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함께 하는 균형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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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기업 산하 금융기관에서 운영하는 은퇴 연구소에서 작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장성한 자녀를 둔 은퇴자들이 자녀와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후회하는 점들은, 자녀와의 대화부족, 자녀를 사교성 있고 대범하게 키우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인간관계 부분에서는 부부간의 대화부족, 부모님과의 대화부족, 친한 친구가 없는 것, 평생 취미가 없는 것, 봉사활동의 경험이 없는 것 등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미 시기를 놓치고 난 후 깨달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 무척 안타깝게 생각된다. 때문에 선배들의 후회하는 부분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연구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하루빨리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도 자신의 부모와의 대화의 부족을 경험했으면서도 그와 똑같은 상황을 자녀와의 관계에서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새로운 대안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고 본받을만한 모델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부모의 일방적인 훈계나 지시에 익숙한 아이들이 어느 나이가 되면 부모와 더 이상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대화 중에 부모가 이 대목에서 무슨 말을 할지 그 내용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화제가 학습에 관한 이야기 혹은 이웃집 아무개와 비교하는 내용으로 일관을 하게 되면 자녀는 부모와 더 이상의 깊은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된다. 더욱이 대인관계가 한정된 해외생활에서 지극히 단순한 생활 패턴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며, 자녀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있는 대다수의 한국부모들을 바라보는 자녀들에게는 부모들의 높은 기대가 자연히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러한 감정들이 쌓여지면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을 얻고 경제적인 독립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부모와 대화를 할 소재도 없고 표면적인 안부 인사 이외의 깊은 대화가 이어지기 힘들다. 그 때가 되어야 부모들은 아이들과 시간을 가지고 좀 더 깊고 다양한 화제를 준비하여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어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아이들과 좀 더 가까워지려면 아이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나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 부모들도 함께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쁜 틈을 내어 조기 축구회라도 들어서 활동을 하게 되면 아이와 훨씬 친밀해질 수 있다.

요리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서 친구들끼리 요리 경연대회를 열 수 있도록 주방을 빌려주고 식재료를 후원해 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방학 때 아이들만 캠프에 보내지 말고 부모가 캠프에 자원 봉사자로 지원하여 여러 아이들을 접해 보고 요즘 아이들의 분위기와 성향들을 파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도 아이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더불어 깊은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혹은 어른들이 하는 어떤 프로젝트에 아이들이 참여 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주는 일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부모가 하는 일을 돕는 것, 함께 각기 다른 목표를 세우고 서로를 격려하는 것, 또는 어떤 일들을 함께 계획하고 추진하는 이벤트를 만들어 서로 협력해서 어떤 일들을 해 나가게 되면 그런 계기를 통해 서로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다.

아이들이 궁금한 것에 대해서 언제든지 부모에게 물어볼 수 있고, 부모 역시 솔직하게 그리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상황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해주면서 깊이 있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함께 했던 것은 오직 묵묵히 함께 식사하는 것과 성적에 대한 평가와 못마땅한 부분에 대한 잔소리뿐이었다면 어느 날 진학을 앞둔 아이에게 적성과 진로 등에 대해 무슨 대화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우리가 자녀들과 공유할 수 있는 추억들이 많다면 노후에 훨씬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더욱이 아이들과 함께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면 일만 열심히 했던 부모가 아닌 아름다운 삶을 사는 존경받는 부모의 이미지로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다. 그리고 성인된 아이들과 언제든지 나눌 풍성한 이야기 거리를 비축해 놓을 수 있다.

뉴질랜드의 웰링턴에서 만난 키위 지인 중에 아주 화목한 가정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분이 있다. 성년이 된 자녀들이 손주들을 데리고 매주 모이는 이 집은 웬만한 동양의 대가족 못지않은 친밀한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가정을 이루기 위해 젊었을 때부터 이 부부는 남다른 노력을 해 왔다. 자녀들과 의미 있는 이벤트를 자주 가져왔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그 집에서는 해마다 이웃사람들을 대상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돕는 자선 디너파티를 몇몇 가정과 함께 열어왔다.

부부끼리 함께 이벤트를 기획하면서 보다 많은 대화를 하게 되고 자녀들을 참여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가 오갈 것이다.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이라 기쁨과 보람도 함께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 자신의 자녀에게 조부모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나누게 될 것이 아닌가? 자녀에게 기대하기 이전에 부모가 균형 잡힌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자녀들에게 행복한 자신들의 미래의 삶의 모습을 선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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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혜미
10년동안 뉴질랜드에 거주하며 교육이민의 경험을 담아낸‘해외에서 보물찾기’저자로 글로벌 시대의 자녀교육을 위한 교육 에세이를 출간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현재 싱가포르에서 아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한류에 대한 교육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