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질문이 있는데 너 왜 예수를 믿냐?”

선교사의 여정을 2010년에 시작했을 때는 굉장한 야망이 있었다. 나는 나이도 어렸고, 패기와 하나님을 향한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나를 막을 수 있었던 건 없었다. 내 나이나 내 피부색이나 내가 자라온 환경들도 나를 막지 못했다.

내가 갖고 있었던 마음은 “세상아, 덤벼라! 나의 하나님 아버지가 내 빽(back)이다!”였다. 나의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다면 나는 어디든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학을 휴학하고, 은행 계좌에 단 $200불을 가지고 선교사 훈련과 성경연구 훈련을 받기 위하여 2009년 12월 31일에 호주 YWAM Pert로 떠났다.

2011년에는 YWAM 본부인 하와이 코나 열방대학 DTS (Disciple Training School) 제자 훈련 학교에서 선교사로 섬기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에 예배를 드리는 중에 내가 주님 앞에서 춤추고, 뛰고, 울던 기억이 났다. 얼마나 땀을 많이 흘렸는지 옆 사람들이 내 튀기는 땀을 피해 내 주위에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나를 향한 사랑을 듬뿍 누리고 있었을 때, 내 마음에 하나님께서 북한에 대해 생각나게 하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처럼 춤을 추며, 소리를 지르며,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기도 가운데 감동을 주셨다.

그 순간 성령님께서 나의 예배의 잘못된 태도에 대하여 깨닫게 해주셨고, 나는 즉시 주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 동안 예배 가운데 찬양이 마음에 안 들거나, 악기 연주자가 박자를 틀리거나, 내가 안 좋은 일이 있었으면 하나님 앞에 찬양으로 나가기가 어려웠었다. 내가 하나님을 몸과 마음을 다해 찬양할 수 있는 이 자유를 업신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 마음 가운데 세미한 음성이 있었다. “넌 북한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춤출 수 있니?” 마음 가운데 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할 때에는 분별력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게 일컬어지는 것을 싫어하심을 알기에, 이 세미한 감동이 무슨 뜻인지를 곰곰이 묵상하며 주님께 묻는 시간을 가졌다.

그 무렵 나는 제자훈련(DTS)을 받기 위해 지원한 70여 명의 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준비 하고 있었는데 이번 DTS의 훈련 선교지 중에 북한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 소식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예배 가운데 북한에 대한 감동을 주셨을 때 나는 나의 생각인 줄 알았는데 그 감동이 성령으로부터 온 것임을 확인하게 되어 나 자신도 너무 놀랐다.

북한 말고도 다른 7개국을 우리 선교사 팀들은 기도하며 각 나라별 선교 팀 리더를 결정하여야 했었다. 마침내 팀 선교사들의 기도와 선교사들의 미팅 가운데서 나를 북한 팀의 리더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 뉴질랜드, 미국, 중국 등으로부터 온 학생 15명들을 이끌고 북한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함께 북한 선교팀을 이끄는 협력 리더와 함께 준비하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북한 선교팀과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중보기도를 드렸다. 나는 진지했고 마음을 다하여 순종함으로 나아가기 원했다. 하나님과 나의 팀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다른 선배들도 있었는데 내가 이 팀의 리터가 된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순종하고 싶었고, 충성하고 싶었다. 북한 선교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었다. 이렇게 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대하며 준비했다.

북한을 갔다 온 선교사들이 우리를 위해 오리엔테이션도 해주었다. 규칙들이 엄격했다. 우리의 역할은 우리를 챙겨주고 인도해줄 북한 관광안내자들과 교제를 하는 것이었다. 복음을 전하면 안 되고, 기독교에 대한 얘기도 하면 안 되고, 그저 질문에 답만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미 북한을 다녀온 선배 선교사들이 너무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이 크니까 우리에게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순종으로 나아가고, 계속하여 복음의 씨들을 뿌린다면 하나님께서 키워 주실 것을 믿으라고 하셨다.

우리 팀은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회의하는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들과 전략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팀은 뭔가 특별할 거라고 예상했다. 무언가 비밀스런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질 거라 생각했다.

기도 후에 나누기 시작했다. 어느 한 학생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감동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조금 웃었다.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눠주세요”했는데 또 다른 학생도 “사랑”이라고 단어를 기도 가운데 받았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내 노트에 “사랑”을 쓰고 동그라미를 쳤다.

