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사역과 영혼구원의 열매

2004년 남섬의 오타고 지역에 있는 한 목장 동굴에서 슈렉(Shrek)이라는 별명이 붙게 될 양 한 마리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양은 6년 동안이나 주인의 눈을 피해 농장 안에 있는 동굴에 숨어 살았습니다. 발견되었을 때는 양털의 무게가 27 kg이나 되었습니다. 이 정도의 양털은 20명의 옷을 만들 수 있는 분량입니다. 슈렉은 발견되고 나서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뉴질랜드 수상인 헬렌 클락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뉴질랜드에는 양이 약 4천만 마리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 한 마리 때문에 온 나라, 온 세계가 기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 양의 주인 “존 페리엄”은 슈렉 말고도 많은 수의 양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뻤던 것은 6년 동안이나 잃어버렸었던 양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4-7) 한 영혼이 회개하고 구원받으면 하늘에서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홈리스봉사 현장에서도 한 영혼이 구원받는 열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리 예배로 드리고 있는 홈리스봉사는 사역의 한계가 있습니다. 먼저는 한인들이 봉사의 중심이 되어있기 때문에 언어의 한계가 있습니다. 봉사자들 중에는 한 영혼을 붙잡고 영어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결신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더구나 봉사자 중에는 전도 대상자들이 섞여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선교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한 구성이지만, 궁극적으로 영적인 도움이 필요한 홈리스형제자매들을 섬기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는 멀리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오직 주님 주신 마음에 순종함으로 홈리스봉사에 임했습니다. 해를 거듭하자 이곳을 교회로 생각하고 찾아오는 홈리스 형제자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생명의 말씀에 집중하게 되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을 받아 가기만 하던 홈리스 형제자매들 중에 봉사에 참여하는 형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홈리스 에블릿 형제는 지난해부터 자원함으로 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오래 전, 인도계인 투바시 형제는 약에 취해 살아가던 삶을 청산하고 새사람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일을 구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몸부림을 치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삶을 간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이 영적 육적으로 다시 회복하고, 온전히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데까지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다시 거리로 돌아가기를 반복했습니다. 제대로 된 재활 시설과 프로그램이 없는 사역의 한계였습니다.

그중에 오직 주님의 은혜로 사회에 온전히 복귀한 대표적인 구원의 열매를 소개합니다. 7년 전의 일로 기억합니다. 홈리스 거리 예배에서 설교가 끝났을 때 한 홈리스 형제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덩치가 큰 전형적인 퍼시픽 아일랜더였습니다. 그는 제 손을 잡은 채로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피지에서 감리교회 목사님이셨고, 믿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오클랜드에서는 여행자 숙박시설인 백패커 매니저 일을 하면서 나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재미로 하던 도박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도박중독이 되었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홈리스가 되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인생 스토리를 들으면서 그의 외로움이 절절이 느껴졌습니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얼마나 이야기가 하고 싶었으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소개하려는 톰(Tom) 형제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덩치가 크고 인심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형제는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 말끔한 모습으로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핸더슨 지역에 있는 정부 주택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직장인 Campervan Parking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삶의 변화와 회복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하하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 무렵에 하나님께서는 형제에게 신학교를 갈 마음을 주셨습니다. 생활이 변하면서 자신도 선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어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핸더슨에 있는 신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부터 기적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형제가 신학교를 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신분 문제였습니다. 사실 그는 뉴질랜드에서 36년 동안이나 불법체류자로 살아왔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신분을 갖지 못하고, 은행 구좌조차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일을 해도 올바른 페이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때까지도 시간당 $11의 터무니없는 임금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때 핸더슨에 있는 신학교에 가기 위해 기도하던 중에 비자 신청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곧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뉴질랜드 정부는 코로나 기간 노동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특별 영주권을 주는 제도를 한시적으로 시행했습니다. 그동안 비자가 없이 뉴질랜드 국내에 있던 사람들에게 소정의 절차를 거쳐서 영주권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톰 형제도 이 정책을 통해서 기적적으로 영주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최종 영주권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수수료를 내야만 했습니다. 톰 형제는 $1,000 가까이 되는 수수료를 낼 수 있는 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크레딧 카드로만 납부하도록 되어 있는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형제는 크레딧 카드는커녕 은행 구좌조차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납부 기한을 며칠 남겨놓고, 제게 전화가 왔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주님께서는 무조건 도우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주일에 교회에서 만나서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너무도 절박한 심정이었고, 영주권 수수료를 대납해 주면 매주 얼마씩을 갚아 나가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제시했습니다. 저는 그것과 상관없이 주님 주신 마음에 순종함으로 수수료를 대납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산만한 덩치의 형제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영주권을 받은 형제는 여권을 만들 수 있었고, 36년 만에 고향 피지를 방문했습니다. 생존해 있는 유일한 핏줄인 누나를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시큐리티 가드(Security Guard) 과정을 공부했고, 드디어 시티 퀸스트리트(Queen St)에 있는 루이뷔통(Louis Vuitton) 명품 숍의 시큐리티 가드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납해 준 영주권 수수료를 모두 갚는 날, 한식당에서 식사 대접까지 받았습니다. 감격적이었습니다. 홈리스생활을 청산하고, 온전히 사회로 복귀하는 재활의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톰 형제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 홈리스봉사를 계속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형제는 틈틈이 홈리스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홈리스들이 모여 있는 시티 도서관에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신학을 하고, 목사로서 홈리스사역을 이어받게 되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홈리스봉사는 단순히 빵 한 조각을 나누어 주는 봉사가 아니라 죽었던 생명을 살리는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 때문에, 재활 시설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순종함으로 감당하는 홈리스사역을 귀하게 받으셨고, 선하게 사용하셨습니다.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를 베푸셨습니다. 이 구원의 역사를 매일 체험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