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이민자들

한국에서도 힘든 전문직으로 뉴질랜드에서 당당하게 성공한 여섯 사람 이야기
2005년 출판된 [행복한 이민자들]은 이민을 통해 자기 발전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6명의 저자는 한국의 어느 길거리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사람들도 노력하면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이민 2세, 3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건강하게 지키면서 어느 사회에서든 자기 몫을 충실히 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만큼, 이민 1세대들도 자기 꿈을 실현해 나가는 인생이 되기를 바라는 동기로 펴내게 되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공인 회계사/심리 치료사/고등학교 교사/ 농장 주인/ 변호사
봉국종 대형 백화점 Farmers 사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2005년 2월에 SY Agency NZ Co Lt로 옮겨서 이사로 활동하다. 한국의 대기업에서 IT분야에 종사하다가, 삼십 대 후반에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에 이민을 떠났다. 뉴질랜드 현지 사회에서 자신의 뛰어난 IT 전문 기술력을 발휘하고 인정받으며 살기를 희망하여, 그러기 위해서는 현지인에 버금가는 살아 있는 영어 실력이 급선무임을 깨닫고, 영어 공부와 뉴질랜드 사회를 알기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뉴질랜드는 IT 쪽의 보수가 상당히 높은 나라이다. 그리고 신입 사원 입사라는 것이 좀처럼 없고 거의 경력자 위주로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직원을 채용할 때 추천서와 추천인의 대답이 상당히 중요하고, 자기네 회사에 대한 지원자의 관심도가 또한 중요한 열쇠로 작용한다.” 9p.

이중렬 공인 회계 법인 Accounting House를 파트너들과 공동 운영,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다가 삼십 대 초반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왔다. 처음에는 6년만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마음을 바꿔 아예 뉴질랜드에 눌러앉아서 살고 있다. 유니텍과 오클랜드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뒤 뉴질랜드의 4대 대형 회계 법인의 하나인 KPMG에서 일하던 중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뉴질랜드 공인 회계사 자격증을 땄다.

“낯선 나라 뉴질랜드에서 다시 대학을 다니고 회계 법인에서 일을 하고 시험을 치며 흘려 보낸 몇 해 속에서 한 청년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어느 날 그 두 아이의 아빠 앞으로 우체부가 전해 준 커다란 봉투 안에는 ‘공인 회계사’ 자격증이 들어 있었다. “ “CPA가 되어 중소 규모의 기업에 도움이 되고 싶다”라던 어린 날의 그 꿈이 정말 이루어진 것이다. ” 43p.

이승욱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심리 치료사가 되었다.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 심리학 석사(수료), 심리 분석 석사, 철학 석사 학위를 마쳤다. 오클랜드의 한 정신병 전문 재활 치료 센터에서 심리 치료실 실장, 수석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내와 같이 교사로 일했다. 삼십 대 초반에 세 살 된 딸아이를 데리고 이민을 왔다.

“달 무지개를 본 것은 뉴질랜드에서 한밤중까지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귀한 경험이었다. 무지개는 오 분쯤 뒤에 사라졌지만 달 무지개를 본 그 경험은 내 삶의 상징처럼 내 마음에 남아 있다. 그 경험은 꿈같고 대단하지만, 누구든지 체험할 수 있는 일이다. 자기 자리를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뉴질랜드같이 맑고 아름다운 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볼 수 있는 일이다.” 91p.

천철남 오클랜드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일본어와 그래픽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제일기획 디자이너, 한컴기획 제작부장, 서울광고 제작국장 등으로 광고계에서 십 수년 일하고, 광고 분야에서 일본어-한국어 동시통역 일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에서 오랫동안 디자인과 광고에 대해서 가르쳤다. 사십 대 초반에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에 이민 온 뒤에, 일본어학과, 영어학과, 교직학 준석사 과정을 공부하였다. 정교사 자격을 얻어 고등학교 교사로 활동을 했다.

“나는 뉴질랜드 학생을 가르친다. 뉴질랜드의 학생들에게 일본어와 그래픽 디자인을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한국의 얼을 심어 나가고 있다. 비록 말썽꾸러기들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나이 먹고 철이 들어 그들의 마음속에 한국의 얼이 꽃 피어날 것을 믿으면서….” 125p.
(고) 천철남 집사께서는 2021년 5 월 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 입성을 하였습니다.

이인순 한국에서 창작동화 작가로 활동하다가 사십 대 초반 가족들과 이민 온 뒤 잔디깎이, 피자집 등을 하다가 내 땅에 스스로 농사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오지에 농장을 마련하여 그 나라 하늘빛을 닮은 야채를 기르고 있다.

“온 식구가 또 고추 밭으로 나가 거센 비바람에 온몸을 내맡긴 채 고춧대 묶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일을 할 때나 일을 끝내고 나면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자신이 스스로 대견스러워 몇 번씩 일해 놓은 밭을 돌아보며 행복이 여기에 있었다고 하며 뿌듯해하곤 한다.” 177p.

김광현 변호사로 위틀락 합동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주류 회사에 다니다가 삼십 대 초반에, 인생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되면서 가족과 함께 이민을 왔다. 남섬 더니든에 자리를 잡고, 오타고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에 2002년 변호사로 임관하였다.

“이민을 왔다고 해서 삶이 계획대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원하는 비즈니스를 한다고 해도 한국보다는 더 힘들 수 있고, 공부한다고 해도 바라는 방향대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고비를 만나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가족이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잘 극복해 나가면, 뒷날 참 할 말도 많은 풍부한 인생이 되리라고 믿는다.” 205p.

힘든 여정을 이겨내고 행복한 이민자로 우뚝
6명 저자의 이민 초기, 공부하는 과정, 일터에서의 애환을 통해 묻어 나오는 경험담들이 고스란히 이민자의 삶을 드러내 주고 있다. 그들이 흘린 눈물과 땀은 속이지 않는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자연의 법칙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증명해 보이는 6명의 행복한 이민자들을 통해 각 분야에서의 전문가가 되는 길을 닦아 주어 감사하다. 누군가 먼저 지나간 길이기에 다음에 그 길을 향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더 안정된 걸음을 내딛게 해주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이민자의 삶이 더 편하고, 쉽고, 빠른 길이 아니어도 치러야 할 값을 치르고 받아야 할 대가를 누리며 살아가는 그런 행복한 이민자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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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종
올네이션미션센터 대표(GMS선교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2000년 3월 뉴질랜드 도착하여 21년간 한인 목회와 남태평양 선교 네트워크를 감당하고 있으며, 점수제 일반 이민 30년의 뉴질랜드 이민 역사 속에서 한인 저자들이 쓴 책 가운데 뉴질랜드와 한인의 삶이 담긴 12권을 매달 한 번씩 북 리뷰를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