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Back(고백)

한국에서 11년간 연평균 150회 공연을 했다. 많게는 하루에 5번씩도 했고, 나흘 동안 12번 연이어 한 적도 있다. 일반 아티스트가 아닌 ‘사역자’ 이기에 스케줄이 허락하는 한 거절하지 않고 무조건 가서 연주했다. 영혼 구원을 하고 생명을 살리는데 이렇게 왕성하게 쓰임 받아 감사했지만, 기획사 운영하랴, 내 스케줄 감당하랴, 주기적으로 앨범 내고 영상 콘텐츠 올리랴, 연합 퍼포먼스 기획하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내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갔다.

전자 바이올린은 자체적으로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모니터 스피커를 통해 내 소리를 듣고 바른 음정을 잡고 연주해야 한다. 하지만, 사역지에 모니터 스피커 및 음향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진 곳은 1/10도 안 된다.

그래서 내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연주할 때 나도 모르게 오른팔과 어깨에 힘을 많이 주게 된다. 그래서 어깨 연골이 닳을 대로 닳고 손목 통증이 점점 심해져만 갔다. 오른쪽 무릎도 주기적으로 아파져 왔다. 그래서 연주 후에 꼭 아이스로 냉찜질하고 또 온찜질을 해야 통증이 조금이나마 완화되고, 연주 다음 날엔 꼭 병원에 가서 뼈를 깎는듯한 아픔을 동반하는 치료를 받아야 했다.

연주를 중단하고 쉬지 않으면 낫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치료와 진통제를 병행하며 사역을 강행했다.

하지만, 계속 이대로 가다간 아예 팔을 못 쓰는 경지에까지 이를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뉴질랜드로 들어가 쉼을 갖기로 결단을 내렸다.

‘내가 떠나버리면 DSM 엔터테인먼트는 누가 운영하지? 양성하고 있던 새로운 팀은? 월드비전 미션스쿨 사역은 어떡하지?’

수많은 걱정이 뒤따랐다. 하지만, 사역은 사람의 일이 아니니 주님께 모든 걸 맡기고 내 건강부터 챙기는 게 지금으로서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준비하고 있던 3집 앨범과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2017년 6월부로 해나리 사역의 1막을 내리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결정에 준비할 게 너무 많았다. 이삿짐을 보낼 운송업체도 알아보고 비행기 티켓도 저렴한 편으로 알아봐야 했다. 내가 몸담은 모든 영역에서 정리하고, 인수인계해야 했다. 차와 전셋집도 처분해야 하는 동시에 뉴질랜드에서 지낼 곳도 알아봐야 했다.

그 와중에 앨범 작업과 콘서트 준비도 해야 했다. 또, 내가 뉴질랜드로 돌아간다고 하니 사역 및 방송 섭외 요청이 많이 들어와서 그 스케줄도 감당해야 했다. 한 달 반을 하루에 서너 시간씩만 자고 견뎌내니 살이 쭉쭉 빠졌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해나리의 고백을 담은 3집 앨범 ‘Go Back’이 6월 6일 해나리 단독 콘서트 날짜에 맞춰 출시됐다. CCM 앨범으로는 최초로, 다양한 나의 모습을 담은 화보로 자켓을 꾸몄다. 크리스천 문화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계발한 내 모습을 팬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또한, 지난 11년 동안 부어주신 은혜에 감사해 모든 달란트를 쏟아부어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로 ‘All In’ 콘서트를 열었다. 사전 게스트로 MC1호, 가수 구현모, 여울비, 장정은/김세미가 무대를 꾸몄다. 레이저 몬스터가 창조를 테마로 레이저쇼를 화려하게 선보인 뒤 나와 콜라보 무대를 가졌다.

그 외에도 LED 트론댄스, 일렉 현악 3중주, 걸밴드, 여성 보컬그룹, 인디밴드와의 콜라보 무대를 통해 귀와 눈이 모두 즐거운, 다양한 무대를 준비했다.

가수 이미쉘의 특별무대와 더불어 가수 임정희와 최영호 PD의 서프라이즈 무대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한몫했다. 특별히 프라이드 밴드와 함께 전동보드 위 안무에 맞춰 연주한 순서는 내 꿈이 다시 한번 실현되는 순간이었고, DSM 아티스트 전원이 함께 ‘주님 사랑합니다’를 찬양할 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림이 있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를 응원하고 기도해준 많은 팬들과 지인, 교인, 가족, 친구가 참석한 자리라 마지막 멘트할 때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제가 건강상의 이유로, 이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뉴질랜드로 돌아갑니다.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쉬면서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돌아올 테니…”
순간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가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화려한 현악 4중주의 연주로 출연진만 50명이 넘는 콘서트 대장정의 막이 내렸다.

Back to NZ
숨 막히듯이 바쁘게만 살다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여유롭게 사는 삶이 그저 꿈만 같았다. 확연히 달라진 삶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우울증도 왔다. 하지만, 주님이 허락하신 쉼의 시간이기에 주님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히 하기 위해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다. 바이올린 연주를 쉬며 치료받으니 어깨와 손목의 통증도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어느 날, 뉴질랜드 결식아동을 돕는 사역을 하는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복지가 잘 돼 있는 나라로 손꼽히는 뉴질랜드에서 일 년에 150명의 아기가 죽고,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는 어린이가 수없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믿기지 않았다. 이 목사님은 그런 환경에 노출돼있는 어린이가 많은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사역을 하고 계셨다.

아이들이 학교에 와도 배가 고프면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들의 배를 채워주는 게 우선이라는 어느 교장 선생님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목사님 사역을 확장하고 돕기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는 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한국에서 연 ‘All In’ 콘서트 폼을 그대로 가져가려 했지만, 함께 했던 아티스트를 뉴질랜드로 다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교민 가운데 댄서/안무가로 유명한 리나 채와 파트너 Zed, 조이풀 청소년 오케스트라, 남십자성 어린이 예술단, 그리고 청소년 K-pop 댄스팀을 섭외하여 콜라보 무대를 꾸몄다. 특별히 리나 채는 내 대학 동기로, 팝 가수 비욘세의 댄서로도 활약했으며, 현재 여러 K-pop 그룹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고맙게도 이 선한 목적을 갖고 여는 콘서트에 재능기부로 함께 해줬다.

NZ콘서트_오케스트라와함께

한국에 비할 수는 없지만, 조명과 영상, 특수효과 등을 사용해 최저 예산으로 최고의 퀄리티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오클랜드의 마당발인 아버지가 이 목사님과 더불어 홍보와 후원 모금을 담당했다. 또한, 내가 교민 TV와 방송, 현지 크리스천 라디오에까지 출연해 이 선한 사업을 알렸다. 그리고 당일, 650여 명의 관객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고, 오클랜드 교민사회에서는 전무한, 화려하고 특별한 콘서트로 모두의 기억에 남았다.

이번 콘서트를 계기로 티켓 판매 비용 이외에 여러 교회와 기업, 그리고 단체에서 추가 후원금이 계속 들어와 풍성한 천국 잔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