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네렐리신?(당신,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튀르키예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을 만나서 가장 먼저 묻는 말이 있다면 바로 이 말 일 것이다.

2012년 7월, 아내와 아들 2명을 데리고 처음 튀르키예(당시, 터키)에 도착했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고 손에 잡히는 것도 없었다.


마치 아브라함이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에서 나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하신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며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갈대아 우르를 나섰던 심정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혼자 튀르키예에 정탐을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튀르키예인 형제가 기증해 놓았다는 넓은 학교용 땅 부지를 보게 하셨다. 그게 하나의 원인이 되어 튀르키예의 심장 앙카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학원에 등록하여 현지 언어 터키어를 배우면서, 주변에 아는 교회에 열심히 기도 편지를 썼다.

“튀르키예는 남한 보다 약 8배나 면적이 큰 나라입니다. 인구도 8천4백만이나 되어 남북한 인구를 합친 정도로 많습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그 중 99% 이상이 무슬림들입니다. 그런데 매일 약1,200여 명, 1년에 약 44만 명씩 (2019년 통계)이나 되는 터키 무슬림들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한 채 여러 가지 이유로 죽어 갑니다. 그러면 결국 그들이 가게 되는 곳은 어디일까요? 절대로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아니겠지요? 그러면, 갈 곳은 딱 한 군데 ‘지옥’밖에는 없습니다. 이들 젊은 터키 대학생들을 복음으로 깨우기 위해 중국 연길의 연변 과학 기술 대학과 같은 기숙사가 있는 대학교를 앙카라에 세웁시다. ‘앙카라 과학 기술 대학’을 세워 봅시다. 그리하여 전 세계의 기독교 교수들을 초청하여 무슬림 학생들과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복음을 전해서 이 터키인 무슬림 대학생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해봅시다!”

내 나름 힘 닿는 데까지 아는 모든 교회에 기도 편지도 쓰고, 복음 메시지도 힘써 증거하는 삶을 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 없는 산울림 같은 ‘무반응’뿐이었다. 너무나 꿈과 비전이 컸던 때문일까? 아니면, 소요되는 재정이 어느 일부 몇 교회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서였던 것일까?

아무튼 당초의 비전은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간은 또 흘러갔다. 그러던 중 한국에 계신 연세 드신 장로 교단 총회장을 역임하셨던 여 조목사님과 연락이 되었다. 이 분은 오클랜드의 글렌 이네스 키위 교회에서 뉴질랜드 집회 시 내가 한국어를 영어로 통역을 해드리면서부터 알게 된 분이다. 나는 한국에서 신학을 한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에서 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성회 신학을 했기 때문에 한국 장로 교단 쪽으로는 연고가 별로 없었다.


조 목사님은 한국 안산에서 혼자 단독 목회하시는 80세가 넘으신 연세 드신 다른 여 김 목사님을 터키에 모시고 왔다. 조 목사님은 나에게 “김 목사님이 재정이 있으니 이곳 터키에 사역 센터를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고 귀띔해 주었다.

아무튼 그와 상관없이 연로하신 목사님들이 터키에 계시는 동안 앙카라는 물론 갑바도기야에서의 투어도 잘 하실 수 있도록 안내를 해 드렸다. 해외 선교에 열정이 많으셨던 80세가 넘으신 김 목사님이 터키를 둘러보신 후 공항에 나가기 전에 내게 센터 구입에 대해 언질을 주고 가셨다.


그리고 그분들이 한국으로 복귀 하신 후 곧 연락이 왔다. 앙카라에 구입할 사역 센터를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터키에 도착한 지 2년 후인 2014년에 이곳에 사역 센터로 사용할 곳을 구입하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러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내가 터키어도 아직 서툴고 이곳 현지 물정도 잘 모르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앙카라에서 30여년 이상을 터키 남편과 결혼해서 살고 있는 유 선생이란 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가 앙카라 시내 중심부에 전면에서는 5층 아파트(측면에서는 6층) 건물에 제민 카트(지상 층)의 방 4개에 커다란 거실이 있는 아파트가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부를 둘러보니 옛날 건물(1967년 준공) 이지만 내부를 다시 새로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아주 깨끗한 53평 (175 M2) 정도의 사무실 타입의 아파트였다. 그래서 2014년 11월 계약을 하고, 2015년 2월9일 등기 이전을 완료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 돈을 안산에 계신 김 목사님이 터키로 송금해 주셔서 터키 돈으로 43만 리라 (한화 약 2억 원 정도)에 구입하였다. 뉴질랜드 달러로 약 24만 불 정도의 건물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30년 전 뉴질랜드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을 때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다. 즉, 돈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 더 이상 과거처럼 돈에 목숨 걸거나 아옹다옹하지 않게 되었다. 발 닿는 곳이 하나님의 땅이요, 머리 베고 눕는 곳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곳 터키에, 뉴질랜드에서 오려면 비행기만 21시간을 타야 하고, 한국에서도 비행기로 12시간을 와야 하는 이곳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의 심장 앙카라에 우리의 사역 장소이자 거처를 마련해 주신 것이다.

이 ‘앙카라 영능 사역 센터’ 건물은 비록 앙카라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옛날 건물이지만, 건물에 딸린 작은 옥외 주차장이 있다. 주중에는 주변 도로가 온통 주차 전쟁이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바로 옆 건물이 타푸(등기소) 건물이다. 집을 나서면 저렴하게 식료품들을 구입할 수 있는 슈퍼마켓들이 즐비하다. 또, 터키어 학원들이 있는 시내 중심부 크즐라이(붉은 달)까지 걸어서 10-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라서 아주 편리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겸비하는 마음으로 무릎 꿇고 기도할 때, 뉴질랜드를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터키까지 온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보신 듯하다. ‘여호와 이레’ 되시는 주님께서는 예비하신 너무나 좋은 장소로 우리를 인도하셨다.


이 장소는 평상시에는 우리의 사역 장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앙카라 방문자들의 일시 숙소가 되기도 한다.

또 나는 매주 인터넷 ZOOM을 통하여 터키 여대생들을 상대로 영어 교육을 하고 있다. 이 영어 교육의 목적은 이 무슬림 학생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뿐 아니라 일생 터키 원어민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 내지 선교의 선구자였던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의 말처럼, 나도 ‘튀르키예를 복음으로 바꿀 사람들은 결국 튀르키예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올해 7-8월에 뉴질랜드 단기 언어 연수를 전액 장학금 조건으로 준비 중에 있다. 참고로 이 학생들은 지금 여권이 없다. 즉, 지금껏 해외여행 경험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많은 재정(US $ 7,300)과 기도가 필요하다. 4월 두 번째 주까지 준비되도록 손 모음 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이 센터는 주일에는 현지 터키인 목사인 일케르 목사가 인도하는 갈라디아 교회로 매주 터키어 예배(인터넷 통한 3개 지역 동시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 또 매주 월요일에는 터키 내 경력자인 이 선생께서 터키 크리스천들을 상대로 진행하는 D3 예수 제자 훈련 장소로서도 잘 활용되고 있는 중이다.

터키 앙카라에 오실 분들께서 미리 연락하시면 이곳 사역 센터에서 체류하실 수 있다.