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포드와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남가주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법학 교수로 재직 중인 엘린 삭스(Elyn R. Saks)교수는 정신분석과학 박사학위도 가지고 있습니다. 교수직, 복수의 박사 학위 외에도 수많은 이력의 소유자인 엘린 삭스 교수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조현병(Schizophrenia)입니다.
16세때 첫 정신병적 증상 (psychotic symptom)이 있었고, 옥스포드 법대에서 수학 중이던 21세때 조현병 증세가 발현되어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엘린 삭스 교수는 학업을 이어갔고, 그의 뛰어난 학문적 명성이 현재에도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러셀 크로우가 주연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인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천재 수학자 존 내쉬 역시 조현병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현병에 대한 이해 필요해
조현병을 앓는 모든 사람이 위에 언급한 분들과 같은 천재이거나 위대한 업적을 이룬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이들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듯 조현병을 갖게 되는 것이 비생산적이거나,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이들에게 조현병과 연결되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안타깝게도 대부분‘불치병’,‘횡설수설 하며 걸어 다니는 사람’ 등 매우 부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에 더해 지난 5월 17일에 일어난“강남역 사건’의 범인에게 조현증이 있다고 알려지면서‘정신질환자들을 격리 수용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강화되는 실정입니다. 분명 조현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구 전체 평균 범죄율과 비교했을 때 이 비율은 매우 낮습니다. 또한 조현병의 많은 경우 약물치료 등을 통해 증상을 조절할 수 있고 꾸준히 관리하면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현실은 너무나도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고까지 여겨집니다. 그리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경우 대부분 피해 망상이나 환청, 낮은 의욕과 흥미 저하 등으로 인해 공격적이거나 난폭하기 보다는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고립된 삶을 보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2년 전에 SBS에서 방영 되었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나오는 장재열(조인성 분)의 모습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안타까움을 줍니다. 신경정신의학과 치료를 긍정적인 각도로 비추었다는 점에서는 다행이었지만 정신과 질환들과 치료에 대한 몰이해가 전반적으로 드러나 개인적으로는 시청하기에 거부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어쩌면 조각같이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조인성 씨의 외모로 인해 무의식적인 거부감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드라마 전반적으로 조현병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조현병의 특징적인 증상
조현병의 특징적인 증상은 잘 알고 계신 것처럼 환각이나 망상 같은 정신병적 증상 외에도 의욕 저하, 대인 관계 기피, 감정 표현 저하, 비논리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한 언어, 사고 혹은 행동 등이 있고 판단이나 계획, 충동 조절, 작업 기억 등의 기능을 가진 전전두엽의 기능 저하 증상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 증상의 정도나 패턴이 다르게 나타나며 그 원인 또한 다양하지만 대부분 십대 중후 반에 초기 징후들이 나타나며 발병 시기는 주로 이십 대 전후입니다. 훨씬 적은 수치이기는 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40대 중반에 발병하는 사례들도 있습니다. 조현병은 전체 인구의 0.5-1% 정도가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심각한 우울증이나 조증 혹은 스테로이드 계통의 약물 복용이나 섬망 혹은 간질로 인해 동반되는 정신병적 증상을 겪는 경우를 포함하면, 정신병 질환의 평생 유병률은 약 3% 정도가 됩니다.
다른 정신 질환들과 마찬가지로 조현병 또한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지만 우울증이나 불안증과 비교 했을 때 조현병은 유전적, 생물학적 요인이 조금 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 중 한 사람이 조현병을 앓고 있을 경우 그 자녀가 조현병을 앓을 확률은 약 5% 가량 되지만 부모 모두가 조현병을 앓고 있을 경우엔 자녀의 조현병 확률은 약 45%가량 되며, 많은 연구들을 통해 조현병 환자들의 경우 뇌실 확장,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이나 글루탐산염 활동의 변화 등 뇌 구조와 뇌 기능에 실질적인 변화가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많은 만성 질환이 그렇듯이 조현병 역시 발병 후 첫 치료까지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증세가 악화되고 장기적인 예후가 나빠집니다. 또한 지속적인 치료가 되지 않아 재발이 반복될수록 더 많은 기능을 잃고 치료가 더 어려워 집니다. 바꾸어 말하면 초기 진단과 진료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치료 필요해
그런 이유로 뉴질랜드에는 조기 정신증 전담 치료팀 (Early Psychosis Intervention Team)이 따로 있습니다. 그 동안의 연재를 통해 꾸준히 말씀 드리고 있듯이, 결국 조현병 치료의 첫 걸음 역시 발병된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고, 다른 신체적 질병들과 마찬가지로 빠른 시일 내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시작하고 관리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현병이 있는 분들 중에는 치료를 통해 환각이나 망상의 증상이 거의 없이 살아 가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반대로 적지 않은 분들이 지속적인 증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현병 때문에 우리네들이 바라는 평범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실제로 조현병을 겪는 많은 분들이 지속적인 증상 속에서도 꾸준한 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시키며 좋은 삶의 질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현병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불치의 병을 갖고 있는 것은 오히려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용납하지 않으려는 우리 자신, 혹은 우리의 사회가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회복의 여정을 위해 걷는 길의 방향과 험난함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든 여정이 그렇듯 같이 걷는 사람이 있으면 조금은 그 길이 덜 힘들고 덜 외롭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걷는 신앙의 여정에서, 삶의 여정에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미 그 모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조금의 거리가 필요할 때도 있고, 때로는 옆에서 손잡고 가야 할 때도 있겠지만 가족이 그리고 교회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그 길을 함께 걷는 것일 겁니다. 그러하기에 사도 요한의 기도를 마음에 품고 조현병을 가지고 있는 우리 가족 혹은 이웃들과 함께 걷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그대의 영혼이 건강한 것처럼 그대의 모든 일이 잘 되고 몸도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요한삼서 1장 2절, 현대인의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