.

“펭귄은 날 수 있을까요?”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자신감 넘치는 딸아이의 대답이 핸드폰 스피커 너머로 들렸다. 그날 나는 영상 속 아이에게서 두 가지를 확인했다.

많은 육아서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것들이었다. 바로 독립심의 싹은 자신감이며 그러한 자신감의 원천은 자신을 지지해 주는 부모라는 사실 말이다.

“그렇게 키우면 힘들지 않냐.”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린이집을 보내야 사회생활에 자신감이 생기지.”라는 말에도 아이가 준비될 때를 기다렸다. 그날 문화센터에서의 영상을 보며 아이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내 소신이 보상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이가 독립적인 사람으로 커 주길 바란다면 엄마가 먼저 독립적이어야 한다. 남들 다 한다고 따라가서는 안 된다. 아이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큰다.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반드시 어려서부터 독립심을 키워주길 바란다.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지나친 돌봄은 내 아이를 영원히 날 줄 모르는 아기 새로 머물게 할 뿐이다.

아기 새는 귀엽다. 하지만, 언제나 포식자들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 사랑한다면 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떨어지고 실수하게 해야 한다.

경찰이 꿈인 5살 은율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주제가의 한 부분으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작은 토끼이지만 당당히 동물의 세계에서 경찰로서 활약하는 주디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주디 경관은 실수도 하고 좌절도 겪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고 당당히 정의를 이루는 데 공헌한다.

“Birds don’t just fly. They fall down and get up. Nobody learns without getting it wrong. I won’t give up, no I won’t give in.”

새들은 그냥 나는 게 아니야. 떨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거야. 누구도 실패하지 않고 배울 순 없어. 난 포기하지 않아. 아니 포기 안 해. 귀엽기만 한 아기 새가 아닌 자유롭고 행복한 새가 되어 날아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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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혜진
고려대 및 한동대 국제로스쿨 졸업, 뉴질랜드 FamilyMinistries 학교수료.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어린 시절이며 육아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는 믿음으로 자발적 경단녀로서 양적 질적 시간을 꽉꽉 채운 가정양육을 하며 느낀 경이롭고 행복한 과정을 글로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인스타: miracley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