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삼중 협주곡(Triple Concerto)

협주곡(協奏曲 Concerto)이란 독주 악기와 관현악이 합주하면서 독주 악기의 기교가 충분히 발휘되도록 작곡된 소나타 형식의 악곡으로 대부분 3악장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협주곡 즉 콘체르토(Concerto)의 어원을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투쟁하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Concerto로 시작해서 ‘협력하다’라는 이탈리아어로 바뀌어 음악 용어가 되었으니 협주곡이란 장르는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투쟁하며 협력하는’ 양면성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모두 7곡의 협주곡을 남겼습니다. 5곡의 피아노 협주곡과 한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오늘 우리가 들을 삼중 협주곡입니다. 소수정예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7곡 모두가 음악사에 찬란히 빛나는 걸작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황제’라는 이름이 결코 어색하지 않은 피아노 협주곡 5번, 그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면서 모든 바이올린 협주곡의 ‘왕자’라 불리는 D 장조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협주곡의 이단자(outcast)라고 불리는 삼중 협주곡입니다.

왜 삼중 협주곡(Triple Concerto)인가?
보통의 협주곡은 하나의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합주하지만 이 곡에는 독주 악기가 세 개나 등장하기에 흔히 삼중 협주곡이라 부릅니다. 정식 명칭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협주곡(Concerto for Piano, Violin, Cello)이고 때로는 피아노 3중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Concerto for Piano Trio and Orchestra)이라고도 부릅니다.

베토벤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 어느 위대한 작곡가가 시도하지 않았던 이러한 악기 구성은 독특하고 파격적입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세 개의 독주 악기, 즉 피아노 삼중주를 관현악과 조합시킨다는 발상은 흥미롭지만 작곡 기법상과 실제 연주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협주곡에서이건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는 서로 협력하면서도 때로는 그 주고받음이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도 합니다. 독주 악기가 하나가 아니라 세 개인 삼중 협주곡에서는 음악 역사상 처음으로 세 명의 독주자가 등장합니다.

연주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작곡자의 의도가 제대로 표현되기 위해서는 세 명의 뛰어난 독주자가 필요하고 또 세 명의 호흡이 맞아야 합니다. 개성이 다른 세 악기를 다루는 누군가가 돌출할 때 앙상블은 깨어지게 마련입니다. 또한 오케스트라는 이 세 명의 연주를 아울러서 잘 받쳐주며 조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참으로 독특한 발상이지만 넘어야 할 난관이 많은 곡입니다.

작곡의 배경
베토벤이 이처럼 특이한 형식의 협주곡을 작곡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베토벤의 전기 작가 안톤 쉰들러는 루돌프 대공(Rudolf Archduke 1788-1831)을 위해 작곡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신분과 나이를 뛰어넘어 베토벤을 믿고 존경했던 대공을 베토벤도 좋아해서 피아노도 가르치고 또 대공(Archduke)’이란 별칭이 붙은 피아노 3중주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그에게 헌정했으니 다분히 그럴 만합니다.

대공이 십 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뛰어난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기에 피아노 파트를 비교적 쉽게 만들고 보다 성숙한 두 독주자가 뒷받침을 하도록 작곡하는 것이 베토벤의 의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초연 때에도 그 뒤에도 대공이 이 곡을 연주한 기록은 없기에 이런 주장의 진위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이 곡을 작곡했을 때의 작곡자 베토벤의 삶의 위치를 조명해 보고 싶습니다. 음악학자들에 의하면 이 곡의 작곡 시기는 1803년부터 1804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베토벤이 귓병이 악화하여 삶을 비관하고 동생들에게 하일리겐슈타트 유서(Heiligenstädter Testament)를 남겼던 때가 1802년입니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울부짖던 베토벤은 과감히 죽음의 유혹을 뿌리치고 빈으로 돌아와 최고의 역작들을 써냅니다.

완전히 들리지 않는 육신의 귀대신 훨씬 차원 높은 마음과 영(靈)의 귀에 의지하여 소위 ‘걸작의 숲’이라 불리는 시대로 거인의 발걸음이 들어간 것입니다.

죽음으로부터 새 삶으로 돌아온 그는 당연히 새로운 양식의 음악을 추구했고 그때 나온 걸작의 하나가 바로 이 삼중협주곡입니다. ‘고난을 헤치고 환희로( Durch Leiden zu Freude)’라는 악성의 삶의 좌우명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곡의 구성: 연주 시간이 약 45분에 달하는 3악장의 대곡
제1악장 Allegro: 온화하면서도 차분하게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만으로 제1 주제가 연주된 후 제2 주제가 제2 바이올린에 의해 연주된다. 독주 첼로가 들어와 이를 반복하면 뒤이어 피아노가 이 주제를 연주한다. 마지막엔 오케스트라가 힘차게 제1주제를 연주한 후 이에 화답하듯 독주 악기들이 화려하게 노래한 뒤 코다로 끝난다.

제2악장 Largo: 현의 짧은 도입부에 이어 독주 첼로가 아름답고 서정적인 주제를 연주한다. 피아노가 섬세한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며 독주 바이올린과 첼로가 주제를 변주한다. 첼로 독주의 명상적인 선율이 맑게 가슴에 남는다.

제3악장 Rondo Alla Polacca: 가벼운 폴로네이즈 풍의 주제가 독주 첼로에 의해 연주된다. 독주 악기에 의해 이 주제가 반복되고 관현악에 의한 힘찬 주제가 세 번 나타난다. 마지막에 독주 악기와 관현악과의 화려한 대화가 되풀이되며 장대하게 막을 내린다.

최고의 연주
이 음악을 더욱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이 카라얀(지휘)의 베를린 관현악단과 로스트로포비치(첼로),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 리흐테르(피아노)에 의한 연주입니다. 1969년도 녹음 이후 아직까지 이 곡의 최고 연주의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는 이 연주를 오늘 여러분과 같이 듣겠습니다.

각각 자기 분야의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분들의 모임이었지만 각각 곡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또 개성이 강하였기에 이 음반을 녹음하려 모였을 때 처음엔 결코 협조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협주곡(Concerto)을 연주하러 모인 분들이 협조적이기보다 ‘투쟁적’이었으니 이 연주가 얼마나 어렵게 이루어졌을지 상상이 갑니다.

하지만 막상 녹음이 시작되니 모두 자기를 내려놓고 환상의 결합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전무후무한 화려한 진용에 어울리는 완벽한 조화와 치열한 독주와 긴장감으로 그야말로 이 곡의 최고의 연주가 되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성공적인 녹음이 이루어졌지만 나중에 음반 표지 사진 찍을 때, 사진사가 웃게 하려고 엄청나게 힘들었다는 후일담이 있습니다. 아래에 음반 표지 사진이 있습니다.

세 분의 독주자는 웃고 있지만 지휘자 카라얀의 모습은 자못 심각합니다. 세 거장을 달래가며 연주를 마치다 보니 아무래도 얼굴이 굳어지지 않았을까요? 속사정이 어쨌든 우리는 이분들 덕분에 걸작의 최고 연주를 들을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나님 말씀: 음악 감상 뒤 같이 본 말씀은 전도서 4장 9절에서 12절입니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세 사람의 뛰어난 독주자가 마음을 합하기 쉽지 않았지만 아마도 위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화합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우리도 살면서 세 겹줄이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붙잡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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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