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송 및 후원교회

전쟁을 하면 최전방에서 싸우는 군인이 있는가 하면 후방에서 지원하는 군인이 있다. 이 둘 다 함께 전쟁을 하는 것이다. 전방에서 직접 적과 대치하는 군인만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후방에서 물자를 공급하고 지원하는 군인들도 함께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 가정이 선교사로 있을 동안에 이러한 병참기지의 역할을 확실하게 해 주었던 파송 교회를 잊을 수가 없다. 선교 준비를 시작할 초기에는 파송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히 잘 몰랐다. 파송식을 해주고 매달 후원금을 보내 주는 정도로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파송 교회의 역할이 여러 방면으로 선교사를 위한 지원을 하고 선교지를 방문하여 필요를 돕기도 하며, 선교지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도움을 아끼지 않는 것임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H 교회는 부족한 우리 가정을 위해 모든 책임을 떠안고 선교사로 파송해 주었다.

정신적인 지원
선교사 중에는 파송 교회 없이 몇몇 교회의 협력을 받아 선교지로 가는 선교사도 많이 있다. 그러나 선교사는 든든한 후방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선교사는 너무나도 외로울 뿐만 아니라 쉽게 지쳐버릴 수 있다. 영적으로도 공급을 잘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사단이 쉽게 틈을 타기도 한다.

우리는 감사하게도 좋은 파송 교회와 여러 후원 교회들을 만나게 되어 많은 도움을 받고 그들로부터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많이 졌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시시때때로 기도와 격려, 그리고 필요를 공급받았다.

특히 아내가 아플 때는 마치 자기의 일처럼 가슴 아파하면서 눈물로 기도를 해 주었다. 그래서 치료를 마치고 파송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면서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 한마디에 서로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 말을 하는 나는 정말 감사해서 감격의 눈물이 흘렀고, 듣는 성도들은 그동안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했던 사람이 와서 인사를 하니 반가움의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아내의 건강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를 해주며 물질적으로 도움을 준 교회와 개인을 일일이 다 말을 할 수가 없다.

빌립보서에 보면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나온다. 에바브로 디도가 빌립보 성도들이 보내준 헌금을 바울에게 전달하러 왔는데 그만 중한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래서 빌립보 성도들이 디도가 아파서 죽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 심히 걱정을 했고 디도는 자기로 말미암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염려한다는 것 때문에 또 걱정을 했다(빌립보서 2:26). 서로를 위해서 깊이 마음을 써 주는 아름다운 동역의 관계이다.

이런 교회가 뒤에서 함께 한다면 선교사는 외롭지 않을 것이며 영적으로도 힘든 상황을 잘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선교사에게는 물질적 후원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긴밀한 관계를 통한 영적, 정신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다.

물질적인 지원
파송 및 후원교회의 이러한 지원은 선교사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유기적인 관계를 통한 정신적인 지원은 선교사의 마음을 크게 위로하고 힘을 주는 한편, 물질적인 지원은 사역 그 자체에 큰 동력을 준다.

선교지에서 사역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가까운 곳에서 사역을 하는 선배 선교사의 차를 빌려서 타기도 했고, 때로는 아주 불편하였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했다.

직접 운전해서 가면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짧게는 3시간, 길게는 7시간까지도 걸린다. 트럭을 개조한 차에 사람들과 짐을 꽉꽉 채워서 중간중간 이 마을 저 마을 들려서 사람들을 내려주고 비도 만나 쉬엄쉬엄 가다 보면 그렇게 오래 걸린다.

어느 날 뉴질랜드에서 J 목사가 와서 우리가 사는 마을 집을 짓는 일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필요한 건축자재를 구입하기 위해서 도시로 나갔는데, 돌아오는 중에 차가 고장이 나서 멈춰 버렸다. 선교지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감사하게도 도시를 벗어나기 전에 고장이 나서 조치를 취할 수는 있었지만, 빌려서 타는 차를 사용하다가 이렇게 되니 아주 당황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나중에 J 목사님을 통해서 이 일이 파송 교회에 알려지게 되었고 모든 성도들이 헌금을 해서 분에 넘치는 좋은 차를 구입해 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인하여 사역에 날개를 단 듯했다.

반면에 후방의 지원이 약해서 선교사들이 고생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성경번역 선교사역은 컴퓨터가 사역의 큰 역할을 담당한다. 만약 컴퓨터가 고장이 나 버리면 사역이 멈춰지게 된다.

여러 가지로 뒷받침이 잘 되는 선교사들은 컴퓨터가 고장이 나도 곧바로 교체가 가능하여 사역에 큰 지장이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선교사는 컴퓨터를 새로 구입할 만한 재정이 충분치 않아서 사역의 진행에 큰 차질이 생기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듯 재정 지원은 사역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교회와 선교사와의 관계
후원금을 보내는 일에 있어서도 매월 정해진 금액을 꼬박꼬박 보내오는 교회들과 개인들에게 정말 깊은 감사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 일정하지 않은 금액을 보내주는 교회나 개인도 있는데 이들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뭉클할 때가 있다. 그 교회나 개인의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여 일정한 금액을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

그러다가 수입의 여유가 생기면 우리를 잊지 않고 보내주는 것이다. 금액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정말 감사하다. 그들이 우리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음에 큰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그들이 보내주는 귀한 선교후원금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이렇게 교회와 선교사는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와 사랑의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빌립보 교회와 사도 바울의 관계가 선교사와 후원교회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가장 좋은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여(빌1: 7)’ 이라고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빌립보서 1:8)’라고 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는 어떠했는가? 그들도 역시 극심한 가난 중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다(고린도후서 8:2). 그러나 빌립보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도 풍성한 연보를 했을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을 위해서도 선교헌금을 몇 차례씩 보냈던 교회였다(빌립보서 4:10, 16).

그들이 이렇게 서로를 생각하게 된 것은 선교헌금을 주고받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빌립보 교회와 사도 바울의 서로를 향한 사랑이 그만큼 깊었기 때문이다.

연말이 되면 어떤 교회는 선교사의 근황에 대해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다음 해에 계속해서 후원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평가가 목적일 때도 있다.

또 어떤 교회는 후원선교사를 정한 후에는 후원금만 보내는 것으로 그칠 때도 있다. 물론 교회에서 여러 명의 선교사를 돕다 보면 많은 선교사를 다 관심을 가지고 챙기지 못할 때도 많다.

후원금을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한발 더 나아가서 교회는 협력하는 선교사와 관계가 잘 형성이 되어 서로의 형편과 소식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선교사도 역시 교회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신실함과 함께 교회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교회와 선교사 사이에 아름다운 동역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선교사역에도 많은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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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 현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2007년도에 뉴질랜드로 건너와서 한우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다. 선교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고 한국의 고신(예장)교단(KPM) 및 성경번역 선교회(GBT) 소속 선교사로 파푸아 뉴기니에서 성경번역 사역을 하였다. 2020년 2월부터 해밀턴 주사랑교회에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