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민족교회로 첫발을 내딛게 되다

나는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익숙한 이민 1세대다. 지난 2002년부터 뉴질랜드와 미국의 다민족교회에서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한인 커뮤니티에 이러한 글을 올리는 것은 처음이다.

뉴질랜드는 여러 민족이 함께 모여 살아가고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무려 213개의 다양한 민족이 뉴질랜드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다양한 민족 안에서 어떻게 하면 한국인으로서 뉴질랜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사실 과거에 나는 다민족교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였다. 뉴질랜드에 이민을 가면 당연히 한인교회에 다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처음 가게 된 한인 교회는 나에게 적지 않은 실망감과 상처를 안겨주었다.

그런 가운데 내가 뉴질랜드에 와서 이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살아가야 하는데 다민족교회에 한번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마음속 한가운데 파고 들었다.

그러던 중 우리 가족은 집을 서쪽 지역에 구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외국의 젊은 청년들의 전도를 통해서 다민족 교회에 처음으로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재적교인 1,000명이 넘는 큰 교회였다. 나는 당시에 영어가 많이 부족해서 매 주일 두 번의 오전 예배, 그리고 저녁예배에 참여하면서 예배를 드렸다. 처음에는 뉴질랜드의 영어와 발음이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내용을 이해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그 키위교회는 구역모임과 성경공부가 너무 잘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매주 다양한 두 개의 구역모임과 성경공부모임에 참여하였다. 너무 좋아서 당시 한 살과 세 살짜리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도 거의 매일 교회성경공부와 구역모임에 참여하였다.

이 교회는 아주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따로 한인을 위한 구역모임은 없었지만 예배 시간에 한인들을 위한 통역서비스가 있었다.

당시 바이블 칼리지에 다니는 전도사가 통역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석사논문으로 인해 바쁘게 되자 내게 통역봉사를 부탁했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서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매주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면서 교회에 다니기는 하였지만 성경에 대한 지식은 너무나도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래서 내가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기도하면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마침내 영어설교통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키위목사님께서 금요일에 설교 원고를 주면 어디 가지도 못하고 토요일 하루 종일 그 내용을 한국말로 번역해 가며 동시통역 연습을 하였다. 결코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으며 영적 전쟁도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통역봉사를 계기로 더없이 부족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문학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잠깐 접고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신학을 1년만 공부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1년이 5년이 되었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더 공부를 하라는 비전을 주셨다. Laidlaw College(당시 Bible College)에서 5년동안 학사와 석사를 공부하면서 오클랜드 현지키위교회 부목사로 사역을 하다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미국에 있는 Concordia Theological Seminary 박사과정(Ph.D)에 전액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또한 미국현지교회에서 사역과 신학공부를 병행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으며 주님의 은혜로 박사과정을 마치게 되었다. 당시 나의 부족했던 영어실력과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형편을 감안했을 때 이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셨다.

주님께서는 나 자신 스스로 영어적 한계에 부딪쳐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위로를 해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순간부터 나의 모든 것을 다민족교회를 섬기도록 준비하고 계획하셨던 것 같다.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 섬긴 다민족 교회에서 나는 자원해서 초등학교 교사와 홈그룹(구역모임)리더로 봉사하게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영어를 전공하였고, 영어교사자격증까지 있었지만, 이것은 영어로 의사를 표현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주님의 은혜로 미국과 뉴질랜드 그리고 여러 선교지에서 나는 영어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게 되었다. 영어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내가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2015년 처음으로 내가 풀타임 전임사역을 시작할 때 우리교회는 90%이상의 백인중심의 교회였다. 내가 처음 사역을 시작할때 그들은 의심과 불평의 눈초리로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대했다. 너무나도 힘들고 외로운 시간들이었다. 몇 번이나 포기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다른 문을 열어주지 않으셨다. 그대신 주님은 그 고통의 시간들을 기도하며 인내하게 하셨고 참고 견딜 수 있게 도와주셨다.

감사하게도 이제는 의심과 불평의 눈초리들은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고 그들의 신뢰를 얻게 되었으며 우리교회의 다문화 사역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사역 초기부터 다문화 사역(Cross-cultural ministries)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지금도 매주 사람들에게 영어로 성경말씀을 전하며 선교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다음 호부터는 좀 더 구체적으로 다민족교회에 대해서 전하고자 하겠다. 내가 현재 섬기고 있는 교회와 전에 미국과 뉴질랜드에서 경험했던 잊지 못할 일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서 뉴질랜드속의 한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전도와 선교를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나누어 보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각기 다른 성품과 재능을 주셨다. 나는 그들의 모든 의견을 존중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나를 통해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사역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