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중심에서 ‘자유’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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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장기 사업비자’로 이민을 오게 됐는데, 당시 영주권 신청이 들어가 이민성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영주권 없이는 유학생 학비로 대학교에 가야 했는데, 영주권자 학비의 4배 가까이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엄청난 부담이었을 일인데, 부모님은 기다리지 말고 대학에 진학하라고 선뜻 어려운 결정을 내려 주셨다.

회개와 회계 사이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대학 생활. 이민 온 지 2년 반 만에 나름 고등학교를 잘 마칠 수 있었지만, 2,000자 에세이를 내야 하는 경영학 101과제 앞에서 다시 한번 영어의 벽을 느꼈는지 나는 1학기 시작한 지 두세 달도 되지 않아 회의를 느꼈다.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는 것만 같은 고뇌 속에서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기도와 찬양뿐이었다.

당시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때였고, 나는 각종 집회, 교회 행사 등에 찬양팀으로 섬기고 있었다.

기타 치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그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었고, 너무 행복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위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주의 일을 도맡아 하는 자에게 성적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A+던 C-던 간에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급기야 어떤 전도사님이 내게 풀타임으로 사역을 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권유하셨고, 진지하게 기도해 보니 대학 공부가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인본주의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은 이 공부를 대체 왜 해야 하는가 싶었다.

원래 스스로 결론을 내리면 합리화할 이유를 찾기 마련이라고, 화끈하게 결정하고 부모님께 달려가 폭탄선언을 했다. 모든 공부를 그만두고 신학교로 가겠다고, 복음을 위해 달려가겠다고(?).

아마도 나는 부모님이 내주신 그 2만 불의 학비를 주의 일을 핑계 삼아 바울처럼 과감히 ‘배설물’로 여기는(?) 당돌한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부모님은 신학 공부 자체를 반대하진 않으셨지만, 기왕 학비를 낸 상황에서 1학년만 마무리해 보고 그래도 신학이 너의 길이면 가라고 설득하셨다.

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수긍했고, 1학년 공부를 마친 뒤 깨달았다. 공부가 싫고 겁이 나서 도피성 신학을 하려고 했던 것이었음을.

‘주의 일’의 정의를 잘못 내리고 있었음을 회개하고 나는 회계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안에 살며 지배당하지 않기
영국은 현재 대부분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제도들을 만들어 세계 전체의 지배적인 경제 체제가 되게 한 시조새 격의 나라다. 15~17세기 소위 대항해 시대. 새로운 바닷길을 찾기 위해 많은 해상활동이 있었는데, 그만큼 사고와 규모도 컸다고 한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위험들 때문에 선원들은 로이즈라고 불리는 한 커피 집에 모여 바다 날씨, 해적 출몰 지역 등 유용한 정보들을 공유하며 서로 힘을 합쳐 피해를 줄이자고 한 것이 근대 보험의 기원이 되었다고.

지금은 런던 로이즈는 보험시장이 되어 세계 보험계의 성지가 되었다. (실제로 타이타닉 침몰 후 배상금도 런던 로이즈에서 지급되었다고 한다).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로도, 런던은 뉴욕,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금융 중심지라는 타이틀을 빼앗긴 적이 없고, 현재는 브렉시트라는 함정이 있지만, 금융 중심의 자리를 뺏기지는 않을 것이라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가져온 유익들을 계속 찬양해 보자면 꽤 많겠으나, 사실 이 녀석이 언제 우리에게 관대한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아야 했고,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가는 사회의 냉정함 속에서 좌절하는 일이 어디 남의 일이겠는가.

런던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식당에서 밑반찬이 거의 안 나와서 뉴질랜드 돈으로 5불 정도를 주고 오이 김치를 시켰는데, 네 쪽으로 갈라진 소박이가 달랑 두 덩어리 나왔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한번 아삭하고 씹을 때마다 1불씩 줄어든다고 생각해보면, 지금도 조금 아찔하다. 작게는 이런 것부터, 크게는 집을 사는 일까지 돈이 우리 삶과 연관 없는 것이 없다.

실제로 런던에서 집 한 채를 사려면 직장인 평균 연봉의 13배 정도가 필요하다 하니, 숨만 쉬면서 세금도 내지 않고 13년을 모아야 간신히 ‘대출 없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는 어떨까. 못 먹는 감 한번 찔러나 본다고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고작 방 2개짜리 아파트 주제에 £1m (15억)은 우습게 넘겨 버리는 그림의 떡들이 즐비하다.

그래도 거기 한번 살아보는 상상에 대리만족으로 잠시 기분이 좋다가도, 현실을 깨닫고 이내 우울해진다. 절대 나에겐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다른 세계의 일들인 것만 같아서.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런 사회적 분리에 익숙해서 아마도 현실을 금방 받아들이겠지만, 동시에 자연스럽게 맘몬의 지배를 받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많은 것들을 해결해 주니까. 없는 것보단 그래도 있는 것이 낫다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되니까.

삶의 도구들에 잠시라도 주도권을 빼앗겨 집착하는 경험을, 우리 모두 한 번쯤은 해보았거나 지금 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든 비교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 평생 돈과 씨름하다가 가는지도 모르겠다. 웰빙을 추구하고, 화장실을 하나 늘리고, 지금보다는 넓은 집에 한번 살아보고 싶은 소박한 꿈을 원동력 삼아 가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어찌 잘못이겠는가. 다만 책임감을 느끼되 거기에 소모되지는 말자. 현실은 변하지 않더라도 돈에 인생을 뺏기지는 말자.

신앙을 표방한 정신승리는 경계하되, 상대적 박탈감에 함몰되지는 말자. 이런 노래도 있지 않은가. “비교는 바보들의 놀이… 최선은 우리의 권리… 결과는 하나님의 것…” 우리는 섭리 속에서 점점 완성되어 가고 있다.

나는 ‘원대한’ 주의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렸다. 다만 매일매일 반복되는 먹고사니즘 속에서도, 쌀을 씻고 밥을 짓는 일도, 설거지를 하루라도 미루지 않으려는 노력도, 모두 숭고한 ‘주의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돈을 내고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이야기들을 사고 싶다.

힘들어하는 후배에게 찾아가 갈비탕 한 그릇 사주자. 커피 한 잔 사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그 펍(Pub)이 곧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