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전 세계를 휩쓰는 코로나는 아직도 곳곳에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21세기의 과학과 의학도 이 난데없는 전염병 앞에 속수무책인 것을 보면서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를 다시 실감합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이럴 때 새삼 듣고 싶은 음악이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입니다. 이 교향곡은 인류애(人類愛)를 노래하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를 담고 있기에 이렇게 어려운 때에 다 같이 들으면서 사랑을 회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은 22살 때 독일 시인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읽은 뒤 이 시에서 영감을 얻어 ‘인류를 구원할 위대함’을 자신의 음악에서 구현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악성(樂聖)다운 포부입니다. 그 뒤 절치부심 30년간 공을 들여 1824년에 완성한 작품이 그의 9번 교향곡 ‘합창’이며 이 곡은 음악 비평가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서 음악 작곡 사상 최고의 걸작품이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 곡은 교향곡으로는 처음으로 성악을 도입한 작품이며 “합창교향곡”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바로 4악장에 나오는 합창 및 독창 때문이며 그 가사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삼 분의 일쯤으로 줄여서 번안한 것입니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천상낙원의 딸들이여, 우리는 정열에 취하고 빛이 가득한 신의 성전으로 들어간다.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은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다시 결합시키는도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온화한 그대의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서.’라고 시작하여 ‘모든 사람은 서로 포옹하라! 이것은 온 세상을 위한 입맞춤! 형제여 별의 저편에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으니 모든 사람은 서로 포옹하라! 이것은 온 세상을 위한 입맞춤!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천상낙원의 딸들이여,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신의 광채여.’로 끝나는 환희의 송가는 과연 22살 야심만만한 청년 베토벤에게 영감을 줄 만한 시였습니다.

베토벤은 음악의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걸작들을 남겼지만 무엇보다도 교향곡 장르를 최고의 음악으로 완성시켰습니다. 어떤 학자는 베토벤이 남긴 9개의 교향곡을 ‘태양’으로 비유하며 그 뒤에 나온 모든 교향곡은 그 주위를 맴도는 ‘행성’이라고 했습니다. 베토벤이 교향곡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잘 알려주는 말입니다.

‘합창 교향곡’을 작곡하는 어려움
그런 베토벤이지만 교향곡에 독창과 합창을 도입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고 모든 음악가에게 처음이라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베토벤의 전기를 집필한 제자 안톤 쉰틀러는 나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제4악장을 작곡하기 시작하면서 베토벤은 전보다 훨씬 힘들어했습니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적절히 도입하는 것 때문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베토벤이 방에 들어와서는 ‘해냈어, 드디어 해냈다고!’라고 하면서 소리를 질러대며 ‘실러를 대상으로 한 불멸의 송가를 부르세’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보여줬지요.”
그렇지만 그 착상은 곧장 실현되지 않았고 그 뒤로도 꽤나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오늘날과 같은 제4악장이 완성되었습니다.

곡의 내용
모두 4악장으로 되어있는 교향곡 ‘합창’의 연주 시간은 70분 정도로 대곡(大曲)입니다. 마음자리를 안정시키고 들어야 다 들을 수 있습니다.

1악장은 조금 느슨한 느낌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곧이어 단호하고 장대한 느낌으로 ‘빠밤’하고 첫 주제가 터져 나오고 이어서 비교적 정적인 두 번째 주제로 이어집니다.

2악장은 보통의 고전적 교향곡의 2악장은 느린 악장이지만 ‘합창’의 2악장은 몰토 비바체의 빠른 악장입니다. 앞의 악장과 달리 급작스러울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며 팀파니로 호기롭게 시작됩니다. 이어서 바이올린이 다소 빠른 템포로 주제를 연주합니다.

3악장은 가벼운 한숨처럼 시작되는 아다지오의 3악장은 베토벤답지 않을 만큼 낭만적입니다. 바이올린이 아름다운 선율의 첫 주제를 아련한 느낌으로 연주하고 관악기가 메아리처럼 간간히 울려 퍼집니다. 이어서 새로운 조성의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며 음악이 빨라지면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어울립니다.

