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습 이대로

집 앞에 타일 사이를 비집고 이름 모를 작은 식물이 생겼습니다. 이파리가 커다랗고 진초록인 게 대견해서 그냥 두었더니 제법 자랐습니다. 바닥을 기어 옆에 있는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넝쿨 식물입니다.

감겨있는 나무가 가여워 작은 식물을 댕강 잘랐습니다. 그 나무 옆으론 현관으로 들어오는 입구 쪽으로 가느다란 기둥이 있는데도, 이 식물은 몇 번이고 같은 나무를 감아 올라갑니다. 무거운 돌이나 화분으로 그 길을 막고, 기둥으로 가도록 줄기를 다 들어 옮겨 놔도 어느새 돌아 다시 나무쪽으로 기어갑니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넝쿨을 기둥 아래쪽으로 끌어다 놓고, 겨우 한 바퀴를 돌리고 나서 준비한 끈으로 묶어 놨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이제 드디어 기둥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열 바퀴는 돌았나 봐요. 이제 계속 감아 올라가면 될 테니 더 묶을 필요도 없습니다. 길이 정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정해지면 그 길을 계속 가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들도 비슷한 면이 있지요. 일관성을 보여주고 싶은 그런 심리가 사람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호감이나 좋은 첫인상을 갖게 되면 그 사람에게서는 나쁜 점을 잘 보지 못합니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고, 설사 그게 보여도 충분히 좋은 모양으로 포장이 됩니다.

그 상대방도 이쪽의 호의와 호감을 알아서 실망 시키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딱 하나의 모습만 갖고 있지 않습니다.

늘 유쾌한 모습으로 군중 속에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니컬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너무 여려서 많이 울기도 합니다. 반대로 굉장히 수줍어하고 얌전한 사람인데, 어느 부분에선 굉장히 다혈질이기도 하고, 엄청난 흥이나 끼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아주 여러 모양과 질감의 성향을 갖고 있지만, 상대에 따라 보고 싶어 하는 부분을 잘 골라 보여주고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실수로 감추지 못한 어떤 게 드러나게 되면 상대방은 그러죠. “너답지 않게 왜 이래?”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요. “나다운 게 뭔데”.

오래전 교회 고등부 학생들이 무대에서 ‘가면’ 이란 제목의 스킷을 한 적이 있어요. 대사는 없지만 연기와 음악으로 스토리를 전해 주는 연극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인공이 집에 혼자 있습니다. 때론 즐겁고, 때론 화도 냅니다. 그런데 누가 집으로 찾아옵니다. 누구 인지를 확인하고는, 서랍 속에서 여러 가면들 중에 하나를 찾아 쓰고 문을 엽니다. 방문객이 떠나면 가면을 벗어 다시 서랍에 넣습니다.

이번엔 잘 어울려 노는 친구들이 옵니다. 역시 친구와 만날 때 쓰는 가면을 골라 쓰고 나니 동작도 커지고 유쾌해집니다. 목사님 심방 때는 이런 가면, 학교 선생님 만날 때는 저런 가면, 부모님 만날 때는 또 이런 가면을 적당히 골라 쓰며 지냅니다.

그러다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많이 지치고, 울적해졌는데 또 누가 옵니다. 그런데 누구인지 잘 몰라 어떤 가면을 써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는 그 주인공을 그 누군가가 그냥 안아줍니다. 그는 하나님입니다. 맨 얼굴을 한 주인공은 어느 가면 없이 안아주는 하나님을 만나 평안해 하고 행복해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만인이 나를 좋아할 수가 있어~”. 법정 스님의 오래된 수필집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던 나는, 어쩌면 그래서 아주 많은 가면을 감춰두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해준 연극입니다. 알게 된 건 오래전 그때인데, 그 시절엔 잘 안되더니 이제 나이 먹으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름에 맞게, 또는 기대에 부응하며 살려고 애쓰는 게 분명 성장하게 하는 큰 동기가 되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나를 빼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 질 지가 이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사람이면 좋겠는지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그런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사실 세상도 나를 그렇게 궁금해하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얼마 전에 머리 탈색을 했습니다. 백발이 될 용기를 냈기 때문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은 노랗게 염색한 줄 알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몇 달 지나면 진짜 백발이 될 거니까요. 이 사소한 결심도 꽤 복잡하고 어려웠습니다.

넝쿨 식물이 감아 올라갈 길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처럼, 뭐든 바꾸는 일은 힘이 듭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또 금세 적응이 되고 익숙해집니다. 이제 완전히 은발이 되는 그때가 기다려집니다. 나중에 길에서 만나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

괜찮은 척, 아닌 척, 착한 척, 예수 잘 믿는 척하지 말고 진짜로 괜찮고, 진짜로 아니고, 진짜로 착하고, 진짜로 예수 잘 믿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네
연약함 그대로 사랑하시네
나의 모든 발걸음 주가 아시나니
날인도 하소서(CCM 내 모습 이대로 가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