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들리다

‘게이샤’에 맛들려 버렸다. 일본 기생에게 빠졌냐고요? 오해들 마시길. 현 스페셜티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고급 원두 품종을 말한다.

이름이 왜 하필 ‘게이샤(GEISHA)’냐고? 에티오피아(Ethiopia) ‘게샤(Gesha)’라는 지역에서 처음 재배되었기 때문이다. 게샤에서 재배되던 원두가 여러 나라에 게이샤(Geisha)라는 발음으로 전달되었고 그게 정식 표기가 되었다. 고급 원두답게 가격은 일반 원두의 최소 3배, 많게는 10배.

처음 이 커피를 맛본 것은 부산의 한 카페였다. 머신도 없이 그저 핸드 드립으로 내려주던 그 허름한 카페에서 첫 모금 넘긴 순간 ‘아! 이건 뭐지…’ 싶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고나 할까? 그간 나름 애호가로서 다양한 스페셜티에 도전해보고는 있었으나 좀처럼 입맛을 들이지 못하고 있던 터, 그 즈음 이 원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단골 카페에 말해 보았다. 사장님은 내 지갑 상황을 고려, 게이샤 품종의 다른 원두를 추천해주었다. 그것이 ‘콜롬비아 킨디오 엘 플레이서(Columbia Quindio El Placer)’ 게이샤. 고급 게이샤의 절반 정도 가격에 맛과 향은 20% 부족한, 지금의 나에게 딱 맞는 가성비 좋은 원두였다. 그렇게 구매한 원두를 다시 내려 마셔보았을 때 ‘앗! 부산에서 마셨던 바로 그 맛!’

나는 기본적으로 단맛을 선호한다. 쓴맛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초딩 입맛’이란 표현은 날 위한 것이다. 달콤할 때 기본적으로 뇌와 혀가 반응하기 때문이다. 게이샤는 그 기분 좋은 단맛을 기반으로 한다. 그 기반 위에 다양한 향이 복합적으로 다가온다. 복합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동시 다발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가 포인트다.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질 경우 보통은 산만하거나 불편할 수 있는데 이 원두는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그래서 한마디로 정의 할 수 없는 깊고 오묘한 새콤달콤함을 선사한다.

전문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플로럴한 화려한 아로마 향에 트로피칼 후르츠의 단맛이라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뭔가 동시다발적으로 다가오는데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진다면 균형이 잘 잡혀있다는 뜻이다. 꼭 커피뿐만 아니라도. 그리고 그것이 내가 게이샤에서 매력을 느낀 이유이다. 맛과 향에 일조한 로스터들에게 경의를!

이 맛에 빠지자 이상한 후유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획일화된 프랜차이즈 커피들이 단조롭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색이 좀 없어 보인다고나 할까? 이전에 습관적으로 마시던 커피들이 조금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졌다. 약속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프랜차이즈로 향하던 발걸음도 뜸해졌고.

그와는 반대로 개성 강한 로스터들의 원두에는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발로 직접 찾아다니며 저마다의 철학을 들어 보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렇게 커피 한 잔을 사 마시던 소비 방식은 원두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갔고 구매한 원두를 직접 갈아 내리면서 즐기는 방식도 바뀌어 갔다. 이리 재미를 들이고 있으니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수밖에. 더불어 아내가 가장 혐오하는 지갑은 얇고 입맛만 높은 남자(?)가 되어가는 중이기도 하고…

선교단체 간사 시절 주로 몸담고 있던 분야는‘제자훈련’
10년의 간사 생활 동안 총 8번의 제자훈련에 몸담았으니 내 간사 시절 대부분을 제자훈련사역으로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체의 제자훈련이란 것이 좀 독특한 면이 있어 6개월간의 합숙을 전제로 한다. 상상해 보시길. 다 큰 성인들이 서로 일면식도 없이 모여 6개월간 먹고 자며 훈련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정말 다이나믹하다. 게다가 모집 기준은 특별히 없다. 전염성 질환이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 않은 세례 교인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그렇게 모여서 함께 말씀을 공부하며 하나님을 알아가고 서로를 알아간다.

처음에는 모두 뜨겁다. 친절하고 온유하며 자상하다. 하지만 한두 달 지나가며 조금씩 성격이 나온다. 절반 즈음 지날 때면 마찰이 생기고 후반부 단기선교를 나갈 때 즈음에는 인성이 드러난다. 고되고 거친 선교 여정 속에서 죄인 중의 괴수와 슬슬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단기선교까지 마치고 돌아온 이들은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귀국한다. 모든 과정을 끝냈다는 성취감과 자신의 수준을 봤다는 자괴감을 동시에 안고서.

수료할 때가 되면 설명하기 힘든 기쁨이 솟구친다. 내 모습의 A부터 Z까지를 보니 예수님 없이는 안되는구나… 하나님과 이 사람과의 진짜 동행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훈련을 거의 10년간 지속하니 이상한 후유증이 남았다. 지워지지 않는 동료들과의 기억과 뜨거웠던 학생들과의 시간들. 하나님을 알아가며 같이 씨름했던 지단한 여정들. 제자훈련의 맛이란 실로 복합적이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지는 오묘한 매력과 재미가 있다.

지금은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전처럼 합숙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 공간도 넉넉하다. 시간도 충분하고 먹는 것 입는 것 크게 부족함이 없다. 그러면 나는 그때보다 지금의 삶에 더 재미를 느끼고 있을까? 그 물음에 확답을 못하겠다. 분명 그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만 재미를 느끼진 못한다.

상상을 더해본다. 지금보다 더 크고 좋은 집에서 살면 어떨까? 물론 좋을 것이다. 넓고 편안한 집에서 사는 것은 편리함을 줄 것이다. 하지만 재밌을 것 같진 않다. 더 성공한 유명 작가가 된다면 그때는 어떨까? 예술가라면 응당 명성을 꿈꿀 것, 마다 할 이유가 없다. 상상만 해도 좋다. 하지만 이 역시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 모든 것을 다 합쳐 지금보다 편리하고 윤택한 삶을 살게 되어도 나는 제자훈련에 몸담았을 때만큼 재미를 느끼진 못할 것이다.

제자훈련이란 거룩한 사명을 ‘재미’로 치부한다고 느끼는 분이 계신다면 죄송하다. 자백하건대 내 신앙의 수준이 그렇다. 나는 나를 잘 안다(가까이 있는 아내가 제일 잘 알고). 종교적 명분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의 일을 할 때 가장 재밌었고 만족감이 컸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사람에 재미 들였음을.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아서 발견한 이가 기뻐 돌아가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다고 했다(마태복음 13:44).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가장 좋은 것을 발견한 사람은 덜 좋은 것에 투자할 수 없다는 의미일 터. 정말 재밌고 만족스러운 일에 눈 뜬 나는 그렇지 않은 일에서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되버렸다. 영혼들과의 깊고 오묘한 향기를 맛 보았기에 물질의 향기로 돌아갈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내가 변한 것일까? 지난 10년간 누군가를 제자훈련 시켜 왔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내가 제자 훈련받은 건 아니었는지. 그래 어쩌면 그게 신의 한 수 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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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용욱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기독교 출판작가, 예술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커피’와‘예수님’으로 기독교적 사색을 담은 글을 연재하고 있다. 글쓰기를 배운 적도, 신학 학위를 받은 적도 없는데 12년 째 신앙서적 내고 있는 이상한 평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