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지난 Lock Down 기간에 손녀가 태어났습니다. 그 예쁜 아이는 그의 세상에 나온 거지만, 오래되고 소박한 내 세상에도 그가 들어 왔답니다. 더없이 귀하고 반짝이는 보석처럼 내 마음을 빛나게 해줍니다.

사람들이 물어보죠. “어떠세요, 할머니 되신 거?” 이렇게 대답합니다. “좋은 할머니가 되어야겠다. 좋은 사람 할머니가 되고 싶다.”라구요.

살면서 관계를 맺고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가족도 그렇고, 동네 친구, 학교 친구, 교회 친구, 직장 동료와 시댁 식구들 그리고 여러 이웃들. 어쩌면 관계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연락처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나이 들고 어른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규모가 작아지고 숫자를 제한하고 멀어지는 사람도 생기고 그래서 다시 줄어들면서 우린 늙어갑니다.

그런데 손녀가 태어나 내가 할머니가 되면서 풍성하고 넉넉하고 다시 부자가 된 듯한 기쁨이 생겼습니다. 핸드폰에 연락처 이름에도 없고, SNS 친구도 아직 아니지만 누구보다 먼저 떠올려지는 새 친구입니다. 그 아이와 일방적이지 만은 아닌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맏딸인 친정엄마의 맏딸인 나는 외갓집에서 엄청 귀염을 받고 자랐습니다. 외갓집에서 며칠씩 지낼 때도 많았는데 긴 겨울 밤을 지날 때면 저녁을 먹고 나선 늘 할머니와 할아버지랑 셋이서 윷놀이를 했습니다.
뜨뜻한 아랫목에 앉아서 군용담요를 깔고 던지며 놀던 그 윷은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나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갖고 노셨는지 조금 작고 맨질 맨질 해서 어린 나도 손에 쥐고 던지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작은 화로에 밤도 구워주시고, 그땐 귀한 귤도 까먹으면서요. 바둑알 대신 귤 껍질을 찢어서 말판에 말로 쓰기도 하면서 많이 웃고 많이 신나 했던 그 윷놀이는 할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또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외갓집 뒷마당에서 부엌 뒷문으로 들어가 앞문을 열고 나오면 우물인지 펌프인지가 있던 마당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 동생이랑 술래잡기하면서 그 높은 문턱을 급하게 넘다가 그만 넘어져서 부뚜막 모서리에 이마를 찧었습니다.

“으앙!” 울면서 이마를 손으로 짚었는데 동그란 구멍이 나고 피가 철철 나는 거예요. 울음소리에 놀라서 할머니가 뛰어와서 업고 간 근처 병원에서 몇 바늘 꿰매었습니다. 그 흉터는 왼쪽 이마에 아직도 있습니다.
원체 당신 목소리를 크게 내는 법이 없던 고우시던 분이셨는데 그때 할머니의 제일 크고 놀라는 목소리를 들었답니다.

또 한번은 저녁에 뭘 잘못 먹었는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습니다. 잠도 못 자고 긁어대며 우는 나를 우물에서 물을 길어 씻기고 헐렁한 옷으로 갈아 입히시곤 마당에 있는 평상에 앉아서 밤새 부채질을 해주시던 적도 있습니다.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외갓집이 있던 경기도 금곡은 따뜻하고 포근한 기억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세대를 이어진 할머니는 내 친정엄마입니다.

직장 다니는 다 큰 조카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 아이를 할머니가 유난히 예뻐하고 서로 각별해서 다른 조카들이나 동생은 서운해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다 사내 녀석들이라 유일한 손녀이기도 하고 함께 오래 살기도 해서 그러려니 합니다.

엄마는 나중엔 치매도 있고 아프기도 하다 돌아가셨는데 멍하게 생각이나 기억의 좁은 터널을 지날 때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은 아마도 그 조카였을 겁니다.

벌써 돌아가신 지 1년 반이 지났습니다. 나도 그 후로 몇 번이나 다른 풍경 사진으로 바꾼 프로필 배경 사진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찍은 사진이 그 아이한테는 아직 배경으로 있습니다. 할머니 돌아가신 지 며칠이 지났는지 카운트해 주는 앱으로 +465 숫자도 그 사진에 있습니다.

엄마는 평생 우리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버지랑 두 분이 매일 저녁 우리 자식들과 손주들 이름을 부르며 축복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살림이 옹색해져도 엄마는 초라해지지 않았고, 그래도 참 감사하구나 말씀하면서 하나님께로 향한 감사와 소망이 넘치는 부유한 분이었습니다.

조카의 그 사진을 보면서 할머니로 잘살다 가신 엄마가 고맙습니다.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조카의 마음도 고맙습니다.

우리가 다 자기 이름이 있지만 관계 속에서 불리게 되거나 역할이나 위치에 따라 갖게 되는 명칭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려 봅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아버지의 장한 딸이고, 어느 교회 권사고, 어느 회사의 직원이고, 어느 집 며느리, 누구의 시어머니, 누구의 할머니 같은 이름 말입니다.

얼마 전 단골로 다니는 야채 가게 사장님이 “혹시 심할머니 며느리세요?”하고 물으십니다. “네, 맞아요” 했더니 나를 몹시 대견해 하면서 심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착한 며느리라고 합니다. 말이나 행동에 거칠 것이 없는 강한 성격이신 시어머니를 아는 사람한테는 상대적으로 그래서 내가 좋은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사실 시어머니 흉보자면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는 나는, 그런데 조심합니다. 좋은 사람은 아니어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는 하니까요. 더구나 심할머니 며느리로 나를 아는 사람 앞에서는요.

얼마 전에 침대에서 낙상하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가 결국은 요양병원으로 옮겨 가신 이즈음엔 더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린 다 그렇게 불려지거나 규정되어지는 이름에 맞게 사는 게,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애쓰는 게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동력이 아닐까요?

이번에 새로 갖게 된 이름 누구 할머니, 그 이름에 어울리는 어른스러운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외할머니, 그리고 엄마가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