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의 그늘

‘눈은 입보다 말을 잘한다’는 일본 속담이 있다. 중국과 한국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실성을 보려면 입보다 눈을 본다. 반대로 서양에서는 눈보다 입을 본다. 한국인은 말을 잘한다. 때로는 말뿐일 때가 많다.

내 말은 끊임없이 하는데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은 드물다. 말은 있어도 경청하는 태도가 부족하다. 점점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고가 약해지고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기억하는 것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는 인터넷과 사회 관계망에 집착하다 보니 생각하는 사고가 빼앗기기 때문은 아닐까.

현대인은 쫓기듯이 바쁘게 서두르는데 막상 무엇인가 하다 보면 금방 싫증이 난다. 취미나 재미, 그리고 흥미로운 일도 곧 시들해지고 만다. 욕구와 욕망은 점점 더 커지는데 좀처럼 만족을 모른다. 삶의 분명한 목적이나 목표도 없이 살다 보니 의미와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분별이 안 된다. 몸부림은 커지는데 얼마 안 가 쉽게 포기한다.

또한 불필요하게 너무나 많고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정작 무엇인가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 설거지고 빨래이듯이 해도 해도 만족을 모르고 권태로워 하는 것이 사람이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자기 긍정이나 자아 도취, 그리고 자기 조작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체성의 혼란과 혼돈은 창의성과 집중력을 잃어버리게 한다. 타인과 사회와의 관계성도 떨어진다. 사람과의 단절이 늘고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집을 나가는 것을 가출이라고 하지만, 분명하게 집을 떠나는 이유를 말하고 나가는 것은 출가라고 한다. 가출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지만, 출가는 가족과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 돌아오지 않는다.

몸은 집에 있어도 마음이 가족을 떠난 사람이 있다. 홀로 머물려는 고독과 고립은 다르다. 고독은 자발적인 격리이고 고립은 스스로의 단절이다. 충분하게 외로움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실은 진정 덜 외로운 시간이다.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와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이다. 사색은 생각하는 힘과 생각하는 근육을 키운다.

욕망은 갈급과 결핍이지만 권태는 ‘섧고 고달픈’ 마음이다. 그러해도 권태를 통해 진정한 영혼의 고독을 경험한다면 미래에 대한 기대와 함께 새로운 시선으로 내일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다. 그럼 말이 분명하게 달라지고 지루한 일상의 삶도 새로워지게 될 것이다.

이전 기사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에 감사
다음 기사영혼의 회심과 하나님의 섭리
이승현
크리스천라이프발행인.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담임목사. 저서로는 '하나님의 아가', '예수님의 아가' 시집이 있으며 단편소설 '마른 강' 외 다수 와 공저로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