또 다른 학생은 “예배”라고 말했다. 나는 “좋습니다, 예배의 마음을 품고 들어가야죠”라고 반응했다. 또 다른 학생이 말했다, “저도 예배라는 마음을 받았어요, 근데 마음이 아니라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요” 나는 또 반응했다, “아, 그러면 우리가 숨 쉴 때 약간 찬양 소리와 함께 내뱉으면서요? 아니면 자기 전에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찬양곡의 후렴 정도만 할 수 있겠죠, 너무 길게 전부는 안 되고요”

그러다가 또 다른 학생이 말했다, “전 평양 길거리에서 찬양하는 저희의 모습을 봤어요”. 그 순간 나는 “지금까지 여러분의 기도를 나누어주어(sharing) 감사합니다” 말하고는 노트를 닫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의 열정을 이해해요, 진심으로. 저에게도 있어요. 하지만 지혜도 필요해요. 우리 모두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할 거 아니에요? 저는 여러분들이 북한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가족들에게 전하면서 주님을 위해 충성을 다한 영웅이었다고 전하고 싶지 않아요.”
정말 그런 일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마지막 기도 모임이 끝났다.

우리는 북한으로 들어가는 비자를 받기 위해 중국에서 기다렸다. 북한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이 예상 밖이었다. 그 동안 나는 선교사로서 20여 개 나라를 넘게 다녀왔기에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 놀라거나 문화 충격을 받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정말 달랐다.

어디를 가든 회색 빛이며, 어둡고, 춥고, 적막했다. 우리가 양악도 호텔에 도착했을 때 우리 팀의 관광 안내자들을 소개받았다. 하나의 관광 그룹에는 20명 정도가 있었다. 10명 정도가 우리 팀이었다, 원래 5명이 더 함께 왔어야 했는데 그들은 한국 여권이 있어서 못 들어오게 되었다.

다른 10명은 여러 나라에서 온 평범한 관광객들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는 관광 안내자들이랑 친해지기 힘들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인원들 사이에서 친밀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을까? 어떻게 예수님의 모습을 5분의 대화에서 보여줄 수 있을까?”라고 내 안에 의문이 있었지만 결국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북한의 관광안내자들은 5명이 팀을 이루었다. 버스 운전기사 1명, 사진작가 1명, 영국 발음 무지 잘하는 여성 통역사 1명, 키가 무지 큰 관광회사 대표 1명, 그리고 매우 밝고, 웃음이 많은 안내자가 있었는데 알고 봤더니 비밀경찰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신분보호를 위해서 통역사를 이모 씨, 키 큰 관광회사 대표를 김모 씨, 비밀경찰을 박모 씨로 부르겠다.

우리의 일정 계획표는 그들에 의하여 짜여 있었고, 거의 관광 안내자들과의 대화는 버스 안에서와 이동하러 걷고 있을 때 말고는 거의 없었다. 밥 먹을 때도 그들은 그들끼리 먹고, 대체적으로 공공장소에서는 우리와는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어느 날 버스를 타자마자 상황이 바뀌었다. 그들이 먼저 우리 옆에 앉아 대화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나는 우리 팀들의 눈들이 반짝이는 걸 보았다.

분위기상으로 볼 때 그들과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지 고민하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이 먼저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온 것이다.

박모 씨가 내 옆에 앉았다. 내가 우리 팀에서는 한국어를 제일 잘해서 나에게 오기가 편했던 것 같다. 우리 팀에 있던 한국인들은 미국에서 온 2세대, 3세대들이라 한국어가 어려웠다. 박모 씨는 웃음이 많았고, 언제나 밝았다. 나 역시 그와 대화하기가 편했다.

첫날부터 내가 물어봤다. “그냥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랬더니 너무 좋아했다. “당연하지, 너는 내 동생이고, 나는 니 형이라요” 이 대화를 시작으로 우리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계절이 겨울이어서 버스를 내리면 너무 추워서 떨었다. 그런데 내가 손이 시려하는 것을 눈치챈 형이 안쓰러웠는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친형처럼 자기의 코트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완전 감동적인 한국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그리고 우리 팀과 다른 10명의 일반 관광객들과는 차이점이 있었다. 우리 팀은 관광 안내 팀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맨 앞에 앉아 듣고 반응하며, 질문도 하며 노력했는데 다른 관광객들은 버스 맨 뒤쪽에 앉아 이모 씨가 창밖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설명을 할 때도 듣지 않는 등 우리와는 다른 태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는 이모 씨가 우리 10명을 관광시켜주고, 일반 팀 10명은 그냥 힘없이 따라 오는 모습이었다. 나중에는 북한 관광 안내 팀 쪽에서 우리 팀들에 대하여 궁금해하기 시작하였다.

다른 관광객들과 뭔가 다르다는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 팀들은 왜 다른 팀들과 다르지? 라고 우리 팀을 향해 궁금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부터 대화의 깊이가 달라졌다.

“동생, 질문이 있는데 너 왜 예수를 믿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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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양
2010년 호주 YWAM(Youth With A Mission)에서 훈련 받고, YWAM 하와이 코나에서 2017년까지 예수 제자훈련학교의 간사와 학교 책임자로 섬겼다. 2018년 후반 뉴질랜드에 돌아와 빅토리처치의 청소년부 담당자로 있고, M28의 책임 간사로 세상 끝까지 전하는 세대가 일어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