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사중주의 아버지 하이든

장수(長壽)의 작곡가이자 다산(多産)의 작곡가인 하이든은 별명도 많습니다. 그의 교향곡을 들을 때 우리는 ‘교향곡의 아버지’라는 그의 별명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또 즐겨 그를 ‘현악사중주의 아버지’라고도 부릅니다.

그가 80개가 넘는 많은 현악사중주를 작곡했을 뿐 아니라 사실상 현악사중주라는 음악 장르를 창안한 음악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현악사중주의 아버지’라는 그의 별명은 그에게 걸맞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명예로운 호칭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뛰어난 재능과 성실한 노력으로 위대한 작곡가가 된 하이든의 삶은 논어 자한편(論語 子罕 篇)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공자의 다능(多能)함을 사람들이 칭찬하자 공자께서는 ‘吾少也賤, 故多能鄙事(오소야천, 고다능비사)’, 즉 자기는 젊어서 비천했기에 천한 일에도 능한 것이라고 답하셨다고 합니다. 흙수저 금수저를 들먹일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구조도 문제지만 태어난 환경만을 탓하는 오늘 한국의 젊은이들이 하이든을 본받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실내악의 정수 현악사중주
현악사중주는 고전주의 음악의 찬란한 꽃이며 실내악의 정수입니다. 하지만 음악사를 살펴보면 18세기 후반까지 특별히 실내악이라고 정의되어 있는 음악 장르가 없었고 따라서 현악사중주라고 지칭되는 음악도 없었습니다.

당시의 궁정이나 귀족의 살롱에서 연주되었던 독주곡이나 합주곡 그리고 소규모 교향곡 같은 여러 관현악 작품들은 그냥 모두 실내악이라 불리고 있었습니다.

하이든도 이런 형태의 여러 음악을 작곡하였는데 1780년대 이전에 하이든이 작곡한 초기 현악사중주는 아직 고전 양식의 현악사중주라기보다는 디베르티멘토 형식과 유사했습니다.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는 우리말로 희유곡(嬉遊曲)이라 할 수 있는데 18세기 후반에 오스트리아에서 유행했던 오락을 위한 기악곡입니다.

현악사중주는 제1 바이올린, 제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구성되는 기악 협주곡입니다. 사람의 목소리에 비교하면 소프라노, 테너, 알토, 베이스에 해당하는 악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생 300곡이 넘는 실내악곡을 작곡한 하이든은 특히 현악사중주에 애정을 쏟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도 당시 유행하던 트리오 소나타(Trio sonata: 4개의 악기로 연주되는 바로크 시대의 중요한 실내악곡 형식)를 중심으로 실험을 계속하다 1781년에 러시아 공작을 위하여 작곡된 6개의 사중주곡(작품 33)에 ‘현악사중주’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러시아 사중주’라는 별칭을 가진 이 곡들은 하이든이 스스로 말했듯 하이든의 독창적인 양식으로 작곡되었고 전형적인 4악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때를 시작으로 현악사중주는 기악곡의 정점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뒤를 잇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의해 그 가치가 확인되며 완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23곡의 현악사중주를 남긴 모차르트는 후기의 작품 6곡을 하이든에게 바쳤습니다. ‘하이든 세트’라고 불리는 이 6곡의 작품은 모차르트 현악사중주의 백미이기도 하지만 하이든에 대한 그의 애정과 존경을 나타냅니다.

베토벤은 단일 악장의 대푸가를 제외하고도 16곡의 현악사중주를 남겼습니다. 사실상 현악사중주의 완성자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들은 그의 정신세계와 음악적 깊이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베토벤의 뒤를 이어 슈베르트, 브람스, 드보르작, 보로딘, 차이콥스키 등의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이 주옥같은 현악사중주를 쏟아내었습니다. 이러한 터전을 마련한 하이든의 업적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고 그렇기에 그를 ‘현악사중주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현악사중주 사랑도 대단한 것이어서 그는 현악 4중주를 “네 명의 지식인이 나누는 대화”라고 표현했습니다. 화요음악회에서도 네 명의 지식인이 언어 대신 음표(音標)로 나누는 대화를 듣기 위해 하이든의 현악사중주 2곡을 감상했습니다.