4악장은 시작하며 관악기들이 부산하게 수런거리다가 첼로와 베이스가 부드럽게 속삭이듯 웅얼댑니다. 이윽고 오케스트라의 총주로 분위기가 고조되다가 베이스(혹은 바리톤)의 독창이 튀어나옵니다. 교향곡 사상 처음으로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입니다.

O Freunde, nicht diese Töne로 시작하는 노랫말은 실러의 시(詩)가 아니고 베토벤이 첫머리에 첨가한 노랫말입니다. ‘오 친구들이여! 이런 곡조들이 아닌, 좀 더 즐겁고,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자.’고 시작되는 노래의 첫 구절 ‘nicht diese Töne’(이런 곡조들이 아닌)은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런 곡조들’이 어떤 곡조들이기에 베토벤은 아니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세상의 곡조들, 땅의 곡조들, 절망의 곡조들이었을 것입니다. 이 곡을 작곡할 때의 베토벤은 귓병이 악화되어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대신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슬픔과 절망을 노래하는 이런 곡조들이 아닌(nicht diese Töne) 더 즐겁고 기쁨에 찬 하늘의 노래(환희의 송가)를 노래하자고 했을 것입니다.

곡의 끝부분에 나오는 합창은 더욱더 감동적입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 포옹하라! 이것은 온 세상을 위한 입맞춤!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신의 광채여’라고 노래하는 합창은 아름답고 장엄합니다. 곡의 속도는 더욱더 빨라지고 모두가 환희 속에 힘을 다해 춤추며 신(神) 안에서 하나가 되는 느낌을 주며 서서히 막이 내려옵니다.

곡의 초연
이 곡은 1824년 5월 7일 빈에서 베토벤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베토벤은 빈보다는 베를린에서 자신의 작품이 연주되기를 원했지만 친지들과 후원자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빈에서 첫 연주를 했습니다. 이때 이미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베토벤은 연주 동안에는 청중을 등지고 서서 가수들의 입술 모양으로 실황을 가늠했습니다. 마지막 악장인 합창 악장이 끝나면서 관중들이 열광했을 때, 알토 독창자 카롤리네 웅어가 베토벤의 등을 돌려 청중의 환호에 답례하게끔 도왔다고 합니다. 이 초연의 장면을 잘 보여준 영화가 카핑 베토벤입니다.

영화 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
아그네츠카 홀란드(Agnieszka Holland)가 연출한 영화 카핑 베토벤에 나오는 ‘합창’ 교향곡의 초연 장면은 정말 압권입니다. 물론 픽션이지만 귀가 안 들리는 베토벤은 지휘를 하기 위해 제자이자 악보를 대신 기록하는 카피스트 안나의 도움을 받습니다.

안나의 도움으로 베토벤은 지휘를 하고 연주는 성공리에 끝납니다. 객석에서 열광의 파도가 휘몰아치지만 귀가 안 들리는 베토벤은 그대로 서 있습니다. 안나가 뛰어가 베토벤을 돌려세우자 그는 비로소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번쩍 듭니다.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아직 안 보신 분은 꼭 보시기 바랍니다.

이 곡의 최고의 연주는 베토벤 교향곡의 권위자 W. Furtwangler가 지휘한 Bayreuth 축제 관현악단의 연주입니다. 독창자는 시바르쯔코프(S), 헤프겐(A), 호프(T), 에텔만(B)입니다.

오늘 2020년 화요음악회 마지막 이야기를 마치면서 같이 보고 싶은 하나님 말씀은 베드로 전서 5장 8-9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코로나가 아직도 전 세계 모든 인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뉴질랜드는 다행히 피해가 적은 편이지만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믿을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해서 이 고난을 이기고 희망에 찬 새해를 맞으시기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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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