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재의 목적은 무엇일까?

사람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고통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심한 중증 장애인이다.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된다. 그렇다. 나이가 들고 죽음이 다가오면 모든 사람은 중증 장애인이 된다.

그들을 돌보다 보면 가끔 보석 같은 사람을 만난다. 작년에 주님의 품에 안긴 JOY(가명) 같은 사람이다. 전신 마비에, 손만 조금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늘 밝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는 장애 때문에 말도 어눌하다. 처음에는 알아듣지도 못했다. 동료에게 물어봤다. 감탄사였다. 최고의 감탄사. 나는 정말 행복해! 나는 정말 기뻐! 전동 휠체어에 앉아서 뭐가 그렇게 행복할까? 혼자서 대.소변도 가릴 수 없는데? 수시로 몸에 경련이 일어나서 비명을 지르는데? 뭐가 그렇게 기쁘다는 것일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로 고백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런데 왜? 그에게 이런 고통이 있을까?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고통 중에 살고 있다. 여러 종류의 약을 하루 3번 먹는다. 그것도 삼키기가 어렵기에 가루로 빻아서 먹여야 한다. 그가 좋아하는 커피도 혼자서는 마실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 마시는 것도 아주 천천히, 빨대로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침이 나와서 마실 수가 없다.
고통 중에 사는 기쁨? 그래도 행복하다고? 그를 만날 때마다 큰 도전이 되었다. 나에게는 그런 기쁨이 있는가?

호스피스 정신은
아이러니이다. 의학이 발달하면 인간을 더 존중해야 하는데, 오히려 불치병, 더 의학적인 치료가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은 소외가 된다. 죽기를 기다리는 말기 환자들은 의학이 포기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현대 호스피스 운동은 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생겼다.

인간은 단순히 신체적이지 않다. 단순히 영적이지도 않다. 신체적, 사회적, 영적인 부분 그 이상의 합(合)이다. 총체적인(holistic) 존재이다.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삶의 진실을 직면한다. 하지만 고통이 너무 심하면 그럴 여유가 없어진다.

호스피스 사역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영국의 시실리 손더스(Sicely Saunders)는 말한다.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에 소중하고 당신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기에 중요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평화롭게 죽는 것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당신이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것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입니다.”

죽음을 마주한 말기 환자에게 남은 시간을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평안하게 맞이하도록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으로 돕는 것이 호스피스 사역이다. 죽음은 분명히 인간의 적이다. 사망의 쏘는 것은 독사의 이빨과 같다. 아프다. 고통스럽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직면해야 할 필연적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삶의 일부로 여기는 것, 수용하는 것이다. 호스피스의 기본정신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는 성경에 기초한다. 기독교인들이 병든 이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는 데서 시작되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는 필수적으로 사전교육을 받는다.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이다. 말기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은 가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
호스피스는 환자의 여생을 인위적으로 연장하거나, 단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만큼 잘 살다가 자연스럽게 평안히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죽음을 넘어서

JOY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잘 못해 준것만생각나서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며, 발작하던 것도 떠올랐다. 주님, 조금 더 살 수 있잖아요? 아직 젊은데요? 아니라고요?

그는 죽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다. 그는 삶으로 기쁨이 무엇인지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죽음을 넘어서 행복했다. 그 고통을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나는 정말 행복해! 나는 정말 기뻐! 지금 주님과 함께 하늘을 날고 있으리라. 더 발작도 없고, 더 잠 못 자는 밤도 없을 것이다.

그동안 그가 받은 모든 고통은 보상을 받았을 것이다. 주님 안에서 행복을 누릴 것이다. JOY!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He will wipe every tear from their eyes, and there will be no more death or sorrow or crying or pain. All these things are gone forever”(요한계시록 21:4).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스스로 끊거나, 안락사는 결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숨 쉬는 날 동안, 그분을 기뻐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JO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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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식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담 전공. 코람데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양주한인예수교장로회(고신)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2017년부터 사명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다. 만10년 6개월 동안 뉴질랜드 CREATIVE ABILITIES에서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했으며, ‘호스피스 사역’과 관련하여 글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