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대공(大公)

베토벤이 태어난 해는 1770년입니다. 그가 태어난 뒤 얼마 안 되어 황제 요제프(Joseph) 2세가 농노제를 폐지하였고 곧이어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귀족의 경제적 기반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예전처럼 여유 있게 음악을 비롯한 예술을 즐기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역사의 변환기에 음악가로 살아야 했던 베토벤은 귀족의 후원을 기반으로 살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에 속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베토벤을 후원했던 많은 귀족이 있었다는 것은 베토벤이 얼마나 뛰어난 음악가였나를 증명해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귀족에게 예속되는 위치에 있지 않고 후원해주는 귀족과 거의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당시 귀족들의 권력이 앞 시대보다 약화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너희보다 못할 게 뭐가 있냐’는 베토벤의 강한 자의식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리히노프스키 공작(1758-1814)에게 남긴 편지
베토벤을 후원했던 귀족 중 리히노프스키 공작은 베토벤을 가족처럼 친구처럼 가장 아꼈던 사람입니다. 공작은 베토벤이 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12년 동안이나 자신의 집에서 살도록 해주었을 뿐 아니라 생활비도 대주었습니다.

1806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빈을 점령했을 때 공작은 점령군을 위한 파티와 연주회를 준비하고 베토벤에게 연주를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연주 시간을 얼마 남겨놓고 다음과 같은 편지 한 통을 남겨놓고 어두운 빗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당신이 공작일 수 있는 것은 가문과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의 힘으로 이뤄졌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미래에도 수많은 공작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오직 나 한 명뿐입니다.”

참 대단한 기백의 베토벤입니다. 그런 그도 루돌프 대공만은 수많은 대공 중의 하나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 18살이나 어린 대공이었지만 그를 진정으로 좋아했기에 많은 음악을 헌정해서 그의 이름은 지금도 음악사에 빛나고 있습니다.

음악사에 빛나는 대공, 루돌프((Rudolf Archduke 1788-1831)) 대공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7번 ‘대공(大公)’이 아니었으면 우리 대부분은 대공이라는 말조차도 몰랐을 겁니다. 이 유명한 곡이 있기에 우리는 대공이 황제의 아들이나 형제를 칭하는 높은 신분의 왕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공은 여럿 있었겠지만 음악사에 그 이름이 빛나는 대공은 루돌프 대공입니다. 그는 베토벤 시절의 황제였던 프란츠 2세의 막냇동생입니다.

1803년부터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존귀한 신분의 대공에게도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이 괴팍한 피아노 선생을 대공은 좋아하였고 평생토록 연금을 지급하며 후원했습니다.

진심으로 자기를 이해해주는 대공을 위해 베토벤은 많은 음악을 헌정했습니다. 그 곡들이 하나같이 베토벤의 음악적 생애를 빛내는 걸작들입니다.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그리고 종교음악 걸작으로 손꼽히는 ‘장엄 미사’가 모두 대공께 헌정한 걸작들입니다.

특히 우리가 오늘 들을 피아노 3중주 7번도 헌정했는데 이 곡에는 아예 ‘대공(Archduke)’이라는 별칭까지 붙어 있습니다. 신분과 나이를 뛰어넘어 음악가로서의 베토벤을 믿고 존경했던 루돌프 대공의 이름은 앞으로도 이 아름다운 피아노 3중주를 듣는 모든 사람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피아노 3중주 작품 97, 대공(大公)
현악 4중주와 더불어 대표적인 실내악 양식이 피아노 3중주입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로 구성된 이 세 악기의 조합을 좋아한 베토벤은 모두 7곡의 피아노 3중주를 작곡했습니다. 그가 최후로 남긴 대규모 피아노 3중주곡인 ‘대공’은 웅장하고 거장다우면서도 쾌활합니다. 이 곡을 쓸 무렵 베토벤은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청력이 악화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곡을 쓸 수 있었던 그에게 찬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곡이 웅장하다는 것은 악기 편성이나 소리가 웅장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관현악곡이 아닌 3개의 악기로 내는 소리의 규모가 웅장하면 얼마나 웅장하겠습니까? 이 웅장함은 보이지 않는 소리가 빚어내는 악성(樂聖)의 정신세계의 웅장함입니다.

원래 실내악 특히 피아노 3중주는 귀족의 살롱 같은 실내에서 연주하기 위한 오락적 성격이 짙은 장르였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곡을 들으려고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가는 솔로 피아노가 리드하는 1악장 첫 주제가 나오는 순간 허리를 곧추세우며 자세를 바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중하면서도 맑은 피아노의 울림이 지나가면 첼로와 바이올린이 노래하듯이 선율을 연주합니다.

바이올린이 주제를 청아하게 연주하고 피아노가 앞뒤로 넘나들며 다시 첼로가 나와 합세합니다. 이때쯤이면 이미 우리는 악성이 이끄는 음의 세계에 깊게 빠져들어 온몸이 귀가 되어 4악장으로 이루어진 전곡이 끝날 때까지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 실내악이면서도 실내악의 한계를 벗어난 이 곡의 특성 때문일 것입니다.

모두 4악장으로 되어있는 이 곡은 세 악기를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뛰어난 협주적인 색채를 보여줍니다. 전곡을 통하여 울려 나오는 피아노 소리는 이 3중주곡을 작곡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확고하게 이끌어갑니다. 풍부한 선율, 아름다운 화성, 웅대한 규모는 대공(大公)다운 품위를 갖추면서도 쾌활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특히 귀 기울이고 싶은 악장은 3악장입니다. 느리게 노래하듯 흘러가는 이 악장은 서정미 가득한 아름다운 선율이 우아한 감정을 끌어내지만 한편으로는 베토벤 후기의 음악적 특징인 종교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로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목이 메는듯한 첼로 소리가 가슴 속 아픔을 긁어내면서 왠지 우울하고 쓸쓸해지려 할 때 전형적인 론도(rondo)로 시작되는 4악장이 쾌활하고 밝게 얼굴을 내밀며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고 마지막엔 빠르고 화려한 피아노 연주로 끝납니다.

공식 초연이자 악성의 마지막 공식 연주
1814년 4월 11일에 빈의 호텔 ‘로마 황제’에서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았던 베토벤이 직접 피아노를 치며 이 곡을 초연했습니다. 작곡가이자 친구였던 루이스 슈포어(1784-1859)는 초연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화려했던 비르투오소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포르테에서 어찌나 세게 건반을 두드렸는지, 피아노 현이 덜거덕거릴 정도였다.” 가슴 아프게도 이 초연이 ‘피아니스트’ 베토벤의 마지막 연주였고 그날 이후 그는 다시는 공식적인 연주회에서 피아노를 치지 않았습니다.

환상의 결합, 카잘스(Casals) 트리오
Alfred Corot(Piano), Jacques Thibaud(Violin), Pablo Casals(Cello), 3명의 거장이 모인 소위 ‘Casals Trio’는 환상의 결합입니다. 1928년 녹음된 이 연주는 거의 일백 년 전 것이지만 개성이 강한 3명의 비르투오소가 통일된 음색과 뛰어난 음악적 교감으로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훌륭한 연주를 남겼습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이 음반으로 감상했습니다.

하나님 말씀
음악 감상이 끝난 후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시편 150편 1-3절입니다.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음악가들은 생활을 위해 귀족에게 음악을 헌정해야 했지만 오늘 우리는 가슴에서 우러나는 모든 것을 이용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겠습니다. 아무것도 헌정하지 않아도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전 기사맛들리다
다음 기사5 메콩 어린이 호(號)
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