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민족교회의 전도와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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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사명 가운데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전도와 선교다. 특히 다민족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하기에 아주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뉴질랜드는 다민족사회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까운 이웃이나 직장의 동료들에게 전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사명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전도와 선교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예전에 오클랜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학생이 자신의 학교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들을 한인교회로 데려온 적이 있었다.

그들은 한국어설교를 알아 들을 수 없어 친구와 영어로 교제만 하다가 헤어지게 되었다. 제대로 선교를 해보지도 못하고 이들은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만일 그 교회에서 영어 예배나 영어 성경공부반이 있었다면 그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이민 초기에 언어적 문제로 한인 교회에 다닌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인교회를 다니면서 다민족 사람들에게 선교를 하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물론 다민족교회라 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는 것도 아니다.

다민족교회에 다니게 되면 이민1세대로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있기 때문에 한인 교회에 다닐때 보다 더 많은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믿지 않는 영혼들을 예수님께 더 많이 인도할 수 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전도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말하자면 우리들 주위에 사는 모든 이웃들이 선교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라고 말하였다.

전도와 선교는 어떠한 상황과 시간이 주어져서 하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언제 어디서든지 같은 민족이든지 다른 민족이든지 구분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에게 많은 복음을 증거하였다. 사실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여야 한다.

나 자신 또한 다른 민족들에게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힌 적이 많이 있었다.

특히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그들의 종교까지도 이해해야 제대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전할 때마다 나는 여전히 나의 한계상황을 많이 경험한다. 그래서 항상 기도하며 주님께 그 영혼들을 맡긴다.

다민족교회에서 사역하기란 여전히 벅차고 힘이 든다. 나의 연약한 육신이 지쳐있을 때마다 사탄은 어김없이 나를 공격해왔다.

사탄의 공격에 쓰러져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주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 그리고 여러 믿음의 형제들의 기도가 항상 힘이 되어서 지금까지 사역이 가능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뉴질랜드로 다시 돌아왔을 때 주님께서는 나에게 풀타임 사역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파트타임으로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했고 파트타임으로 몇몇 신학교에서 강의를 맡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어 일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풀타임 일자리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요양사로서 자격증을 취득하여 요양병원에서 몸도 마음도 아픈 노인들을 돌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1년정도 노인요양병원(Rest Home)에서 일을 하면서 Pastoral Care의 경험을 쌓았다.

오클랜드에 있는 한 사립요양병원에서 근무를 하면서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 너무 힘이 들어서 믿음이 연약한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주님을 원망한 적도 많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주님께서 몸도 마음도 연약했던 나를 강하게 훈련시킨 귀한 고난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흔히 사람들은 고난을 축복의 통로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고난의 통로를 인내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온전히 통과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그때에는 평일에도 주말에도 Night Shift를 해야 했고 가끔씩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곧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교회로 간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일하던 동료 중에 이란에서 온 60대 초반의Abdul이라는 분이 있었다. 노인병원에는 대부분 나이가 많아 몸이 불편하신 분, 그리고 치매에 걸린 노인 분들이 많다. 일 자체가 힘든 노동이다 보니 케어를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이민자들이 많았다.

어느 날 Abdul이 나와 함께 야간근무를 하는데 일하던 중 갑자기 연락도 없이 사려졌다가 다시 나타난 적이 있었다. 너무 궁금해서 어디 갔다가 왔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가 말했다. 자신은 이슬람교도이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소개를 해주었다.

그는 영국 옥스퍼도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이란에서 교수생활을 하던 중 그 나라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 정부에 대항하다가 이란에서 추방되었다고 한다.

결국 정치 망명자가 되어 뉴질랜드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 좋은 학력을 가지고도 뉴질랜드에서 마땅히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워 요양병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 역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와서 온전한 풀타임 사역을 구하지 못해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종교는 달랐지만 형편이 비슷한 처지라서 금새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틈만 나면 서로의 종교에 대해서 소개하고 궁금한 점에 대해 물어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주님은 나에게 그분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강한 마음을 주셨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