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선교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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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밤은 80, 90년대 한국의 청년들을 위한 문화사역과 젊은이 전도를 이끌어 왔다. 주로 축제시즌이나 크리스마스 등의 절기나 계절에 맞춘 이 사역들은 주로 친구들을 통해 교회로 올 수 있게 해왔다. 연극, 성극, 중창, 록 밴드 등의 프로그램들이 한동안 전도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어온 것이었다.
이러한 문화적 접근들로 미국에서는 Seeker Service가 등장하였고 미국의 선교단체들이 이끌어낸 Youth Rally들은 여전히 많은 교회들이 활용하고 있다.

이를 이어서 교회는 전통적인 부흥회 또는 사경회를 열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성경공부를 단계적으로 살피면 될 것이라는 대안들을 끊임없이 전수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시대를 넘어 ‘스타벅스 시대’에 접어들었다. 더 이상 교회 안의 프로그램으로는 전도를 이끌어 낼 수 없으며 예수천당을 이야기함으로 천국을 경험하게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또 다른 한편 ‘천사와 커피를 마시다.’라고 어떤 청년은 사역자들과 앉아 수다를 떠는 이 시간이 자신에게는 좋다고 한다. 그곳에는 생활의 이야기, 영적인 이야기, 가정 이야기 등의 일반적이면서 신앙적이거나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곤 한다.

이제 30년에서 40년이 지난 시대의 문화를 통한 전도와 청년 선교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같은 사건 다른 결말
청년들은 자신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청소년 시기를 거쳐 이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써야만 한다. 유년기에 겪었든, 청소년기에 겪었든 그들이 경험한 어떤 삶의 이야기는 매우 충격적인 결과를 가지고 온다. 별탈 없이 지낸 이들도 있으나, 정상적이거나 일반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울 지경에 빠지게 되는 이들도 있다.

신앙의 힘으로 그 악몽과 같은 시간들을 이겨 나간다고 하지만 매우 오랜 시간을 견디거나 그 누구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숨기고 사는 이들도 있다. 이 과정에서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사람들은 결코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거야’라는 결정적인 비관에 빠지기도 한다. 고민과 딜레마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한 사람은 신앙이 그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책과 묘책이 되었지만 다른 이는 신앙이 의문과 거짓들로 둘러싼 애매한 가르침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오히려 미궁에 빠진 미스테리가 되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사례들과 그를 뒷받침하거나 영향을 준 많은 배경들이 있다. ‘사람’은 오랜 시간 거처야 알 수 있는 존재이며 지금 청년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은 분명 함께 나아갈 친구, 함께 고민해줄 선배, 그리고 미래를 약속하고 만들어갈 애인이 필요하다. 그들은 이러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만가지 고민으로 쌓여있는 것이 분명하다. 교회는 이 고민들에 답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뻔한 답들은 누가 들어도 맞는 참말을 하고 있지만 그러한 정답들을 늘어놓는 것보다 같이 바라보고 생각해줄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라고 그들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현대와 혼란스러운 청년들
이러한 급변하는 시대에 핵심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이제는 일반화와 상식이 되어가고 있는 PostModern이라는 개념이 있다. 기성세대에게는 현대(근대)주의에 따른 정형화 된 답변들로 후 현대주의사상 혹은 탈근대주의라는 이 개념은 문제가 많은 개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언어로 소개가 된 ‘신은 죽었다’는 문구가 이를 가장 쉽게 표현한 것이겠다. 이를 풀어 이야기 할 때,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모두가 옳은 시대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구체화된 실존주의철학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만들었고 절대가치가 사라진 시대는 좀처럼 절대적 선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시대를 살게 되는데 이것이 최근 몇 십 년간 대학가의 토론으로 철학가들과 신학자들이 논쟁하는 주된 내용이기도 하다.

그 불꽃 튀는 논쟁의 현장이야 어찌되었든 이러한 포스트모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있어서 그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사회의 정서와 이에서 나오는 예술 문화와 그들이 가장 잘 연결되어있는 학교와 그 주변을 살펴야 할 것이다.

신이 죽었다고 생각할 때, 그렇게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이들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우리가 알거나 혹은 알 수 없는 광대하심으로 온 우주와 나의 삶을 운영하신다. 이러한 이끄심으로 신자는 성숙해 가겠으나 이를 충분히 깨닫지 못할 경우에는 신앙생활도, 전도도, 선교도 시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행위로서 오히려 그리스도의 도를 왜곡되게 만들고 전도를 받을 수 있는 이들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큰 화를 당하게 하고 말 것이다.

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고학력의 시대와 복음
이 시대는 점점 더 학력이 높아져 가고 지식층 그룹의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듯해 보인다. 이러한 때일수록 그리스도의 복음은 실로 영혼의 지친 마음들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큰 죄에 빠진 심각한 존재임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인도하며, 거짓된 자아에 넘어가지 않고 생명의 오늘을 살아 내일을 바라보게 할 것이다. 이것은 청년에게만 아니라 이 시대와 다가오는 시대의 모든 인류와 방언들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우리 믿는 자들은 깨어서 이 복음을 모든 언어로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각 세대들에게 잘 설명해야 할 것이다. 가볍게 전도방식을 따른 것으로만이 아닌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으로 견디고 인내하며 사랑을 이야기 해야 할 것이다.

청년선교와 복음선포
따라서 진리가 모호해진 포스트모던 시대에 어떻게 진리를 이야기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우리에게 너무나 절대적인 필요이다. 이 분명한 일 앞에서 큰 두 그룹이 있다면 이전의 모습을 고집하거나 지금 청년의 모습을 너무 무조건적으로 옳다 하는 극단적인 양단의 그룹들일 것이다. 전통도 잃지 않아야 하지만 청년들이 모두 잘못되었다 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이 있고 잘 알려진 전통이 있다. 근거가 없이 새로운 일을 할 수 없고 새로운 것들에 대한 이해 없이 진리를 내 방식으로만 이야기 할 수 없다.

복음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며 복음되신 예수 그리스도 외의 방법으로 아버지께로 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선교의 어제와 오늘은 이제 교회 라운지 한 구석에서의 한 시간이 스타벅스에서의 3-4시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답변을 하려고 성급하게 설치지 않고 뻔한 답만 늘어놓지 않는다면 그들은 5시간이고 6시간이고 우리와 이야기하려 할 것이다.

이 땅의 신앙인들과 신앙의 선배들이 들어야 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 저기 가만히 앉아 그 깊은 무덤과 같은 무념과 상념에 빠져있는 듯한 형제를 무념에서 관념으로, 관념에서 해학으로, 해학에서 그리스도의 풍성한 로고스로 그 삶이 풍성하게 나아오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더 나를 쳐서 복종시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눠야 하는가! 선교, 선교, 선교! 우리는 모든 길과 갈래를 열어 누구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만이 참이시며 이 세상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것이니 감사함으로 받아 영광에 이르게 해야 할 것이라. 우리 주께 오늘도 간구하며 무릎을 꿇네. 주님,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의 교회를 도와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