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세대가 일어나길

선교사로서의 여정은 2010년 호주 YWAM(Youth With A Mission)에서 훈련을 받고, YWAM 하와이 코나에서 사역을 섬기면서 시작됐다.

선교사 훈련센터에서 우리는 열방에 선교사들로 나가기 위하여 다양한 나라와 연령층으로부터 온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신앙들은 다른 교단, 교회, 다른 예배의 표현과 하나님 안에서의 다른 체험 등 다 달랐다. 이곳에서 나는 하나님 나라의 한 모습을 보았고, 나의 20대의 삶을 보냈다.

그때부터 2017년까지 나는 선교사로서 예수 제자훈련학교의 간사와 학교 책임자로 섬겨왔다. 매년 지원하는 수백 명의 학생을 훈련과 가르치는 가운데, 그들과 함께 웃고, 울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주님의 은혜 안에 놀라운 간증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끊이지 않는 갈등과 힘든 싸움 가운데 나 개인적으로 직면해야만 했던 매우 힘들고 어려운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대접을 받기 위하여 온 고객과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자기들이 불편하면 참여하지 않으려 하고, 자기들이 마음에 드는 일이나 장소에만 선택하거나 참석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한 예로써, 예배와 기도의 시간에 반응하는 그들의 언어와 단어들은 매우 은혜로운 표현이었지만,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리더들 앞에서는 비판적이었으며, 다른 선교사들이나 초빙된 강사들의 식사를 준비하거나 요리할 때는 사랑으로 열심히 하지만, 노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갈 때는 피곤해했다.

내가 지원서를 받았을 때부터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한 학생이 있었는데, 그 지원서에는 선교사가 어떠한 모습으로 생활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잘 작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학생이 도착하여 시작된 6개월간의 제자훈련 기간 동안 보여준 그 학생의 생활은 지원서와는 정반대였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주님의 주되심과 경외함이 없는 삶이었다. 그 학생은 훈련학교에 훈련 비용을 지불했기에 맛있는 음식, 편안한 잠자리, 자기 마음에 드는 방 친구와 자기 마음에 드는 선교여행 계획을 세울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학교의 규칙을 조금 어기거나 위반해도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실제로 위반한 것이 발견되어 주의와 경고를 하였지만, 그러한 위반이 계속되자 마침내 그 학생은 훈련 도중 퇴학 처리가 되었다. 그 학생이 떠나기 전 “학교의 규칙을 지키고 따르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웠냐”라고 한 질문에 대한 그 학생의 대답이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 학생은 매우 존경받는 교회의 장로의 자녀로서 인정받고 잘 사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은 그 학생에게 명문 대학에 가도록 강요를 했고, 아들이 대학에 합격만 한다면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심지어 여자아이에게 임신을 시켜도 괜찮다고 하였던 것이었다.

교회의 장로인 부모들이 보여준 하나님을 경외하기보다는 사람들의 눈길을 더 의식하는 신앙이었다. 그렇기에 그 학생이 자라며 배운 것은 사람들 앞에서 좋게 보여지는 신앙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마음의 숨겨진 것이나 성품은 신앙과 상관이 없고, 그러한 가치관을 통해 그 학생으로 하여금 훈련학교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을 쉽게 만들도록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질문을 갖게 되었다.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러한 궁금증은 그 학생과 비슷한 문제점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게 될수록 답답함만 더하게 됐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 “교회는 필요하지만, 효과적으로 자기의 역할을 못 하고 있다”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마치, 한국에서 학생들이 학교에 가면 자고, 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배우고 있는 것처럼, 학교처럼 교회를, 선교단체의 제자훈련 학교들을 학원처럼 보게 됐다.

그러나, 2018년 후반, 뉴질랜드에 돌아와 한인교회의 청소년부 담당자로 섬기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알게 됐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명령을 완수하는 중요성과 전략적 사명이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에 있다는 것과 그래서 원수들이 얼마나 집중적으로 교회를 공격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며,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을 하나님보다 더 의식하게 하고, 세상의 것들로 염려시켜 유혹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또한 나의 의와 판단, 그리고 무정한 마음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 학생의 일로 시작되었던 그 답답함은 부끄러움과 회개로 바뀌었다.

나의 청소년부 학생이 관계 문제로 아픔과 눈물로 나에게 와 질문한다. “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상처를 주나요?” 나는 그때 가장 큰 아픔 속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도 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며, 너도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은혜를 베풀라고 말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폴 데이빗 트립 목사는 “우리가 아무리 성숙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졸업하지 못한다(No matter how much we mature we never graduate from Grace).”라고 말했다. 세상만큼이나 교회 안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가!

실망과 판단으로부터 치유와 회개, 그리고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입맛에 안 맞으면,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불평불만 하는 고객이 아닌, 그리스도의 신부 될 다음 세대를 일으키는 소망.

더 이상 기생충처럼 조용히 먹기 만하고 자기의 유익만 챙기는 이방인이 아닌 내 몸처럼 내 이웃과 교회를 사랑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일으키는 소망.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나지 않고, 무엇보다 그 은혜를 의지하는 다음 세대를 보는 소망. 교회로부터 나오는 단순한 복음이 학교, 직장, 가정, 그리고 세상 끝까지 전해주는 세대가 일어나는 것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