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리의 시(詩)와 슈베르트의 삶

음악은 부드러운 음성이 죽을 때
추억 속에서 울려 나오고
향기는 달콤한 오랑캐꽃이 병들 때
꽃이 깨어놓은 감각 속에 살아있다

셀리(P. B. Shelley 1792-1822)의 시(詩) ‘음악은 부드러운 음성이 죽을 때’의 첫 구절들입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을 들으려고 음반을 찾으려면 어느 사이에 머릿속에 떠올라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구절들입니다.

불과 31살의 젊은 나이에 지상의 삶을 마쳐야 했던 슈베르트는 1828년 그가 죽든 해 3월에 그의 마지막 교향곡 9번을 작곡했습니다. 이 곡을 작곡하면서 슈베르트는 저녁 그림자처럼 다가오는 자기의 죽음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가난과 병고로 얼룩진 외롭고 힘든 삶을 사는 동안 비록 드높은 예술가의 영혼이 그를 붙들고 지켜주었지만 그도 우리와 같은 육신 속에 살던 인간이었기에 지상에서의 짧은 삶이 무척 아쉬웠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마지막 교향곡 9번을 그의 다른 8개의 교향곡과는 달리 의도적으로 길게 작곡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교향곡은 그 별명이 웅장하고 길다는 의미의 ‘그레이트(The Great)’입니다. 하지만 이 곡을 완성한 뒤 몇 달이 지난 11월에 슈베르트는 훌훌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곡은 우리 마음속에서 영원히 울리며 자칫 삶의 질곡으로 무디어지기 쉬운 우리의 감각을 깨워주기에 저는 이 곡을 들으려 할 때면 셀리의 시(詩)가 생각나나 봅니다.

슈베르트와 거의 동시대의 영국 시인 셀리는 슈베르트와 마찬가지로 불과 30년의 짧은 삶을 살고 간 비운의 시인입니다. 그는 슈베르트보다 먼저 죽었지만 그가 남긴 시는 슈베르트의 삶과 음악을 노래한 것 같습니다.

슈베르트 교향곡 9번 The Great
슈베르트는 모두 9곡의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오늘날 자주 연주되는 곡은 그 유명한 8번 ‘미완성’과 그레이트라고 불리는 9번 교향곡 두 곡입니다. 이 곡은 그가 죽던 해인 1828년에 작곡됐지만 너무 방대하고 연주가 어렵다는 이유로 빈 악우협회로부터 거절당했고 그대로 잊혔습니다.

10년이 지난 어느 가을날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인 로버트 슈만이 빈을 방문하였다가 베링거에 있는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지를 찾았습니다. 슈베르트는 죽으면서 그렇게도 생전에 존경했던 베토벤 옆에 묻어달라고 했기에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지는 나란히 있었습니다.

묘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슈만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던 슈베르트의 친형 페르디난트의 집에 들렀습니다. 페르디난트도 대 음악가의 형답게 음악을 좋아하고 작곡을 즐겨 하는 학교 교사였습니다.

슈만을 알고 있던 그는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슈베르트의 유고를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유고더미를 뒤적이던 슈만은 거기서 부피가 유독 큰 이 ‘C 장조 교향곡’의 초고를 발견했습니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다고 이 악보의 페이지를 넘기던 슈만은 심장이 터지는 흥분을 느꼈습니다. 하마터면 영원히 어둠 속에 잠겨버릴 뻔했던 보물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슈만은 페르디난트의 승낙을 얻고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있는 멘델스존에게 이 원고를 보냈고 1838년에 역사적인 초연이 멘델스존의 지휘로 이루어졌습니다.

천국적으로 긴 교향곡
나중에 슈만은 그가 주재하던 잡지 ‘음악신보’에 이 곡에 대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교향곡을 모르는 사람은 슈베르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교향곡을 들어보라. 이 속에는 다채로운 생명이 나타나 있고 깊은 의미가 있으며 슈베르트 특유의 로맨티시즘이 넘치고 있다. 그리고 마치 장 파울의 장편소설처럼 천국적으로 길다.’

슈베르트 9번 교향곡에 꼭 따라다니는 ‘천국적으로 길다’는 말은 바로 슈만의 이 기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천국적으로 길다’라는 말에는 단순히 긴 것만이 아니고 그 안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신성한 아름다움’이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언제나 머릿속에서 선율이 넘쳐 나오던 가곡 작곡가로서의 슈베르트는 이 교향곡을 작곡하면서도 절도 있는 짜임새의 관현악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이 없이 흘러나오는 선율로 우리에게 속삭이듯 전해줍니다.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슬프도록 아름답게 청춘의 고뇌를 담담히 토로하는 이 곡은 모두 4악장으로 되어있습니다.

1악장: 안단테 –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음반에 바늘을 내리면 곧 흘러나오는 호른 소리가 마치 다정다감한 슈베르트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아 가슴이 열립니다. 전체적으로 순수하고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선율적이고 화성적인 부분이 모습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악장입니다.

2악장: 안단테 콘 모토
느리지만 활기 있는 안단테 악장으로 슈베르트다운 꿈꾸듯 아름다운 선율이 흐릅니다. 담담하게 솔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악장에 “하늘의 천사가 숨어 있는 듯하다,”고 슈만은 말했습니다.

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비바체
슈베르트 특유의 유려한 선율이 가득한 이 악장은 어떤 부분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전원 무곡을 연상케 합니다. 그만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단순하고 친근하게 춤곡 성격을 스케르초 안에 잘 조화시킨 악장입니다.

4악장 : 알레그로 비바체
모두 1,155 소절이나 되는 방대한 피날레 악장입니다. 마음껏 소리쳐 부르는 유니존(齊唱)으로 시작하여 강력하게 모든 악기를 동원하는 환희와 힘의 악장입니다. 코다(coda: 악곡 끝의 결미 부분)는 처음의 모티브를 소재로 하지만 장대하고 길어서 마치 슈베르트 교향곡 전체의 피날레와 같이 느껴질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위대한 교향곡이니 만치 좋은 연주가 많습니다마는 화요음악회에서는 거장 토스카니니가 1941년에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녹음한 역사적 음반으로 감상했습니다. 토스카니니는 이 9번 교향곡을 특히 좋아하여 모두 4종의 녹음을 남겼는데 모두 명연주이지만 특히 1941년의 이 연주는 토스카니니의 참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 – 1957)
이탈리아 태생의 토스카니니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최고의 지휘자로 우뚝 선 음악의 완벽주의자입니다. 그는 모든 음악을 암보(暗譜)로 지휘했습니다. 시력이 너무 약해 총보(總譜)를 보며 지휘할 수 없기에 외울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그의 초인적인 암보력은 오직 음악만을 위해서 음악에만 집중하며 살았던 그의 삶을 증명해줍니다.

스스로가 완벽주의자였기에 악단원 모두가 자기와 같기를 바랐고 그렇기에 누군가가 제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불같이 울화를 터뜨렸기에 그의 격노하는 모습은 악단원 사이에 전설이 되었다고 합니다.
연습할 때 그가 단원들에게 외치는 소리는 줄곧 ‘칸타빌레! 소수테날레!’ 즉 ‘노래! 소리를 유지해!’였으니 그가 지휘한 슈베르트의 음악이 아름다운 노래와 소리를 유지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음악 감상을 마치고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시편(詩篇) 90편 10절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단명한 천재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연수가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날아가듯 사라져가는 연수를 자랑 말고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전 기사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다음 기사1.5세대의 고민: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
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