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9

2018년 8월 16일(목) 18일 차 : 레온 ~ 비야레스데 오르비고 36km (누적 514km)

레온에서 하루를 쉬었더니 새벽 4시에 가뿐하게 눈이 떠진다. 하나님이 안식을 주신 것이 그냥 주신 것이 아니다. 사람은 쉼이 필요하다. 오늘의 목적지는 오스피탈데 오르비고였는데 걷다가 더 가서 비야레스데 오르비고까지 갔다.

출발하면서 짐을 정리하다가 필요 없는 짐들을 처분한다. 반바지, 팔 토시, 지퍼 백 등을 보면서 있어도 좋지만 없어도 걷는 데 어려움이 없을 거 같아서 과감히 내려놓는다. 그렇다고 배낭 무게가 팍 준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무게는 줄어든 듯하다.

살다 보면 내려놓고 버려야 할 삶의 짐들이 있다. 그런데 놓으면 큰일 날 것 같아 끝까지 움켜쥐고 있는 짐들이 많다. 이번 까미노를 통해 내려놓고 비우는 법을 배운다.

이제 대도시는 산티아고에 가야 볼 수 있다. 새벽 5시에 나와 도시를 가르며 걷는데 가로등으로 인해 1시간 정도는 그냥 걷는다. 2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마을에는 카페가 열려 있지 않아 벤치에 앉아 어제 민박집 주인이 싸 준 과일 중에 사과 하나를 먹는다. 아침에는 금 사과라는데 맛있게 먹고 발도 쉰다. 다시 걷기 시작하여 2시간을 걷는다. 이 길은 차도와 같이 걷는 길이라 그냥 걷는다.

2시간이 지나 도착한 마을에도 카페를 안 열었다. 하는 수 없이 자판기에서 음료 하나를 뽑아 간식과 함께 먹으며 쉰다. 오늘은 쉬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며 쉴 수 있을 때 쉬는 것이 행복이구나 생각한다.

다시 걷다가 10시쯤에 산마틴 마을에 도착해서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먹는다. 스페인은 보통 아이스커피가 없다. 에스프레소를 시키며 얼음을 달라고 해서 내가 만들어 먹어야 한다.

12시가 되어 원래의 목적지인 오스피딸데 오르비고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의 다리가 참 독특하다. 스페인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다리이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영감을 준 다리라고 한다. 길고 예쁜 다리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 시냇물이 정말 맑다.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나 가야 할 길이 있기에…….

오스피딸데 오르비고 다리

이 마을의 성당에 들어가 한참을 앉아 있었다. 십자가를 보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냥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쉰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다음 마을인 비야레스데 오르비고까지 가기로 결정하여 30분을 더 간다. 작은 마을이지만 아늑하고 숙소도 괜찮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알베르게인데 좋지만 힘들기는 하다.

하루를 쉬고 걸었더니 쉬운 거 같기도 하고, 하루 쉬었다고 힘들기도 하다. 8인실에서 4명이 머문다. 저녁 식사는 근처에 마트가 없어서 숙소 앞의 식당에서 사 먹어야 한다. 이제 남은 거리가 200Km대로 들어섰다. 돌아보니 많이 걸었다. 500K 이상을 걸었으니 부산을 찍고 다시 오는 것이다. 힘들지만 감사하다.
오늘도 부엔 까미노~~~

2018년 8월 17일(금) 19일 차 : 비야레스데 오르비고 ~ 라바날 35km (누적 549km)
까미노를 시작한 지 벌써 20일이 되었다. 이제 70% 정도 걸은 거 같다. 장하다, 종두야~~

오늘의 목적지는 라바날이고 해발 1,150m의 지역이다. 그래서 계속 언덕을 오른다. 내일은 1 ,500m의 포세바돈을 넘어야 하기에 그 전 마을까지만 간다.

새벽 5시에 홀로 출발한다. 이제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 익숙하다. 헤드 랜턴을 의지하여 가다 가끔 끄고 하늘을 보면 별들의 전쟁이 이루어진다. 정말 폰카에 담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갈길이다. 정말 궁금한 것은 이 많은 자갈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까 싶다. 2시간 정도 지나니 마을 입구에 십자가가 있는 산후스토에 도착한다. 마침 해가 뜨기 전의 하늘이라 십자가와 하늘이 너무 아름답다.

30분을 더 가니 중도시 아스트로가에 도착한다. 아스트로가는 가우디 건물이 유명하다. 가우디는 스페인을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건축가이다.

아스토로가의 가우디 주교궁과 성당

바로셀로나의 가우디 건물이 유명하지만 까미노에서 볼 수 있는 가우디 건물이 아스트로가에 있는 주교 궁이다. 성당 옆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까미노 길 위에 있지 않지만 찾아갔다. 정말 아름다운 건물이다. 건축에는 문외한이지만 왜 가우디 가우디 하는지 알겠다. 이른 아침이라 입장을 못하고 사진만 찍고 간다.

이제부터 계속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 고도 300m 정도를 5시간 동안 서서히 올라간다. 가파른 언덕이 아니지만 꾸준히 올라가는 것도 쉽지는 않다. 작은 마을들 몇 개를 지나서 간다. 산타 깔달리나는 돌들로 지은 집들과 담들이 꼭 제주도와 비슷하다.

차도 옆길로 차츰차츰 올라가는 언덕길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지만 계속 이어지니 숨이 가쁘다.
저 멀리 산이 보이는데 내일 넘어가야 할 곳이다.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오늘 쉬고 가면 갈 수 있겠지 하며 위안을 삼는다. 인생의 고비를 만날 때마다 쉼도 필요하고 여유도 필요하다. 단숨에 넘어가려면 어렵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유를 갖고 가면 갈 수 있다. 도착지 전 마을인 엘간소에서 카페에 앉아 휴식하며 간식을 먹고 발도 쉬어준다. 20일을 걸었는데 물집이나 무릎이 아프지 않아서 너무 감사하다. 약 3년간 꾸준히 러닝을 해서 발과 무릎이 단련된 거 같기도 하다.

이제 2시간이면 도착한다. 날씨가 그다지 덥지 않아 다행이다. 고산지대다 보니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서 갈만하다. 꼭 도착 1시간 전이면 더 힘든 거 같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한참 가야 하는 거 같고 발걸음도 무거워진다.

드디어 8시간 만에 라바날에 도착했다. 숙소가 생각보다 예쁘다. 동네에 수도원이 있는데 한국인 신부님이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숙소 근처에 수도원이 있어 찾아가서 한국인 신부님을 만났다. 신구교의 만남이다. 짧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까미노의 은혜를 나누었다.

라바날의 한국 신부님

그리고 저녁기도회를 참석해보라고 하셔서 난생처음으로 천주교 기도회를 참석했다. 시편을 라틴어로 낭독하는 것이다. 라틴어를 모르기에 영어로 된 것을 보면서 나 나름대로 기도한다. 까미노 위에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저녁은 또 순례자 메뉴이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일은 산을 넘어야 하는데 주님이 함께 해주시겠지.
오늘도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