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교육학자 존 A. 셰드는 “배는 항구에 머물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은 배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나에게 아주 깊이 와 닿아서 선교를 준비하는 동안 계속해서 나의 휴대폰 SNS의 프로필 화면에 기록해 놨던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안정적인 방법을 추구한다. 그래서 한 번 치뤄낸 행사는 자료를 잘 보관해 두고 다음에는 더 안정적으로 잘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날마다 기도하면서 매일매일 하나님의 공급을 받아서 생활하는 것보다 미리 저축을 해 놓거나 정기적인 수입을 가지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원한다.
이런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안정적인 것을 추구해 가거나 우리의 안락한 삶만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면 좀 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러한 이유로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던 안전한 삶을 떠나서 험난한 길을 선택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선교사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한때 한국에서는 각 선교단체마다 헌신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났던 때가 있었다. 그때 헌신한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며 선교사로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명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주춤하며 각 선교단체마다 선교사들을 일으키는 동원사역에 고심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선교사로 지원하지 않는 이유들이 많이 있겠지만 퍼스펙티브(선교한국 파트너스에서 실시하는 선교사 훈련)가 조사한 [지역교회와 선교적 참여]라는 글에 따르면 청년들이 선교에 무관심한 이유가 ‘취업 등 자신의 문제에 빠져서’라는 것이 72%였다. 왜 이렇게 개인의 문제에 빠져 있을까? 그것은 자신의 삶에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그중에는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서 봉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무원이 가장 안정된 직장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리스도인이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우리를 아주 소중한 자녀로 삼고 계시지만 소중한 자녀가 그저 나약하게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를 광야로 내몰기도 하신다. 거친 광야에서 비바람과 싸우고 들짐승과 싸우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본래의 모습을 키워가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신다.
십자가의 길
한국에서 사역할 때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과 로마에 다녀왔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날 아침, 호텔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우리가 밟은 그 순례의 길이 십자가 길이었음을 알았다.
이집트에서 출애굽 여정을 통해서 모세의 삶을 되짚어 보았다. 히브리서11:24~25절의 말씀이 생각났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 다 더 좋아하고
모세가 안정된 생활을 추구했다면 그는 이집트의 왕자로서 바로의 궁에 있는 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원해서 광야의 삶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땅을 돌면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보았다. 예수님도 역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셨다면 하늘 보좌에만 계셨을 것이다. 거기서 천사들과 먼저 간 성도들의 예배를 받고 계셨어도 되었다. 굳이 사람의 몸을 입고 팔레스타인 땅으로 오셔서 고통과 치욕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셔도 되었다. 그렇지만 만약 예수님이 이렇게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셨다면 우리의 구원은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지 않으셔도 되는 분이지만 자원해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다.
로마에서 바울의 참수터를 봤다. 바울도 역시 안정적인 삶을 추구했다면 유대인의 존경받는 랍비로서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원해서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온갖 고난을 다 감수하고 1, 2, 3차 선교 여행을 마쳤고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 그는 자신의 삶을 추억하면서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라.”는 충고였다. 이렇게 바울은 비록 어렵고 힘들게 마지막 생을 마쳤지만 그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디모데후서4:7-8에서 당당히 말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에 대해서 말할 때 어쩔 수 없이 지고 가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과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어쩔 수 없이 지고 간 십자가가 아니라, 그들의 안정된 삶을 떠나서 자원해서 고난의 길, 도전의 길로 갔던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 역시 내가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가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원해서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편안한 삶을 추구하며 살 수 있지만 자원해서 가난한 삶을 사는 것이고 자원해서 불편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길을 따라서 자원해서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 떠나는 것이다.
본래의 존재 목적을 따라서 떠나는 삶
우리는 끊임없이 나 스스로에게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성은 계속해서 편안하고 안전한 것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만약 정박해 있는 배 쪽에 가깝게 살고 있다면 새로운 도전의 길로 나 스스로를 내몰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목적이라면 우리는 예수를 믿자마자 천국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곧바로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을 주셨다. 그 사명은 풀타임 선교사나 교회 사역자일 수도 있지만 각자의 삶 속에서 선교사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연재의 방향
필자가 선교사로 사역을 한 기간은 장기로 사역을 하신 선교사님들에 비하면 아주 짧은 기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사로 부르시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받은 선교훈련과 사역을 통해서 얻게 된 것들이 헛되지 않기를 늘 기도하였다.
그런 가운데 크리스천라이프로부터 선교에 대한 연재를 제안받고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하며 수락은 했지만, 선교사역의 경험이 그리 길지 않기에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다.
대부분의 교회와 개인이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겠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그렇지 못한 경우도 역시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선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한계를 경험했을 수도 있을것이다.
그래서 방학을 이용해서 한두 번 정도의 단기선교나 선교사를 후원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만 위안을 삼고 선교사로 헌신하는 일에는 더 이상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번 연재를 통해서 필자가 가졌던 선교의 꿈과 그 실행과정과 사역의 경험을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선교의 꿈을 꾸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