하이든 현악사중주 67번, 작품 64-5, 종달새(The Lark)
이 곡은 하이든의 많은 현악사중주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곡입니다. 종달새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1악장 첫머리에 제1 바이올린이 제시하는 선율이 마치 새가 지저귀다가 날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리고 처음 들어도 다정한 친구인 양 맞아들이는 1악장은 부담 없이 이 곡에 다가앉도록 만듭니다. 소나타 형식의 고전주의 형식을 하이든의 모습을 이 곡에서 확연히 볼 수 있습니다. 모두 4악장으로 된 이 곡에는 하이든의 명랑 활달한 기품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밝고 가벼운 1악장이 지나고 안단테 칸타빌레의 2악장이 시작하면 그 선율에서 묻어나는 슬픔과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곡이 작곡된 1790년은 하이든이 오랫동안 봉직해왔던 에스테르하지 가(家)의 영주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가 세상을 떠난 해입니다. 오래 섬겨왔던 분이 돌아가신 후의 슬픔과 허탈감이 2악장에 스며있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메뉴에토의 3악장 그리고 비바체의 짧은 4악장을 통해 괴테가 말한 지식인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음표(音標)로 전달되는 그 대화 속에서 어떤 알맹이를 솎아내는가는 듣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스메타나 사중주단의 연주, 오래됐지만 전설적인 카페 현악사중주단의 연주, 그리고 보로딘 사중주단의 연주 모두가 좋습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연주도 좋고 음질도 좋은 이탈리아 현악사중주단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하이든 현악사중주 77번, 작품 76-3, 황제(Emperor)
1797년에 하이든은 후원자 에르되디 백작을 위해 6곡의 현악사중주를 작곡했습니다. 이 6곡을에르되디 사중주라고 하는데 하이든 후기 현악사중주의 원숙한 경지를 보여줍니다. 그중 3번째의 곡이 ‘황제’ 현악사중주입니다.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중 가장 유명한 이 곡은 변주곡 형식으로 쓰인 2악장의 주제 선율로 ‘황제 찬가’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황제’라는 부제로 불립니다.

1797년 2월 12일에 오스트리아 궁정 극장에서 생일을 맞은 황제를 위해 오페라 1막이 끝나고 난 뒤 오케스트라 연주로 하이든의 ‘황제 찬가’가 연주되었고 생일 선물을 받은 프란츠 2세는 당연히 크게 기뻐했고 이 곡은 나중에 오스트리아의 국가로 지정되었습니다.

하이든은 그 해에 ‘황제 찬가’의 선율을 주제로 한 변주곡을 포함한 현악 4중주를 완성했습니다. 모두 4악장 구성으로 1악장 알레그로, 2악장 포코 아다지오, 3악장 미뉴에트, 4악장 피날레-프레스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황제 찬가’의 선율이 포함된 악장은 2악장으로 노래를 부르듯이 부드럽고 서정적으로 펼쳐지는 아름답고 우아한 악장입니다.

인기 있는 곡이라 명연주가 많습니다.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연주도 좋고 빈 콘체르트하우스 사중주단의 연주도 좋지만 우리는 아마데우스 사중주단의 1982년 연주로 들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고 힘들게 살았지만 3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에스테르하지 가(家)에서 충성스럽게 봉사하며 음악사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하이든의 삶은 참으로 본받을 점이 많습니다.

이날 음악 감상 뒤 같이 본 시편 78편 70-72절입니다
70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71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를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72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주님은 작은 소년 다윗을 양의 우리에서 선택하셨습니다. 다윗은 주님의 일에 충성하여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그리고 하이든처럼 주어진 일에 충성할 때 주님은 우리를 크게 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