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교, 미시오 데이(Missio Dei)

해당 문화의 세계관 내에 변화가 발생할 때 지역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나무의 뿌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그 나무의 열매에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한 문화의 세계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그 전체 문화와 그 문화에 준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예수께서는 대중들에게 중요한 문제점들에 대해 납득시키고자 하셨을 때에 세계관적 차원을 지향하셨다. 누군가 물었다. “이웃은 누구입니까?”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 예화를 드시고 “누가 진정한 이웃이냐?”고 물으셨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세계관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의 기본적 가치를 바꾸도록 하셨다.

예수께서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태복음 5:43, 44, 39)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깊은 차원의 세계관에 변화를 위한 씨앗이 뿌려졌다.

그러나 한 문화의 세계관에 깊은 차원에서 변화가 발생하게 되면, 그러한 변화로 인해 해당 문화의 균형이 깨지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다른 부분들에 어려움을 유발한다.

예로서, 복음의 선포가 해당 사회 세계관의 가장 깊은 차원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복음의 선포가 해당 사회에 혼란적인 결과들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남북통일 후에 북한 주민들의 세계관에 일어나게 될 혼란을 어떻게 대치할 것인가?
예수께 어느 날 밤에 유대인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찾아왔다. 예수님은 그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3)고 말씀하시자 니고데모는 그가 가진 지식으로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거듭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5)고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통일 후에 발생할 북한 주민들의 세계관 변화에 따른 혼란에 대처하기 위해서 성령의 역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907년대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일어났던 평양 대부흥 운동과 원산, 신의주 대부흥 운동이 장차 북한 지역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복음 전도사역으로 인하여 다시 일어날 때 북한 주민들의 세계관이 자연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선교의 정의
‘하나님의 선교’ 저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선교의 정의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따라, 하나님 자신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피조물의 구속을 위해.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로부터, 그리고 그 선교에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또한 선교의 어원을 ‘보내다’라는 의미로만 사용하는 데에 의문을 제시하고, 대신 정확한 목표와 계획된 행동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장기적 목적 혹은 목표라고 기술한다.

또한 그는 ‘선교의 주제’를 성경의 핵심으로 보며, ‘선교의 성경적 기초’라는 관점에서가 아니고 ‘성경의 선교적 기초’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며, ‘선교의 성서 해석학’을 통하여 해석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이며 신자들은 자신들을 그 이야기와 연결하여 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계속하여 “전체 성경의 자체가 하나님의 선교적 형상이며, 성경을 구성하고 있는 글들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궁극적 선교의 산물이며 증거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를 위해 하나님 나라에 관여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The Story of God’s Mission)이다. 성경은 이렇게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하나님의 드라마다.

그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 이스라엘과 열방, 생명과 우주와 만물을 포괄하면서, 그리고 그 선교의 중심, 초점, 절정, 완성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두고서, 우주적으로 그 목적을 이루는 선교를 하고 계신다”고 말하고 있다.

‘선교신학’ 저자인 크레이크 오토는 “선교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으며,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성품 자체가 선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선교사 하나님’이시며, 선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내시는 활동에 뿌리내리고 있다” 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교’ 용어의 의미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의미하며, 성부가 성자를 보내시고, 그분들이 성령을 보내신다는 의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인간의 선교는 이러한 신적 보내심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것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교, 미시오 데이(Missio Dei)
하나님은 태초에 세계를 창조하시면서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함으로써 그에게 문화 창조의 능력을 부여하고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을 주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와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

아담과 하와는 선하게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따로 구별되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을 선택했으며 이로 인해 인류는 저주를 받아 사형선고를 당했다.

하나님의 선교는 창조의 타락을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것과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이 죄를 사함받고 구원을 받는 것으로 이중적 목적을 갖고 있다.

이것은 마태복음 28:18~20(‘제자를 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에서 예수님에 의해서 강조되었다.

하나님의 선교는 에덴동산에서 남자와 여자가 가졌던 완벽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들의 상황과 환경은 흠이 없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는 망쳐지지 않았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러한 완벽한 상태로 되돌리기를 원하신다.

인간은 다시 한번 질병, 고통, 고난이 없이 완벽한 몸, 마음, 정신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선택에 의해 얻어지게 될 것이며,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경건’은 선교의 중요한 일부분이 된다. 미시오 데이는 인간들에게 타락 이전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가졌던 선한 관계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구원을 의미하며 이렇게 흠이 많은 세상에서 ‘경건’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