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넷째 주 찬송/1월 넷째 주 찬송

1월 넷째 주 찬송/548장 날 구속하신

과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이십여 년 전쯤이었을 겁니다. 모임에서 회중들이 나를 향해 손을 들어 노래를 불러 환영해 주었을 때 벅찬 감정에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엔 부를 때마다 의문이 생기곤 합니다. 바로 처음 여덟 마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에서 “사랑받기 위해” 대목에서이지요. 이 축복송의 답가로 불리는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에서도 마찬가지. 우리 출생의 목적이 정녕 사랑을 받기 위함일까요?

성 프란시스는 저 유명한 기도문에서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해달라고 간구했는데… 장로교 요리문답 1문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칼뱅(John Calvin, 1509-1564)은 모든 창작찬송은 비성경적이고 비 교리적일까 보아 금하고, 시편과 송가(Canticle, 성경의 노래)만으로 시편가(Psalter)를 창안하여 그것만 부르게 했습니다. 교회에서 부르는 모든 노래는 어느 작은 단어 한 자라도 세밀하게 따져 성경이란 거울에 비추어보아야 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로 시작하는 역시 성 프란시스의 ‘평화의 기도’(김영자 곡, 박영근 편곡)도 애창되고 있지만 이 곡의 클라이맥스 부분에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서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의 “때문이니”란 대목도 그렇습니다.

과연 자기를 온전히 불태워 주면 영생을 얻을까요? 원문은 이렇습니다. “자기를 주면 받을 수 있고, 자기를 잊으면 찾을 수 있고, 용서하면 용서 받을 수 있고, 목숨을 잃으면 영생으로 부활하겠사오니…”라고.

리듬에 글자를 맞추다보면 작자의 의도와는 달리 자칫 그릇된 교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혁자 칼뱅이 마로(Clement Marot)나 베제(Theodore de Beze)같은 시인과 머리를 맞대고 시편가를 만들었듯이 우리도 시인과 음악가, 그리고 신학자가 합력하여 좋은 가사를 만들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합니다.

찬송 시 ‘날 구속하신’은 칼뱅(John Calvin, 1509-1564)이 슈트라스부르크에 추방되었을 당시 그 곳에 사는 루터 교 교인들이 부르는 힘찬 찬송에 감명 받아 지었다는 단 한편의 라틴어 시입니다.

1541년, 보름스(Worms)에서 황실 종교회의가 열렸을 때,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Epincion Christo Cantatum)란 제목으로 이 시를 제출하였다고 합니다. 때가 때였던 만큼 이 찬송에 교황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개혁정신이 살아있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니 루터(Martin Luther, 1483-1545)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585장)와 더불어 종교개혁주일 찬송으로 선곡한다면 더욱 뜻깊겠지요.

곡명 TOULON은 제네바 시편가(Genevan Psalter, 1551)에서 시편 124편에 붙인 멜로디입니다. 우리찬송가에 제네바 시편가의 곡은 이 곡조와 함께 ‘만 복의 근원 하나님’(1장) 등 두 편이 실려 있지만 제네바 운율시편은 단 한 편도 없어 아쉽습니다.

1월 넷째 주 찬송/15장(통5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회중찬송은 사회자 아닌 오르가니스트가 인도해야
우리나라 대부분의 교회에서 예배인도자는 회중찬송을 부를 때 마이크를 대고 큰 목소리로 인도하려합니다. 더욱이 목소리가 좋을수록 자신의 음성을 귀로 확인하려 하지요.

요즈음, 목소리 좋은 성악가가 마이크를 대고 인도하는 교회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공동체로 드리는 것이기에 회중찬송은 모인 무리들이 함께 부르는 회중들의 아름다운 합창이어야지 인도자의 독창이어선 안 됩니다. 목소리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마이크를 통한 예배인도자의 금속성 소리는 공동체의 연합한 소리를 망가트립니다.

인도자는 마이크에서 멀리 떨어져 속삭이듯 노래해야 하며, 간혹 인도자의 소리가 회중을 압도할 경우 음향조정실에서 앰프의 볼륨을 낮추도록 교육해야 할 것입니다. 회중들이 자신들이 부르는 찬송소리가 교회 주위 사람들의 소리와 어울릴 때 ‘우리의식’(공동체)을 가지게 되고, 아울러 교회 천정(dome)과 공간에서 울리는 잔향을 들으면서 곧바로 하늘 위로 상달되는 분위기에 젖게 됩니다.

그러기에 공중예배에서 찬송인도자는 강대 위의 사회자가 아니고 철두철미 오르가니스트이기에 회중들의 속도가 잘 맞지 않을 때는 찬양대원들이 도우면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느낄 수 있는 전통적인 찬송가창법(唱法) 중 하나는 전주의 종지(終止)음과 각 절의 종지음 길이에 상관없이 늘임표를 붙이는 것입니다. 오르간과 함께 마지막 음을 길게 늘인 다음, 1박자 정도 여유 있게 큰 숨을 쉬고 난 뒤, 다음 절에선 제 속도대로 노래하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공중예배에서 경건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좋은 순간이지요.

대부분 그 분위기를 잘 몰라 여유 없이 부르므로 목회자와 함께 회중들의 훈련이 필요한 데 킹스 칼리지콰이어(Kings Collage choir)와 같은 외국성가대의 찬송가 음반이 도움 될 것입니다.

찬송 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감리교 창시자인 죤 웨슬리의 동생인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1707-1788)가 지었습니다. 작사자 이름 옆에 쓰인 1747은 이 찬송시를 처음 실은 그의 찬송집 출판 년도입니다.

‘예수님, 당신의 구원을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Jesus, Show us thy Salvation)란 제목으로 발표한 이 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찬송이 흔치 않았던 당시에는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고 합니다.

곡명 BEECHER는 작곡가 준델(John Zundel, 1815-1882)이 뉴욕 브룩클린에서 28년간 봉사한 교회의 비처(Henry Ward Beecher)목사의 이름입니다. 준델은 독일 태생으로 미국 뉴욕에서 활동한 작곡가이며 오르가니스트요 지휘자인데, 바로 웨슬리의 이 시에 직접 곡을 입혔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속성(요한일서 4;9)을 간결하게 요약한 음절식 사분음표(♩)중심의 행진곡 풍의 이 곡을 워킹 하며 부르노라면 ‘성화(聖化)의 경험을 통한 성도의 완성’이란 웨슬리 교리를 새삼 느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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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엽
연세대 성악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서울시합창단 단장 겸 상임지휘자. 1960년부터 전국을 무대로 광범위하게 교회음악 활동을 하면서 김명엽의 찬송교실1-5을 예솔에서 출판했다. 이번 25회 연재를 통해 교회력에 맞추어 미리 2주씩 찬송가 두 곡씩을 편성하였으니 찬송가를 묵상하거나 예배에서 알고 부르면 더 은혜로운 찬송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